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전쟁│④ 페미니즘 굿즈 온리전

2016.08.02
티셔츠와 에코백, 보틀, 스티커, 배지 등 최근 페미니즘 관련 굿즈는 개인과 단체를 막론하고 점점 더 활발하게 제작되는 추세다. 여기에는 ‘이 굿즈들을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계속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데 기꺼이 돈을 쓰겠다’는 태도가 담겨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페미니즘 굿즈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제작자들에게 기획의도를 물었다. 하나의 페미니즘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굿즈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GO WILD / SPEAK LOUD / THINK HARD’ 에코백
제작: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 / 8월 중‧하순경 새 프로젝트 진행 예정

지난해 개그맨 장동민이 JTBC [마녀사냥]에서 모델 한혜진에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해서” 싫고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일에 대해 비판받았다. 그때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SNS에서 #gowildspeakloudthinkhard 해시태그가 생겼고, 우리는 ‘나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이다’를 상품에 넣어 눈에 띄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에코백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똑같은 에코백을 재판매하기보다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고 한다. 최근에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Speak Loud’ 구호를 중심에 두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Feeeeee-kkk!!!’(빼액) 에코백
제작: 페미당당 / 온라인 판매 예정

에코백에 쓰여 있는 ‘Feeeeee-kkk!!!’(빼액)이라는 문구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흔히들 ‘여자들이 빼액거리네’라고 하는 빈정거림에서 따왔다. 지난 7월 8일에는 같은 이름으로 파티를 열었고, 여성 DJ와 파티의 취지에 공감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DJ가 음악을 틀고 ‘NOT YOUR PUSSY’ 배지와 포스터, 가방 등의 굿즈를 판매했다. 즐거워야 할 파티에서도 여성은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대상화되며, 최악의 경우 각종 성범죄와 마주한다. 우리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여성이 마음대로 입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파티를 만들고 싶었다. 주기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파티를 계속해서 열 생각이다.

보지 자수 파우치&에코백
제작: 강철 / 버자이너빅토리(VaginaVictory)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 DM으로 주문 접수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보지라는 단어는 상당히 말하기 껄끄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상의 절반이 가지고 있는 것을 굳이 숨기고, 더럽게 여기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지를 픽토그램 같은 귀여운 이미지로 풀어내어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소품에 자수로 작업한 후 판매하게 됐다. 자수를 선택한 이유는, 최근까지도 예술장르보다 공예로 분류되는 등 오랜 시간 여성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평가절하된 경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수로 보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인 셈이다. 제작은 기존 샘플을 바탕으로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방식이며, 레터링은 의뢰인이 원하는 문구로 작업 가능하다.

‘Do whatever, Be whomever, Feminist’ 에코백
제작: 여성주의 잡지 [사심] / 판매종료

여성들에게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부르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라고 말하는 의미로 만들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굉장히 크게 박혀 있어서 혹시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차마 에코백을 구매하지 못했다는 피드백을 어떤 분으로부터 받았다. 그저 ‘페미니스트 굿즈’를 사는 것일 뿐인데도 사회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2016년 한국의 현실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음 굿즈에는 페미니즘적인 내용을 에둘러 표현하는 문구를 넣을지, 혹은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구를 넣을지 아직 고민 중이다.

‘FEMINIST’ 야구점퍼
제작: 박한희 / 8월 18일까지 선주문

지난해 초 1차 제작을 해서 107벌을 판매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조셉 고든 래빗의 사진을 봤는데 티셔츠를 만들기에는 너무 추운 시기였고, 대학교 학과 점퍼처럼 야구점퍼를 제작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페미니스트들의 유니폼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사실 1차 제작을 했을 때는 ‘페미니스트’라고 적힌 옷을 입는다고 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례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더욱 드러내고 다니고 싶다.

‘FEMINIST’ 티셔츠
제작: 나기x노바디 / 판매종료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남성혐오’라고 몰아세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 속에서 움츠러들기보다는 오히려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가슴팍에 커다랗게 ‘FEMINIST’라는 단어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페미니즘적 행동이라고 여겨 티셔츠를 주문 제작하게 됐다. 기존의 페미니즘 관련 굿즈보다는 조금 더 직설적이고 간결하게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할 것 같았고, 이 단어를 사용하길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선택한 측면도 있다.

