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낙태할 권리

2016.07.11
미국 연방 대법원이 5 대 3으로 텍사스의 낙태 제한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를 두고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말한다. 정말 역사적인 판결일까? 답을 알기 위해선 낙태에 관한 연방 대법원의 과거 판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연방 대법원의 낙태에 대한 중요한 판결은 세 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두 번째는 1992년의 플랜드 패런트후드 대 케이시, 그리고 마지막이 이번에 있었던 홀 우먼스 헬스 대 헬러스테트다.

1973년, 연방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에서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가 여성들의 낙태 권리까지 포함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 판결로 인해 미국의 여성들은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됐고, 미국의 주들은 임신 마지막 3개월의 기간에만 낙태를 금지할 수 있게 됐다. 임신 마지막 3개월에 대한 규제는 그 시기가 (비록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태아가 모체의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때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간의 한정은 1992년 케이시 판결에서 사라진다. 의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태아의 생존력에 관한 3개월의 기간 한정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스]에서 지적하듯, 케이시 판결이 남긴 문제가 있다. 케이시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우리는 3개월의 기간 한정을 없애버릴 것입니다. 주에서는 임신하는 순간부터 여성들이 낙태에 반대하도록 설득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보수적인 주들은 이를 더 공격적인 낙태 제한법을 통과시키라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텍사스의 낙태 제한법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텍사스의 낙태 제한법, HB2가 주 의회를 통과한 2013년, [뉴욕 타임스]는 이 법의 문제점을 조명한 기사를 냈다.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 임신 20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했고, 두 번째로 낙태 클리닉에 통원이 가능한 수술 센터 수준의 시설을 요구했으며, 마지막으로 근처 48km 이내의 병원과 바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사전 합의 — 환자 이송 특권(admitting privileges)이라고 한다 — 가 되어 있어야 했다. 연방 대법원은 이러한 규제가 낙태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며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로 이 판결을 환영했다. “낙태 권리에 있어 중요한 승리”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판결이 “만장일치여야 했다”고 말한다. 또한 법이 통과될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릭 페리가 낙태가 없는 “이상적 세상”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 법이 표면적으로 표방했던 여성의 안전이 아니라 실질적 낙태 금지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는 걸 분명히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텍사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주에서도 낙태를 규제하는 법이 있다며, 이번 판결이 단순히 텍사스 법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인포그래픽으로 보여줬다. [복스]는 실제 이 판결로 인해 앨라배마에서 비슷한 법을 지지하려는 법적 시도가 포기됐다고 보도했다.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듯, 이런 것들이 낙태를 조장하고 생명을 싸구려로 만들게 될까?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낙태율이 세계적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며, “낙태를 안전하고 합법적인 선택지로 간직하고 싶은 동조자들”도 “낙태를 범죄시하지는 않을지언정 최소화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썼다.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선택권은 흔히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낙태를 법으로 금지한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가볍게 처벌하면 낙태가 만연할 수 있다며, 낙태 시술 처벌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된 글에서 얘기하듯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팩트에 기반을 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낙태가 합법인 미국 같은 나라에서 낙태율이 줄고 있다는 팩트를 외면하고 있는듯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도 낙태 권리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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