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책이 팔린다

2016.08.11
2016년 8월 4일 현재 알라딘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1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이고, 범위를 10위까지 넓혀도 일곱 종이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다. 사회과학 분야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이긴 하나, 이슈에 맞춤한 책이 때를 기다리다 나오는 게 아니기에 기록할 만한 풍경이라 하겠다. 게다가 1위에서 5위까지의 도서 다섯 종은 지난주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도 모두 50위권에 들어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냐는 의문을 날려버렸다.

몇몇 도서의 활약에 불과한지, 관련 분야 전체가 상승 곡선을 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숫자를 좀 더 살펴보자.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판매량은 2014년 대비 2015년 171% 성장, 2015년 대비 2016년 159% 성장을 기록했다. 그렇다. 2016년이 아직 다섯 달이나 남았는데 이미 작년에 비해 1.5배가 넘는 여성학/젠더 책이 팔렸다. 같은 기간 사회과학 분야 전체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독보적인 활약으로 보인다. 자연스레 사회과학 분야에서 여성학/젠더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져, 2014년에는 분야 매출의 2%에 그쳤던 비율이 2015년에는 4%, 2016년에는 8%로 늘어 무어의 법칙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이제 가파른 성장세를 이끈 주인공을 만나보자. 관련 분야 도서를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꼽으라는 질문에 어렵지 않게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어쩌면 곧 정답을 업데이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3월에 나온 [나쁜 페미니스트]가 출간 다섯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알라딘 여성학/젠더 분야 누적판매량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누적판매량 최상위권을 차지한 세 종의 도서가 모두 지난해 이후 출간되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3위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가 차지했다. (물론 [페미니즘의 도전]은 구판과 개정판을 합하면 2위이고, 알라딘 판매량이 아니라 전체 판매량으로 집계한다면 여전히 1위가 분명하다.)

(관련 도서가 왜 많이 팔리는지 모른 척하고 말하자면) 상황이 너무 좋다. 대개 이슈가 터져도 관련 도서가 부족하거나 제때 나오지 않아 사그라지고 마는데, 맞춤한 신간이 줄줄이 이어지며 꾸준히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바람이 잦아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면 어김없이 판매에 불을 댕기는 방화범이 불쑥 나타나 추세를 유지시켜준다. 이렇듯 우연과 운명이 얽히고설키다 보니 출판계 바깥에서는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출판계 안에서도 페미니즘 책은 기본은 한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지금의 추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펼쳐질 판이 마련되었는지 살펴볼 시점이다.

우선 긍정적인 지표는 독자 연령층의 변화다. 2014년만 해도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구매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40대(37.4%)였다. 2015년에는 20대, 30대, 40대가 28~29%로 균등한 비율을 이루었고, 올해에는 20대가 무려 47.2%로 압도적인 독자층으로 올라섰다. ‘이들’이 새롭게 읽은 오늘의 페미니즘 책은 예전에 ‘그들’이 읽어 오늘의 고전으로 자리한 [이갈리아의 딸들], [아주 작은 차이], [언니네 방]처럼 내일의 고전으로 자리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 성장세를 가늠할 때 출간 종수도 중요한 요소인데, 여성학/젠더 분야는 2005년 이후 연간 50여 종을 유지하다가, 2011년부터 70여 종으로 늘어 지난해까지 비슷한 수치를 유지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70여 종이 나왔고, 최소 20여 종이 출간을 앞둔 상황이라 기대를 더하면 100종 출간도 가능하지 싶다. (참고로 현재 해당 분야로 분류된 도서는 총 1,400여 종이다.) 앞으로 한두 해 이런 출간 종수가 유지된다면, 관련 분야의 깊이와 넓이가 탄탄해지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겠다.

(다시 관련 도서가 왜 많이 팔리는지 모른 척하고 말하자면) 전망이 너무 좋다. 그럼에도 출판계에서 페미니즘이 돈이 되느냐는 물음에는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기가 망설여진다. 최근 해당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나쁜 페미니스트]의 총 판매량이 1만 부 남짓이어서도 아니고, 하반기에 나올 관련 도서의 기대치가 낮아서도 아니다(하반기에도 강력한 페미니즘 책이 줄지어 나올 예정이다). 그렇다고 신이 나서 하는 일에 돈을 들이대는 게 마뜩잖아서도 아니다(장사치가 그럴 리 있겠는가). 서점에서는 알라딘만 줄기차게 페미니즘 이벤트를 열고, 관련 도서도 내던 곳에서만 이어 내는 편이라, 아마도 돈이 모인다는 느낌보다는 사람이 뭉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장사는 사람을 모으는 데서 시작되는 법이니, 어쩌면 곧 페미니즘이 돈이 되는 출판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페미니즘은 부가가치보다 참여가치가 높은 사업이니, 한 사람에게 열 권을 팔기보다는 열 사람에게 한 권씩 파는 방식으로 돈이 되길 바랄 뿐이다(그렇다, 나는 큰 장사꾼이다. 그래야 나중에 열 사람에게 열 권씩 팔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남성 19%, 여성 81%라는 올해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구매자 성별 비율도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태근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한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출판계에 필요한 목소리를 찾아 전하는 한편, 몇몇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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