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지방 소멸], 불안한 서울공화국

2016.07.29
지난 한 달은 마치 중앙정부가 영남을 놀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신공항은 백지화됐다. 부산 기장읍에는 원전 두 기가 추가로 간다. 경북 성주에는 사드를 안겨줬다. 하나하나 따져 보면 터무니없는 결정은 아니다. 신공항은 비용 대비 편익값(흔히 ‘B/C’라고 부른다)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나는 단호한 탈핵론자는 아니어서, 한국의 에너지 공급체계에서 원전의 필요성에 제한적으로 동의한다. 시민으로서 나는 사드 반대론에 좀 더 가깝지만, 역시 배치 결정 자체가 황당한 오판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걸로 괜찮은 걸까? 모든 정책결정을 이렇게 ‘합리적으로’ 한다고 상상해 보자. 요즘 지방에는 돈도 사람도 없다. 대학과 직장이 있는 서울로 기회를 잡은 이들부터 올라가고 지방은 갈수록 비어간다. 대규모 국책사업 투자를 하려 해도 사람과 돈이 없으니 ‘B/C’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혐오시설은 사람과 돈이 없는 곳일수록 더 쉽게 들어간다. 이 악순환을 따라 지방은 더욱 더 비어가고, 수도권 유입도 더 거세진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정책 판단이 다발로 모이면, 돈과 사람을 서울로 빨아들이는 펌프가 된다.

한국은 국토가 좁은 나라이니, 차라리 자원을 수도권에 집중시켜 규모의 경제와 창발성 효과를 노리는 게 맞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이 말도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의 인구 문제를 다룬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 소멸]은 아주 흥미로운 반론을 제시한다. 저출산과 인구 유출로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는 지적까지는 새롭지 않다. 이 책이 빛나는 대목은 지방이 소멸하면 수도권도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논증이다. 이 논증에 성공함으로써 저자는 ‘지방의 문제’를 ‘국가 미래의 문제’로 바꿔낸다.

집값이 비싸고 생활비가 높은 도쿄는 아이를 낳기에 좋은 도시가 아니다. 직장 잡고 집 구하고 하다 보면 출산 능력이 가장 높은 시기는 이미 지나 있다. 도쿄의 출산율은 일본 최저 수준이다. 도쿄 인구는 자체 재생산보다는 지방으로부터의 유입에 더 의존해 왔다. 그런데 지방이 소멸해 버린다면? 수도권도 인구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지방 소멸이란 결국 국가의 소멸을 뜻한다. 한국은 다른가? 2014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983명. 합계출산율이 1명보다 낮은 광역단체는 서울 밖에 없다.

현재 상태에서, 신공항 백지화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터무니없이 불합리했던 대목은, 현재 상태를 그냥 두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묘한 가정이다. [지방 소멸]은 기본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다루지만, 도쿄가 지방 소멸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다루다가는 시스템 전체가 침몰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책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국가가 전략적 큰 그림 없이 개별 정책결정의 합리성만 추구하다 보면 ‘현재 상태’를 ‘정상 상태’로 간주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신공항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다.

지방 출신 서울 거주민인 나는 지방을 ‘나와 상관없는, 저기 멀리 떨어진, 좀 못 사는 외국’처럼 낯설게 보는(정확히는, 거의 보지 않는) 서울 특유의 감수성에 종종 놀란다. 지방의 문제를 서울의 생존과 엮어 설득해야만 관심을 가질 거라는 발상부터가 좀 구차하다 싶기도 하지만, 이미 충분히 서울공화국인 이 나라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설득전략인 것 같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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