설리│① Bad girl can go everywhere

2016.08.23
지난 8월 7일,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두 장의 사진에는 약 2주 사이 모두 1만 2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더럽다”, “비정상적이다”, “너무 자극적이다”. 온몸을 감싼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설리가 두 팔을 벌린 채 웃으며 잔디밭 사이를 걸어 내려오는 사진이 ‘자극적’으로 보인 이유는 좀 더 구체적인 댓글에서 알 수 있다. “외국이라면 모르지만 한국에서 노브라는 아직 시기상조”, “젖꼭지 비친 사진을 올려대는데 누가 욕을 안 하겠어”, “본인이 편하더라도 남들이 보기 불편해하는데, 브래지어 하는 게 예의 아닌가”.

겉옷도 아닌, 속옷을 입느냐 마느냐는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고, 이것을 비난할 근거는 지극히 빈약하다. 그래서 설리를 비난하는 이들은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거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거나, ‘성인’이면서 개념이 없다는 식의 이유를 들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곤 한다. “이것도 성추행임. 내 눈이 저 유두 보고 썩었음”이라는 댓글을 달기 위해 설리의 계정까지 찾아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설리의 SNS에 유독 심한 악성 댓글이 쏟아지게 된 것은 최자와의 교제 사실이 알려진 3년 전부터다. 당시 무수한 억측과 음담패설이 쏟아졌었고, 이후 그의 행동은 무엇이든 논란의 대상이 됐다. 교제 사실을 밝힌 지 오래지만 데이트를 하면 최근까지도 ‘[단독] 설리♥최자, 日서도 다정한 애정행각 '공개 데이트'’([더 팩트]) 같은 기사가 나고, 생크림을 입에 짜 넣은 사진에는 성추행에 가까운 댓글이나 ‘음란하다’, ‘관심받으려고 별짓 다 한다’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그동안 설리는 사과문은 물론,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애초에 그를 둘러싼 논란이 ‘국민 정서’를 핑계 삼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리는 심지어 ‘눈치’조차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구속하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지극히 자연스런 상태로 겉옷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여성 연예인의 연애 소식에는 온라인에서의 성적 모욕 발언들이 끊임없이 이뤄진다. 특히 어리고 예쁜 여성 유명인, 그중에서도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걸 그룹 멤버들은 대중의 가장 만만한 샌드백이 된다. 이미 많은 여성 스타들이 지극히 사적인 문제나 사소한 실수로, 혹은 자신의 잘못조차 아닌 일로 온갖 비난과 루머에 휩쓸렸고, 그 끝은 늘 반성문 쓰는 듯한 사과나 눈물, 인기 하락 등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설리는 ‘아역배우 출신으로 14살 연상의 남자와 공개 연애를 하다가 그룹을 탈퇴한 만 스물두 살의 전직 아이돌’이라는 경력을 가졌고, f(x) 탈퇴 후 지난 1년 사이 뚜렷한 결과물이나 지속적인 활동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외모만 갖고 쉽게 돈을 번다’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근간을 부정하는 듯한 기이한 분노조차 유독 젊은 여성 스타들에게만 향하는 분위기에서, 그가 SNS에 올리는 수많은 행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정’의 대상이 된다. 설리가 최자와의 일상을 올리거나 클럽에서 춤을 추는, 아이돌로서는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보여주면 곧바로 비난이 이어진다. 하지만 설리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고,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트레이닝복 속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래서 지금 설리는 하나의 리트머스처럼 작용하는 존재다. 설리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들은 지금 한국이 여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민망할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거 “강풍에 속옷 노출”, “아뿔싸! 춤추다 치마가!” 같은 식으로 설리가 의도하지 않았던 노출 순간을 포착해 수익을 얻던 매체들은 설리가 스스로 공개한 사진 속 노출에 대해서는 짐짓 우려하는 척 논란을 부풀리며 다시 성적인 이미지로 그를 소비한다. 일부 대중은 이런 설리에게 끊임없이 ‘공인’이니까, ‘아이돌이니까’, ‘한국에서는’ 같은 말을 붙이며 불편해한다. 늘 당연한 듯 성애화되는 존재였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수동/무해/순결’ 등의 규범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의지로 성적인 어필을 한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올리고 싶은 사진을 올린다. 이것이 불편하다면, 그리고 기어이 사과를 받아내고 싶다면 잘못된 쪽은 어디인가. 또한 여성의 신체를 성애화하고,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규범을 강조하는 쪽은 어디인가. 최근 모유수유 중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정가은에게도 ‘관종(관심종자)’이라는 조롱이 가해졌다. 그러나 모유수유를 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섹스는, 섹스어필은 죄인가? 타인의 섹스어필이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로 심각하게 단죄되어야 할 사회악인가. 설리를 둘러싼 현상들은 이런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답은 상당수 “연예인이 그래도 되냐”나 “사람들의(=나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누군가 나의 기분을 거스른다 해서 그 삶의 방식을 비난하고 통제하려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까지 가는 길은 여전히 멀게만 보인다.

설리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을 높은 기준과 좁은 틀에 맞추고, 그로부터 벗어나면 거세게 공격해 밥줄을 끊어놓고 싶어 하는 사회적 억압이 부당하고 편협하며 반 페미니즘적이라는 것만은 명백하다. 그리고 설리는 그것들에 개의치 않으면서, 혹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예상치 못한 균열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그렇게 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설리는 지금 자신의 인생을 태연하게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한국이라는 세상에 맞서게 됐다. 어느 쪽이 지쳐 떨어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더는 누구도 쉽게 끌어내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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