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막대가 하나], 책의 꼭대기

2016.08.05
장편 같은 단편을 읽었다. 타카노 후미코의 만화는 긴 이야기의 일부만 잘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 보여준다는 인상을 남긴다. 동시에 그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언젠가 더 부연할 리 없다는 생각도 든다. 속편도 외전도 리부트도 있을 리 없다. 더 채우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고 더 이해시키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독자가 채워 넣으라는 ‘열린 구조’ 또한 아니다. 생략되고 뛰어넘고 교란하지만, 그것이 타카노 후미코가 들려주려는 ‘닫힌 이야기’의 전부다.

컷을 경지에 가깝게 조직하여 한 편 한 편 잘 연출된 장면을 보고 있다는 기쁨이 이어진다.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페이지를 구성하는 교본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빈 종이 한 장을 여러 프레임으로 분할하는 동시에 시점과 시선, 확대와 축소 및 회전을 통해 컷과 컷, 페이지와 페이지를 기능적으로 연결한다. 촘촘한 병렬과 대담한 이동이 서로 힘을 주고받는다. 모든 컷이 각자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만화처럼 훑듯 읽을 수가 없다.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매력적인 모순은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을 완벽에 가깝게 배치하고 그 완벽을 따라가도 전부 알 수 없다.

단편 ‘버스로 네 시에’는 주인공 마키코가 중매결혼을 위한 맞선을 보러 상대방의 집으로 가는 이야기다. 그 사이 어떤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이야기가 끝난다. 그런데 만화 속에서 ‘맞선을 보러 간다’는 사실이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정말 잘 된 일이야’, ‘축하한다’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무척이나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 타카노 후미코는 ‘어디에 가는가’보다 ‘얼마나 신경 쓰이는가’에 더 집중한다. 블라우스의 지퍼를, 슈크림의 숫자를, 버스 의자의 나사를, 앞사람 셔츠 무늬를, 첫인사를, 유년의 기억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도착하지 않기 위해 천재지변이 일어날 수는 없는지 신경 쓴다. 그 모든 과정을 얇은 세로 컷으로 갑자기 말풍선(‘아파’, ‘목덜미가 따끔거리네’)만 보이게 만드는 등 대단한 기술로 묘사한다.

마키코의 마음은 계속 흔들린다. 지퍼가 생각을 방해하고, 버스를 고장 내는 상상을 하고, (앞사람의 셔츠 무늬에서 시작된) 구조를 무너뜨리려 하고, 덜컹거리는 문을 바라보고, 잘못된 정거장에 내리고, 흔들리는 버드나무에 위협을 느끼고, 지진이 났으면 바란다. 그 시각적인 갈등은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마키코와 독자를 계속 건드린다. 나는 조금 전 ‘어떤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썼다. 정말 그런가? 사건다운 사건 혹은 사건으로서의 사건만이 이야기를 끌고 갈 힘이 있을까. 심각한 순간에 유독 하품이 나오는 마키코의 성격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는가. 생각과 회상만 이어지다 처음으로 인물들이 대화하는 종반부는 그들이 지금 얼마나 중요한 순간에 어렵게 도착했는지 보여준다.

[막대가 하나]처럼 전에 본 적 없는 작품을 읽으면서 나에겐 전에 쓴 적 없는 표현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리고 곧 더 절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압권을 만나 책의 꼭대기에 새로운 책을 올려두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길 계속 실패하고 싶다. 이토록 단단한 그의 세계를 맞닥뜨려 이토록 물렁한 나의 세계를 계속 재확인하고 싶다. 독자를 패배하게 하는 고유한 세계를 또 만나고 싶다. 처음 장편 같은 단편이라 빗댄 것도 그 때문이다. 짤막한 이야기 뒤 거대한 감정과 연출이 물리적인 길이와 무관하게 폭발한다. 타카노 후미코의 만화는 얼버무리거나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정한 끝을 향해 멋대로 돌진한다. 언제까지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어제 처음 읽었고, 오늘 더 읽었다. 내일 또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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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입니다. 무명의 쓰는 사람. 책방 유어마인드와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운영합니다. [책등에 베이다](이봄)를 썼고 아직 이것이 그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새로운 책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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