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배우가 [고스트버스터즈]에 출연한 뒤 생긴 일

2016.07.27
레슬리 존스가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근 몇 달 동안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내뱉은 저열하고 혹독한 모욕들은 인류학적 기록 자료로 보존해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사라졌으며 여성 혐오는 일부 여성들의 피해망상일 뿐이라고 믿는 현대인들은 물론, 후대인들도 똑똑히 봐둘 필요가 있다. 2016년에도 흑인 여성 코미디언에게 오랑우탄 사진을 보내며 그의 죽은 형제를 들먹이고 성적인 모욕을 주기 위해 정성스럽게 합성 사진을 만드는 인간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코미디언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미움을 받느냐고? 우선 레슬리 존스는 80년대 백인 남성 3명과 흑인 남성 1명이 주연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에 다른 여배우들과 함께 출연했다. 또한 그는 지난 40년간 흑인 여성을 두 명 이상 고용한 적이 없었던 유서 깊은 코미디 쇼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의 정규 멤버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큰물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심약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여성 혐오주의자들이 앞다투어 키보드 앞으로 달려올 법도 하다. 중년의 목소리 큰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 위주였던 놀이판에 당당하게 끼어들었으니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게다가 가만히 있기라도 하면 몰라, 마땅히 먹어야 할 욕에 일일이 맞는 말로 받아치기까지 하니 어떻게든 기를 꺾어야 한다는 신성한 의무감이 끓어오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레슬리 존스도 처음부터 맞서는 대응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했고 프로 생활도 진지하게 생각했던 그는 [SNL]에 발탁될 당시 이미 40대 후반이었다. 자아 탐색 및 수용은 25년 넘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그리고 형제의 죽음을 겪으면서 이미 다 끝낸 상태였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레슬리 존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싫으면 싫어하라지. 보는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펴게 되는 자신감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고스트버스터즈]를 따라다닌 논란 속에서도 늘 꿋꿋한 그를 볼 때마다 나도 외쳤다.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 미움을 이겨내는 게 옳아요! 대인배!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그런 식의 ‘마음으로 보내는 응원’은 내 기분만 흐뭇하게 할 뿐, 정작 그 미움이 현실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특정 장르 팬덤의 ‘비뚤어진 애정’ 탓하기는 너무 귀엽게 들린다. 감독인 폴 페이그와 네 명의 주연 배우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의 강도는 이미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으며, 그중에서도 레슬리 존스는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가 결합된 가장 혹독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며칠 전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호소했듯이 이런 명백한 혐오 앞에서 사랑으로 감싸라느니 우아하게 무시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느니 하는 조언은 안 하느니만 못 하고, 그만이 겪어야 하는 이중의 불리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 분석은 안일하게 느껴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다가 TV와 영화로 영역을 넓힌 남성 코미디언들은 수도 없이 많다. 과거에 사랑받았던 작품의 리메이크에 출연한 남자 배우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인종과 성을 동시에 비하하는 모욕을 받으면서도 ‘대범하고 우아하게’ 처신하라는 충고를 받지는 않는다. 아니, 그보다 그들은 애초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 백인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레슬리 존스를 더 큰 무대로 이끌어 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 역시 성차별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 그도 인종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름을 알리지 않았던가. 그러니 누가 감히 레슬리 존스에게 분노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스트버스터즈]의 시사회를 앞두고도 어떤 디자이너도 드레스를 제공하지 않아 SNS로 해결책을 찾아야 했던 그에게 더 이상의 관용을 요구하는 태도는 무신경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2016년이다. 충분히 참아온 레슬리 존스가 아닌 나머지 세상이 더 나아질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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