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 여성들의 멜로드라마

2016.08.22
“남자 출입금지, 남친 출입금지, 남사친 출입금지.” JTBC [청춘시대]의 주 배경이 되는 ‘벨 에포크’는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다. 정확히는 스무살 대학 새내기부터 졸업을 앞둔 스물여덟까지, 오로지 20대 여성들만 산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서 똥을 너무 오래 싸는” 버릇부터 “돈 받고 유부남과 섹스”한다는 사실까지 하우스메이트에 관한 온갖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만큼이나 수많은 부분에서 부딪친다. 서울 생활을 처음 시작한 소심한 은재(박혜수)는 한 번 허락해줬다고 해서 자신의 잼을 며칠이고 퍼먹는 예은(한승연) 때문에 화가 나고, 이나(류화영)가 유부남들에게 용돈을 받고 성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예은은 “더럽다”며 그를 벨 에포크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벨 에포크의 여자들이 서로 부딪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예은은 자신을 밤늦게 불러낸 남자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파토 냈을 때 “짜증 난다”는 문자를 보낼 배짱도 없다. 반면 이나가 같은 상황에서 “내가 대기조야?”라고 화내는 모습을 보며 더욱 속이 끓는다. 정기적으로 하는 아르바이트만 세 개에 밥을 먹으면서도 학교 공부를 하는 진명(한예리)은 한 달 용돈만 몇백만 원에 이르는 이나의 신경을 계속 건드린다. 예은은 이나의 옷을 두고 “노출증 같다”며 비난하지만 그의 옷을 가장 자주 훔쳐 입고, 진명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직장 동료에게 흔들릴 때 혹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릴 때마다 성적 매력을 이용해 돈을 벌고 쓰는 이나의 침대 위에 말없이 눕는다. 반대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인 은재가 당차고 똑 부러진 성격의 지원(박은빈)을 거의 신격화하는 것처럼 호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상대를 통해 발견하고, 그로부터 지금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고, 상대방을 통해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벨 에포크의 여성들이 서로에 대한 로맨스의 가능성까지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나가 예은과 다투다 분노의 의미로 키스를 하고 연인 관계에서나 등장할 법한 포즈를 취하고는 “너, 그 남자 만나지마. 니가 다칠까 봐 그래” 같은 말을 하거나, “얘 애인이다!”라고 외치고 위기에서 구출하는 것은 다른 드라마에서 남녀로 구성된 연인들이 보여주곤 하던 행동을 여성들의 관계로 바꾼 것에 가깝다. 단지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질투 같은 감정도 여성이 여성에게 보다 복잡하고 밀착된 감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청춘시대]는 급진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청춘시대]의 남성 캐릭터들은 철저하게 주변부에만 머무른다. 은재의 첫 연애는 대부분 하우스메이트들의 조언이나 부추김으로 진행된다. 다섯 명 중 가장 연애를 열심히 했던 예은의 에피소드도 다른 여성들에게 ‘을’의 연애로 비춰지지 않게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과거의 상처를 쉽게 털어놓으면 몸도 가까워질 수 있다거나, 되도 않는 “끼를 부린다”는 말을 듣는 남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은재의 남자친구 종열(신현수)은 밤늦은 시각 집 앞에 슬그머니 나타나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가 다른 여성들에게 얻어맞는다. 벨 에포크의 여성들은 내부 규칙을 깨고 아는 남자를 집으로 초대하는 ‘수컷의 밤’을 요란하게 준비하거나 이성과의 교제를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잠재적인 연애 대상인 남자가 아닌,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여성들을 통해 발견되고, 완성된다.

물론 [청춘시대]는 주변 남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벨 에포크의 여성들과 그들의 로맨스에 대한 가능성을 계속 열어놓는다. 이로 인해 여성들의 로맨스가 섹슈얼한 감정까지 내포할 거라 짐작하는 시각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조금씩 피해나간다. 극 중 아무런 로맨스의 암시도 없던 지원이나 이나의 친구에게마저 연애 감정 가능성을 인터뷰하는 것은 전개상 낭비에 가깝다. 그 결과 여성들의 관계는 한국 사회에서 보다 안전하게 보일 수 있는 영역에서만 말할 수 있다. 급진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온건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들을 내세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자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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