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컷, 우리가 퇴화할 것이라는 징후

2016.07.28
일파만파라는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상황이 서브컬쳐계에서 벌어졌다. 기존보다 과격한 방법론을 취한 페미니즘 운동 지류와 느슨한 연관이 있는 캠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유저들이 항의해서, 한 게임 성우의 출연분이 빛의 속도로 삭제당했다. 몇몇 만화가들이 그 성우를 지지하자, 이번에는 그 만화가들에 대한 보이콧이 불붙었다. 불붙은 와중에 경솔한 말이 등장하자, 아예 웹툰에 대한 공권력의 검열을 찬성하자는, 혹은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검열을 당할 때 반대해주지 않겠다는 캠페인이 고개를 들었다. ‘예스컷’ 혹은 ‘노실드’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예스컷 캠페인의 문제점을 논리적 차원에서 반박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어떤 이들에게 불만을 터트리고 싶은 것이든, 공권력에 의한 검열은 특정 작가가 아니라 판 전체의 창작력과 산업적 활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민간심의제를 다듬어내는 것으로 민/관이 몇 년 전 합의한 이유가 그것이다. 또한 그저 함께 싸워주지 않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해도, 공개적 캠페인으로 천명을 해버리면 이미 충분히 적극적인 검열 찬성이 되어버린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당초의 불만과도 상충한다. 과격한 페미니즘이 자신들을 나쁜 놈으로 낙인찍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검열하고 몰아내는 것이 문제라고 여긴다면, 그에 대한 대항으로 판 전체를 적으로 낙인찍고 공권력 검열을 불러오자는 괴상한 거울상이 되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나쁜 발언들을 고스란히 흉내 내자는 속칭 미러링 방법론이 맥락을 잃고 오히려 혐오를 부추겼다며 메갈리아 등지의 페미니즘 전법을 비판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취해서는 안 될 방식이다.

하지만 동시에, 폭발적으로 존재를 드러낸 불만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상황이 번져나가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차별 현실과 보편적 여성혐오 요소는 불이익의 처리속도부터 댓글의 악질성까지 꽤 선명하다. 다만 예스컷에 나선 이들이 모두 극심한 여혐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고 비난하기에는, 스펙트럼이 더 미묘하다. 작가는 사회적 의견을 드러내지 말라는 고전적 “가만히 있어라”를 외치는 이도 있지만, 독자를 바보 취급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해서 화를 내는 이도 있다. 진짜 페미니즘을 바란다는 편리한 변명으로 사회 변화의 속성에 대한 무지를 과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운동을 내건 모욕 흉내내기가 통제력을 잃고 그냥 모욕이 되어버린 문제 사례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나를 업신여긴 업계를 우리 힘으로 응징한다는 원형적 쾌감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을 따름이며, 그 억울함의 내용은 한남충이라고 멸시당한 것이든, 지적으로 무시당한 것이든, 최근 다른 경로에서 들어야 했던 “민중은 개돼지처럼 다뤄져도 된다”는 총체적 계급 폄하든 다양한 내용을 포괄한다. 그 와중에 자신들이 소비자로서의 영향력을 가진 문화 장르에서 실력행사에 나섰고, 나름의 집단적 성과를 올리게 된 셈이다. 처음에는 남성향 모에화가 강한 특정 온라인 게임이 상대였고, 그다음에는 남성향 성인만화의 비중이 큰 웹툰 서비스가 대두되고, 더욱 격화된 공방 속에서 급기야는 웹툰 업계 일반에 대한 도전으로 커져 버렸다.

업신여겨짐에 대한 집합적 분노는, 시민적 평등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민주제 사회라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분노의 기반이 된 문제 자체를 해결해낼 수 있도록 분노의 대상을 정밀하게 가다듬고 분노의 방식을 조율하는 것은 대체로 매우 어렵다. 실제 이뤄진 개별 행동과 그 세부 맥락보다는 편의적으로 단순화한 진영 구도로 상대를 낙인찍는 것, 일으킨 문제의 크기에 비례하기보다는 어쨌든 최대한도로 응징을 원하는 것, 무엇보다 당장의 응징 실현에 몰입하여 사회적 명분이나 판단의 일관성을 잃는 것이 훨씬 쉽고 시원하고 편하다. 쉽고 시원한 정의감을 갈구할 때, 일상적인 성차별에서 탄생한 정당한 분노의 페미니즘 행동에서조차도 아무렇게나 여혐 딱지 붙이기에 도취되며 성소수자 인권 침해를 가벼이 여기는 극단이 생겨난다. 쉽고 시원한 정의감을 갈구할 때, 여성 인권을 응원하는 모습만 보여도 ‘일베와 똑같은 메갈’으로 낙인찍어놓고 자백을 강요하며 밥줄을 위협한다. 쉽고 시원한 정의감을 갈구할 때, 계층 차이가 신분 차이로 굳어버린 듯한 갑갑한 사회현실에 대한 개혁 참여보다는 내게 모욕감을 준 만화가들의 좌판을 뒤엎는다.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권력 관계로 중첩된 불특정 다수가, 도대체 어떻게 어렵고 찝찝하며 불편한 과제에 함께 나설 수 있는가. 공론장을 회복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사회계약을 합의해야 한다거나, 실컷 논의되는 규범조차 어렵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첫걸음은, 그런 것을 해내지 못할 때 다가올 참상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운 만화가들을 응징하자고 검열을 공개 옹호하는 이번 예스컷 운동은 좋은 학습재료다. 공동의 해결 모색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정밀하게 쏟지 못하고 그저 낙인과 조롱과 닮아가기의 사생결단에 심취할 때, 우리가 얼마나 당장 퇴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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