‘Radical feminist’ 티셔츠
제작: 쓰리섬 크루 / 정식 브랜드 런칭 준비 중

쓰리섬 크루와 그래픽 디자이너 국한이 함께 진행 중인 ‘아홉개의 성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온 티셔츠다. 온건한 립스틱 페미니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따위의 것들이 너무 지겨워졌고, 이 티셔츠 디자인이 나올 즈음에는 급기야 ‘패션 페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래서 ‘이제는 하다 하다 패션 페미라고? 그럼 진짜 패셔너블한 페미니즘을 보여주지’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티셔츠의 장미 디자인은 1912년 여성 권리를 위한 최초의 대규모 시위에서 미국 노동자 여성들이 외친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이라는 구호로부터 영감을 받아 넣게 되었다. 당시에는 장미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표할 권리’를 의미했다고 한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
제작: 메갈리아4 / 판매종료

처음 기획했던 티셔츠 문구는 ‘Not All Princesses Need to Be SAVED’였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서 많은 남성들이 “지켜주겠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왜 남성들은 여성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됐다. 이런 성 고정관념이 어릴 적 봤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재생산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하여 핵심을 PRINCESS와 PRINCE로 잡았다가, 이 단어들이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는 의견도 있어 위스퍼 캠페인 슬로건인 ‘FIGHT LIKE A GIRL’도 고려했으나 논의 끝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로 확정하게 됐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성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슬로건이다.

‘VOTES FOR WOMEN’ 배지
제작: 메가보지 / 8월 10일까지 2차 판매

영화 [서프러제트]와 관련된 굿즈를 갖고 싶은데 찾아봐도 없기에 직접 만들었다. 사실 훈장도 만들고 싶었으나 높은 단가 때문에 핀 배지로 만족했다. 작품에서 백 년 전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금으로부터 백년 후에 페미니스트는 또 어떤 모습일지 희망적인 상상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백 년 전 주장했을 때는 억압받았으니, 백 년 후에는 현재 억압당하고 있는 주장들이 당연한 일이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나 굿즈를 만들 수 있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페미니즘 굿즈를 착용할 수 있도록 많이들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트위터 @HLHCB)

‘NOT YOUR PUSSY’ 배지
제작: 신화용 / 판매종료, 이후 ‘페미파티’ 등 오프라인 행사에서 판매할 계획

이 배지는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아이덴티티 디자인’ 과목의 졸업전시를 위한 [FLAWLES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5월 진행된 동명의 전시 기념 굿즈로 제작됐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요약하자면 서구 백인 중심주의적 시각의 대상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아시아 여성의 주체성과 연대에 관한 것이었다. ‘NOT YOUR PUSSY’는 무분별한 캣콜링(길거리에서 남성들이 여자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하며 희롱하는 것)에 직설적으로 반기를 드는, “나는 너의 아기 고양이도 아니며 보지 또한 아니다”라는 의미의 문구다. 이 프로젝트의 상징성을 보여준다고 판단해 배지로 만들게 되었다. 

‘조크든요’ 스티커
제작: 텐시 / 판매종료

지난 5월, 90년대 X세대 여성이 또박또박한 발음과 목소리로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좋거든요)”라고 말하는 영상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다. 90년대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말에 신선함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새삼 큰 충격이었던 거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옷차림을 인증하는 #이렇게입으면기분이조크든요 해시태그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서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원하는 곳에 쉽게 붙일 수 있고 널리 배포하기에 유용한 스티커를 선택하게 됐다. “페미니즘은 잘 팔린다”, “돈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와 ‘이렇게 살면 기분이 조크든요’ 스티커를 합쳐 약 4천 장 정도 판매했다. (사진제공: 이로)

