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2016.08.10
얼마 전 발간된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라는 책은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을 이야기하며, 하나의 연대체로서의 팬덤을 이야기한다. 책은 ‘빠순이’라는 단어를 외부에서 비판적으로 쓰이는 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게이, 퀴어와 같은 단어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과잉 순응에 의한 전복으로써 사용할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팬덤에게 아이돌은 곧 삶의 의미이며 빠순이들은 어떠한 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방탄소년단에게 피드백을 요구합니다”와 같은 움직임, 그 반대편에 최근 걸 그룹들이 팬미팅에서 당한 언어폭력(노래 연습해라, 안 예쁘다 등) 등 현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빠순이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정투쟁이나 극단적인 애정 표현은 사회적 이슈로 소화되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이 책은 비교적 ‘학술적’이라는 목적 아래 책으로 나왔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한 명인 강준만이 공저로 참여했다. 저자의 이름값이든 인물과 사상사라는 출판사의 이름값이든 책은 신뢰를 획득하지만, 책은 언론이 칭찬해온 것에 비해 허술함이 많다.

저자는 책에서 어느 정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구성한 채 현상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부분은 늘어났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줄었다. 빠순이가 폄하된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한류도 폄하하지 그러냐’는 식의 비약은 물론 팬덤 이야기에서 ‘과잠’의 정치학으로 논의가 이어지는 점, 스포츠나 정치 등 다른 영역에서의 팬덤 이야기 등 이야기의 본질과 멀어지는, 상대적으로 곁다리라 느껴지는 부분이 꽤 보인다.

이미 하고 싶은 말을 상정한 상태에서 저자는 현상 연구에 있어 필드워크에 의한 인류학적 방식을 택하기보다 의미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사회학적 연구를 택했다. 하지만 주변 인물의 증언부터 이론까지 인용의 폭은 지나치게 넓고, 때론 경험에서 오는 근거를 제시하다가도 이론에 그 힘을 의지하고자 한다. 경험을 이야기할 때도 본인이 ‘경험하고 바라본’ 영역이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역 전부인 것처럼 전제하고 썼다는 점, 즉 본인의 시야 밖의 무언가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 문제점이다. 이는 강준만이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일베와 같은 커뮤니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 것만큼이나 안일한 방식이다.

방법론 사이 혼선의 결과로 책은 빠순이라 불리는 사회적 영역의 전부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결국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이라는 주장과 이 책의 한계는 일맥상통한다. 연대체라는 상상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그 연대체가 하나의 집단이라고 봤을 때, 하나의 순진한 이상향을 꿈꾼다는 것은 집단이 폭력을 생산해낸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빠순이가 갖는 ‘또 다른 시선’을 만들기보다,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펼쳐놓는다는 점이다. 빠순이들이 지닌 커다란 세계는 아직 펼쳐지고 공개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당사자성의 부족, 혹은 필드워크의 부족이겠지만 애초에 이미 특정한 ‘시선’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빠순이를 담론의 대상으로 끌어올리거나 연구를 할 때 문화연구의 대상으로서 필요한 건 판단이 개입된 결과보다는 그 자체다. 단적인 사례로 ‘찍덕(찍는 덕후)’에 관한 이야기, 2차 창작과 온리전에 관한 담론, 팬덤 내에서의 권력 문제, ‘악개(악성 개인 팬덤)’, 유사연애, 여성혐오 이슈 등 팬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문제점, 그중에서도 팬덤 내부와 외부가 함께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사회 현상이나 음악 산업에서의 영향은 아직 한참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재미있게도 이 책은 에티엔 바랄이 쓴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는 그가 필드워크를 하면서 관찰한 기록을 담는다. 하지만 그는 몇 오타쿠 친구를 사귀며 알게 된 점을 오타쿠 문화의 전부인 것처럼 쓴다. 이후에는 이들의 사회적 습성을 분석하며, 결국 책의 후반부는 옴진리교를 이야기하는 데 할애한다.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는 빠순이에 관한 편견을 깨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 편견에 기대기도 한다. 저자는 빠순이라는 정체성에서 연대의식을 느꼈지만, 실제로 덕질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그 대상이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연대가 힘들 수도 있다. 하나의 현상을 이야기할 때, 특히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더듬 알고 있는 현상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진득하게 현상을 최대한 넓게, 많이, 편견 없이 읽어내려는 작업이다. 본인도 어느 정도 ‘덕질’을 했다지만, 상대적으로 그 강도는 약하다. 물론 외부로부터 받은 탄압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빠순이 내부에서도 탄압과 성별의 개입, 권력의 우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는 빠순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자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료 조사 혹은 연구를 더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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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에디터, 기자, 기고하는 사람. [힙합엘이], 여성주의저널 [일다], [아이돌로지] 등 여러 매체의 필자. 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 과정에 있으며, 현재는 학업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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