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트이는 [굿와이프] 김혜경 식 화법

2016.07.29
tvN [굿와이프]의 남성들은 보통 김혜경(전도연)에게 무례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일을 뒤늦게 시작했다는 이유로, 이태준(유지태)의 아내라는 이유로 그들은 혜경을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혜경은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대신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배워두면 험난한 실생활에서도 활용하기 좋을, 김혜경식 화법 열 가지를 골라냈다.
 

“바빠서 그만 가볼게.”
① 시간이 부족함.
② 닥쳐.


무려 15년 만에 변호사로 일하게 된 혜경은 실제로 바쁘다. 로펌 일에 적응하랴, 남편과 관련된 일을 정리하랴, 혼자서 아이들까지 돌보랴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지경이다. 하지만 태준은 눈치가 없는 건지 뻔뻔한 건지 면회를 온 혜경에게 간절한 눈빛을 쏘며 외도는 실수였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혜경의 화를 돋운다. “그냥 당신 나한테 개자식이야”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불쾌함을 충분히 드러내며 먼저 자리를 뜨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바쁜지 아닌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너의 말이 나의 기분을 망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법정에서 봬요”가 있다.

“실제로도 젊어요.”
①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음.
② 외모 평가 사절.


극 중에서 정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자녀들의 나이와 사법연수원 수료 등을 고려할 때 혜경은 사십 대 초중반쯤으로 추정된다. 나이를 고려했을 때 혜경의 말간 얼굴이 어려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와 함께 로펌에서 신입으로 일하게 된 이준호(이원근)가 “전업주부 하셨다가 복귀하는 거라면서요. 아, 엄청 젊어 보이세요”라고 이야기한 것은 칭찬을 빙자한 사람 떠보기 혹은 기 싸움의 전초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젊거나 어려 보인다고 말하면 무조건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타인의 외모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는 일 자체가 실례일 수 있다. 이럴 때는 혜경처럼 “실제로도 젊어요. 제가 결혼을 되게 일찍 했거든요” 등 상대방의 예상과 다른 대답으로 허를 찌르는 게 좋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같은 친절한 리액션은 넣어두자. 

“근데 검사님, 연수원 몇 기세요?”
① 선후배 사이를 분명히 하고자 함.
② 닥쳐.


[굿와이프]에서 묘사되는 법조계는 대부분의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의 견고한 세계다. 똑같은 자격을 갖추고 일을 시작했음에도 혜경은 오로지 여성이기 때문에 쉽게 인정받지 못하며, 그중에서도 태준의 후배 검사 도섭(전석호)은 노골적으로 혜경을 무시한다. 재판 중 공개적으로 혜경이 스캔들에 휘말린 태준의 아내라는 사실을 드러내거나, 혜경이 수사의 허점을 찾아내도 “사건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기 일쑤다. 어디서든 위아래를 따져 서열을 정리하는 것은 한국의 나쁜 관습이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전문가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서열을 분명히 확인시켜 줌으로써 관계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다. “도섭이 늦게 시작했구나. 열심히 하자. 그래야 뭐라도 되지?”라는 말과 함께. 

“저 15년간 검사 아내였고 변호삽니다.”
① 이 바닥 생리는 나도 잘 알지.
② 그러니까 닥쳐.


[굿와이프]의 가장 큰 미스터리다. 최상일(김태우)은 어디서 지켜보고 있다가 홀연히 나타나 혜경을 자꾸만 괴롭히는 것일까. 차장 검사라면서 바쁘지도 않은 걸까? 한껏 폼을 잡고 등장해 무언가 주절주절대는 모습이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우습지만, 어쨌든 혜경에게는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혜경이 사건을 해결해내면 태준이 정보를 알려준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태준의 스캔들이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고 일러바치는 등 계속해서 혜경에게 태준과 법조계, 부부관계에 대한 ‘맨스플레인’을 늘어놓는 게 그다. 사건의 전말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본인만 알고 있는 듯 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알맹이 없는 소리만 하고 있는 상일 같은 사람에게는 ‘네가 알 정도면 나도 당연히 안다’는 제스처를 분명하게 취할 필요가 있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지겨운데, 실속 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줄 여유 따위는 없다.

“앉아도 된다는 말 안했는데요?”
① 갑작스런 동석(同席)에 불쾌함을 느낌.
② 꺼져.


