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전쟁│① 메갈리아, 그 이후

2016.08.02
이 모든 것이 2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4’에서 페이스북의 편파적 운영에 대한 소송비용 충당을 위해 판매한 티셔츠의 텀블벅 후원자는 4,103명,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적힌 이 티셔츠를 입고 트위터에 인증 사진을 올린 김자연 성우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7월 19일, 넥슨은 자사의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 역을 맡았던 그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웹툰 작가, 번역가, 게임 개발자 등 서브컬처 업계 관계자 상당수가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고 넥슨을 비판하는 입장을 드러냈고, 그들에 대한 공격 또한 쏟아졌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티셔츠 구매부터 ‘메갈리아’ 비판까지, 주요 쟁점 5) 김자연 성우에 이어 온라인에 빠르게 업데이트된 ‘살생부’의 개인들에 대한 격렬한 공격이 계속되면서, ‘메갈리아4’가 티셔츠 판매 페이지에 내걸었던 “한 장의 페미니즘으로 세상과 맞서다”라는 문구는 현실이 되었다. 지금 이 한 장의 티셔츠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숫자 ‘4’를 잠시 떼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해 8월 개설된 웹사이트 ‘메갈리아’는 그동안 포털 뉴스의 댓글에서, 페이스북의 ‘김치녀’ 페이지에서,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상적으로 무수하게 이루어지던 여성혐오에 대해 공격적인 언어로 대응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였다. 그러나 12월 초,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용어 사용과 관련한 내부 갈등으로 분열을 겪으며 급속히 침체된 ‘메갈리아’는 지난 7월 18일 전까지 몇 개월간 하루에 많아야 다섯 개 정도의 게시물이 올라오고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을 만큼,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접어든 채였다. 그런데 이처럼 유명무실해졌던 ‘메갈리아’가, 심지어 일찍부터 노선을 달리해 온건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말해 온 ‘메갈리아4’의 티셔츠를 계기로 다시 호명되는 현상은 아이러니하다. 지금 무수히 던져지는 질문, “너 메갈이지?”가 이 모든 맥락을 삭제한 채 사상검증과 낙인찍기의 차원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은 더욱 그렇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혹은 누군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메갈’이 된다. 그가 ‘메갈리아’의 회원이든 아니든, 실제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과거 ‘꼴페미’라는 표현이 그랬듯, ‘메갈=여자 일베’라는 낙인은 메신저를 모독함으로써 메시지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겨누어진다.

그러나 ‘메갈리아4’의 티셔츠 펀딩이 진행 중이던 6월, 남성 커뮤니티 ‘이종격투기’의 관련 게시물에서 한 유저는 “저 옷 입은 또라이 메갈들 대놓구 강간해도 법적으로 무죄하면 되겠네. 오원춘이 저런 애들 죽이면 난 찬성”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오늘의 유머’에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티셔츠 인증 사진과 함께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 지지 발언을 올린 류한수진 씨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한 유저는 그의 아버지 유시민 작가를 언급하며 “진심으로 딸을 위한다면 오함마로 손모가지 날려먹더라도 SNS 끊고 입 다물고 죽은 듯 조용하게 있게 해도 시원찮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티셔츠 한 장에 살인과 강간을 이야기하고,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있어 아버지가 ‘딸을 위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그리고 ‘일베’가 아닌 온라인 공간의 분위기는 놀랍게도 놀랍지 않다. 진짜 시작은 티셔츠도, ‘메갈리아’도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지난해 초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던 김태훈의 [그라치아] 칼럼으로부터, 여성을 ‘개보년’이라고 칭하며 조롱한 장동민-유세윤-유상무의 팟캐스트에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의 소비를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 ‘된장녀’로부터 시작된 것이자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 그중에서도 ‘사이버 성폭력’이라 불리던 온라인 여성혐오 문제가 불거져 나온 90년대 후반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긴, 그리고 일방적인 전쟁이었다. 여성혐오가 일종의 레포츠처럼 뿌리내린 한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 집단은 아무 이유나 근거 없이도 비하·조롱·성적 모욕의 대상이 되었고 여성 개인은 이에 더해 수시로 ‘신상털이’ 등의 위협에 시달려왔다. 여성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포털 뉴스의 댓글을 외면하고, 폐쇄형 여성 커뮤니티로 숨어드는 것뿐이었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이 싸움의 전선을 바꿔버렸다.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사용해 온 폭력적 언어를 성별만 바꿔 되돌려주는 ‘미러링’은, 그것의 본래 의도가 영리한 전략이었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온 절규였든 상관없이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 남성들의 분노와 혐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외부의 평가에 개의치 않는 여성들의 집단은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한 도촬 범죄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고, 강간모의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소라넷’ 폐쇄에 기여한 것을 비롯해 자생적이고 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초부터 이루어져 온 여성혐오 이슈와 관련된 브랜드 및 제품의 불매운동, 언론사의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항의,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대한 추모 행동 등이 모두 ‘메갈리아’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약 4개월의 기간 동안 판세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것만은 분명하고, 이는 지금 페미니즘을 둘러싼 전쟁터에서 ‘죽은 메갈’이 가장 대표적이고 위협적이며 악마적인 존재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녀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는 티셔츠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모인 1억 원이 넘는 금액 역시, ‘메갈리아’ 이후 여성들이 보여준 참전에의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조선일보] 페이스북 관리자는 김자연 성우에 대한 넥슨의 조치에 항의 집회를 하러 간 여성들을 ‘햄버거’라고 칭하며 저열하게 조롱했다. 공론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매체는 노골적으로 혐오 발언을 내뱉고, ‘메갈’의 반대 극에 ‘진정한 페미니즘’을 소환해 심판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점점 약한 고리를 공격하면서 실제로 몇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만들기도 했다.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이 혼돈과 파괴의 한가운데서 이제는 싸움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 ‘미러링’은 분명 풍자와 공격 양면에서 효과적인 전술이었지만 때때로 그 대상이 약자나 무고한 희생자를 향하는 것은 옳지 못할 뿐 아니라 논의를 흩뜨리고 불필요한 손실을 발생시킨다. ‘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워마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위악적 발언들의 전시는 현재까지 블러핑 전략으로 보이지만 낮은 확률이나마 그것이 현실에서의 위해로 드러난다면 지금의 흐름은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야만의 싸움터, 언론사가 오늘도 ‘OO녀’를 양산하고, 여성혐오 발언을 한 유명인들은 승승장구하며, 일부러 여성을 선택해 살해한 사건조차 ‘여성혐오 범죄’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모든 여성이 ‘온건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싸울 필요는 없다. 다만 ‘메갈리아’ 이후, 분열을 극복하고 희생자를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나가되, 다양한 전선에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확보할지 고민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매일 시작되는 싸움이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지점에서 스스로 맞다고,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 역사상 폭력을 다각적으로 감소시켜 온 다섯 가지 역사적 힘 중 하나로 ‘여성화(feminization)’를 꼽았다. 그는 “전통 사회이든 현대 사회이든,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일수록 조직적 폭력이 덜 발생하는 편”이라고 분석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믿거나 말거나, 인류의 긴 역사에서 폭력은 감소해왔다”고 말한다.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하면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과거의 수많은 누군가가 폭력과 맞서 만들어낸 세상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많은 여성과, 다양한 젠더를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싸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덜 폭력적이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언젠가 ‘메갈’이라는 이름이 잊히고, 페미니즘이 더 이상 낙인이 될 수 없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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