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이 그리는 여성이란

2016.07.20
“따뜻하고 포근한 여자는 보통 자극적이고 섹시하지 않고, 자극적이고 섹시한 여자는 보통 따뜻하고 포근하지 않은데 이 친구는 드물게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박진영은 자신이 프로듀싱한 미쓰에이 페이의 솔로 활동을 홍보하며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남겼다. 페이가 얼마나 다층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인지 설명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이 글은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도리어 논란만을 일으켰다. 여성이 ‘따뜻하고 포근한 성격’과 ‘자극적이고 섹시한 매력’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여성을 양분화된 프레임 안에 가둔 채 평가하려는 발상이며, 페이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시도이기도 하다.

박지윤부터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까지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에는 다른 어떤 기획사들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여성 뮤지션들이 있었고, 박진영은 오랫동안 JYP의 수장일 뿐 아니라 그들의 프로듀서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걸 그룹 한 팀이 성공하기도 어려운 시장에서, 데뷔하는 팀마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박진영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 덕분이기도 했다. 다만, 박진영이 여성 뮤지션의 가사 안에서 그리는 여성상은 늘 유사하다. 데뷔곡 ‘Irony’에서 남자를 믿을 수 없다고 노래하던 원더걸스가 ‘Tell me’에서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에 격하게 기뻐하는 여자아이가 된 것처럼, 미쓰에이 역시 데뷔곡 ‘Bad Girl Good Girl’에서 못난 남자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린 후 다음 곡 ‘Breathe’에서는 “너 땜에 자꾸만 내 가슴이 너 땜에 자꾸만 내 몸이” 떨려온다고 노래했다. “지금 혹시 내게 좋다고 말했니 그게 진짜니”로 시작하는 트와이스의 ‘다시 해줘’는 ‘Tell me’의 반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박진영은 어떤 여성을 가사로 표현하든 남성의 존재를 지우지 못하고, ‘센 여자’는 남자에게 일침을 날리는 여자, 그렇지 않으면 남자 때문에 설레어 어쩔 줄 모르는 여자라는 묘사를 반복한다. 최근 그가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통해 프로듀싱한 언니쓰의 ‘Shut Up’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언니쓰 멤버들은 팀의 콘셉트를 위해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고 레퍼런스로 영화 [코요테 어글리]까지 제시했으나, 정작 결과물은 바람피우는 남자에게 경고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되었다. 뒤늦은 꿈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언니쓰의 서사는 ‘Shut Up’에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

여성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 부족. 세상에는 다양한 스토리와 스타일을 가진 여성들이 존재하지만, 박진영은 몇 가지 납작한 프레임으로 여성을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시야를 확장시키지 않는다. 그저 대중적으로 폭넓게 어필할 만한 콘셉트를 잡았을 뿐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가 2008년 재출간한 책 [미안해]에서 이미 여성을 향한 몰이해를 명확하게 드러낸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박진영은 여성의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정신적 독립, 경제적 독립을 꼽으며 “경제적 독립은 여성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여성 입장에서는 가장 달콤한 부분이기에 잘 뱉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진영이 이야기하는 독립적인 여성은 소위 말하는 ‘개념녀’에 가까우며, 이러한 생각은 그가 작사한 미쓰에이의 ‘남자 없이 잘 살아’에 그대로 녹아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고,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에 기대려 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편견임에도 박진영은 ‘개념녀’를 앞서 나가는 여성상인 양 제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나는 페미니스트? 이기주의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내가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것은, 많은 여성들이 깨어나 자기주장이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함으로써 나에게 더 많은 재미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페이와 여성들에 관한 박진영의 앞선 발언은 한순간의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살아있네’의 가사처럼 박진영이 “레코드판이 카세트가 되고 카세트 테잎이 CD로 바뀌고 CD가 다운로드 스트리밍이 돼도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도”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로서 살아남는 동안 그의 잘못된 여성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JYP가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원더걸스와 백아연, 백예린 등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은 이들 스스로 곡을 쓰며 조금씩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이뤄낸 것이다. ‘I Feel You’에서 남자의 손길을 잊지 못하는 여성이었던 원더걸스는 ‘Why So Lonely’에서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권태와 답답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 되었고, 백아연은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와 ‘쏘쏘’ 등 연애와 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마음을 털어놓는 또래 여성다운 얼굴을 보여준다. 백예린 또한 사색의 흔적이 묻어 있는 그만의 언어로 여러 감정을 노래한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성 창작자들을 통해 들려오기 시작하는 이때, 박진영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한 과제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가 가장 싫어한다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계속해서 뛰어난 프로듀서로 “살아있네”라고 자신할 수 있으려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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