상일은 언제나 혜경에게 무시당한다. “법정에서 봬요”, “보여주실 게 있으면 지금 보여주세요. 제가 요즘 바빠서 상대할 시간이 없네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혜경의 교통사고 전과를 약점 잡아 협박하려 해도, 태준의 감춰진 진실을 폭로하려 해도 혜경은 상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쌩하니 가버릴 뿐이다. 그럼에도 약속하지 않은 자리에까지 나타나 자연스럽게 착석한 후 혜경에게 말을 거는 그의 근성과 오지랖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며, 직접적이지 않을 뿐 늘 ‘닥쳐’ 혹은 ‘꺼져’와 다름없는 말을 듣고 있다는 점에서 [굿와이프]의 말포이를 맡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는 한껏 경멸하는 표정뿐이지만 말이다. 

“해명이든 사과든 짜증이든 나중에 낼 테니까 좀 가줄래요?”
① 매우 피곤한 상태.
② 제발 꺼져.


준호는 로펌 대표 서중원(윤계상)과 혜경이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고 따지러 온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해야 하며, 대표나 회사에 직접 이의제기를 할 만한 용기는 없는 타입이다. 혜경이 정한욱(정동현)의 강간 혐의를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차에 문득 나타나 정정당당하게 겨루자느니 하는 말로 자신의 투지를 드러내지만, 혜경은 자신이 지금 매우 바쁘고 힘들며 때문에 너에게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다는 의사를 정중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한다. 어떤 관계에서든 반드시 웃으며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제가 변호산데요?”
① 의뢰인과 변호사의 역할 차이를 분명히 함.
② 쉿.


[굿와이프] 3화의 에피소드는 보통의 남성이 여성,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젊은 시절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는 중원의 아버지 서재문(윤주상)조차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자신의 변호를 맡은 혜경을 신뢰하지 않고, “(너는) 법정에 그냥 꽃처럼 서 있기만 하면” 될 뿐 자신이 시키는 대로 변론하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혜경에게 “내 아들하고 잤나?”라고 성희롱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무례함을 받아치며 들어선 재판에서도 재문은 변함없이 혜경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판사 또한 “의뢰인과 변호인이 먼저 말을 맞춰야 될 것 같다”며 변호인으로서 혜경의 지위를 그다지 존중해주지 않는다. “제가 서재문 씨의 변호인입니다. 이분은 피고인이고요” 같은 당연한 말을 계속 해야 하는 게 수많은 여성들의 현재인 것이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요?”
① 바빠서 추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
②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


이혼 전문 변호사 데이비드 리(차순배)는 정중한 척하면서 은근히 혜경을 괴롭힌다. 첫 만남부터 면전에서 태준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라 하거나, 자신의 의뢰인과 함께 있어달라며 다른 업무를 보고 있던 혜경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 이런 경우 당황하며 난처한 표정을 짓거나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보다는 혜경처럼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원래 하고 있던 일이) 제가 진행했던 일이라서요”라고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 편이 좋다. 설사 냉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든 마음껏 시킬 수 있는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부탁을 들어주게 되더라도 자신의 기여도를 정확히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쉽다. 가만히 있으면 남는 건 억울함뿐이다.

“제발 눈을 뜨고 세상을 좀 보세요.”
① 지금은 2016년입니다.
②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아내가 이혼을 결심할 때까지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다. 자신과 아내의 관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아내를 남편에게 소속된 존재로 여긴다. 상일이 혜경의 배후에 태준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여성에게도 독립적인 생각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짜고짜 남의 로펌에 들어서서 소리를 지르고, 이혼하겠다는 아내의 입장을 대놓고 무시하며, 혜경의 손목을 거칠게 잡는 등 폭력성을 감추지 못하는 상일은 말 그대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를 지닌 남성이다. “제발 눈을 뜨고 세상을 좀 보세요. 혼자 꿈만 꾸지 마시고요”라는 혜경의 말은 상일처럼 여전히 자신만이 세상의 중심이며 모두가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 남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경우에 진실은 하나예요. 그 진실은 제가 정하는 거고요.”
① 증인으로서의 소신과 각오를 밝힘.
②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렴.


남성들은 혜경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접근한다. 태준이 혜경의 기분과 관계없이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시에 좋은 남편으로서의 역할극에 심취해 있다면, 상일은 자신의 뜻대로 혜경을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태준의 변호를 맡은 오주환(태인호) 또한 혜경을 신뢰하지 않고 증언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증언은 백 퍼센트 혜경의 몫이며, 부부관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혜경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는 법정에서 태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그것을 자꾸 캐묻는 게 왜 재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지 말하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러니까, 여성 역시 자신만의 생각이 있으며 그것을 똑바로 표현할 용기와 방법까지 갖고 있다. 2016년에도 누군가에겐 놀라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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