‘fem({i})nist’ 팔찌
제작: 숙명여대 중앙 여성학동아리 S.F.A / 판매종료

지난해 숙명여대 축제에서 다양한 콘돔 종류를 소개하는 ‘콘돔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는 ‘보지 좀 보지’라는 이름의 보지․가슴 그리기 대회 및 그림 전시회를 기획했고, 여기에 학생들이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굿즈도 함께 판매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동아리 지원금이 전무해 오로지 회비로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으며 단가를 맞출 수 있는 아이템을 고르다 보니 고무 팔찌와 스티커 정도가 남았다. 팔찌의 ‘fem({i})nist’는 feminist라는 글자를 이루고 있는 알파벳 i에 괄호를 더해 보지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트위터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 만들어 프리소스로 오픈한 ‘보지티콘’이다. 보지 그리는 행사를 운영하는 부스에서 팔찌를 판다면 보지티콘을 새기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Delicious Male Tears’ 머그컵
제작: 하루 / 판매종료

개인적으로 메갈리아4에서 제작한 티셔츠의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문구가 말랑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티셔츠에 격한 반응을 보이고, 김자연 성우가 부당한 일까지 당하는 것을 보며 ‘그렇다면 굿즈에 아예 더 강한 문구를 넣어보자’라고 결심하게 됐다. 서양 페미니스트들의 사진에서 보았던 ‘Male Tears’라는 문구는 적당히 유쾌하게 비꼬는 느낌이기도 했고, 페미니즘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는 일부 남성들의 모습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남성들의 눈물을 ‘마신다’는 의미에서 머그컵을 선택했다. 

투명 생리대 파우치
제작: 쓰리섬 크루 / 8월 22일까지 진행되는 페미니즘 시각예술 매거진 [소문자에프]의 텀블벅 후원 리워드

“너 ‘그거’ 있어?”, “검은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도대체 왜 생리는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 된 걸까? 친구들에게 생리대를 빌려줄 때 보이면 민망할까 봐 천 파우치에 넣은 채로 가방에서 꺼내주었던 기억이 있다. 친구를 배려한다고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곤 했다. 그래서 투명 파우치에 생리대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 이와 더불어 ‘관계’를 주제로 한 [소문자에프] 두 번째 판의 별책으로 ‘정빈’의 가상 페미니즘 영화제 리플렛을 준비했다. 가상의 기획이었지만 최근 좋은 제안을 받아 실제로 영화제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제작: 독립출판사 ‘봄알람’ / 8월 3일 2판 출간 예정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둘러싼 무례한 반응들을 겪으며 원치 않는 대화는 애초에 끊어내고, 논쟁을 시작할 땐 기존의 흐름을 바꾸는 것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무례한 말에 지고 싶지 않을 때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고, 기꺼이 대답해주고 싶으면 적절하고 멋진 대답으로 같이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절한 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친구들에게 엉성한 매뉴얼이나마 절실한 시점인 듯싶어 직접 썼다. (텀블벅 페이지에서 발췌) 책 표지에 있는 캐릭터는 ‘입트페몬’으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고 헛스윙도 해보면서 점점 강해진 끝에 챔피언 벨트를 얻게 되는, 나름의 스토리라인이 있다.

‘FEMINIST’ 훈장
제작: 모펫 / 8월 7일까지 수량조사

[서프러제트]를 본 후 서프러제트들이 서로 달아주는 훈장을 정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작하게 됐다.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와 영화에서 좋았던 구호인 ‘말이 아닌 행동으로(Deeds not Words)’를 함께 새겼다. [서프러제트]의 배경이 백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을 둘러싼 반응들은 현재와 비슷하며, 메갈리아4의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에 관한 논란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시도들이 여성들을 지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메시지가 응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M NOT YOUR Baby’ 보틀
제작: 트위터 @For_feminism_ / 8월 12일까지 판매

최근 메갈리아4의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가 굉장히 이슈였는데, 다른 실용적인 물품에도 페미니스트를 위한 문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보틀을 선택했다. ‘I’M NOT YOUR Baby’라는 슬로건은 영화 [스카페이스]에서 엘비라(미셸 파이퍼)가 주인공 남성에게 던진 유명한 대사를 인용했다. 문구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현시대의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나는 너의 자기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한다는 뜻을 담았다. 굿즈의 제작과 소비가 늘어나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페미니즘을 쉽게 전파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거다. 페미니즘 굿즈를 살 수 있는 오프라인 숍이 생긴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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