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과학하는 마음

2016.07.08
어느 영화 전문지가 카메론 디아즈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디아즈에게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한테 뭔가 궁금한 게 있나요?” 그러자 디아즈가 말했다. “E=mc2가 정말로 무슨 뜻이에요?”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자신의 책 [E=mc2]의 첫머리에 소개한 에피소드다. 보더니스는 물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정체를 자신의 주위 사람들도 디아즈만큼이나 열렬히 궁금해한다는 데 놀라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보더니스의 이 책도 언제고 여기서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 중 절대다수는 10대 시절에 깨닫게 된다. 인간의 뇌는 물리학을 이해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광속이니 힉스 입자니 극단의 세계를 넘나드는 현대물리학은 우리 뇌가 진화해온 지구 표면 세계의 경험으로는 상상도 쉽지 않은 물리법칙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양자역학은 유난히 정신사납다. 뭐, 전자 입자 하나가 구멍 두 개를 동시에 지나갔다고? 그런데 또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한 개로 돌아와? 그러니까 슈뢰딩거란 작자가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는데, 그게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다고? 그 양반 고양이한테 왜 그런대?

물리법칙 처리모듈이 없는 대신 우리 뇌에는 세상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려는 못 말리는 호기심이 장착되어 있다. 디아즈가 상대성이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양자역학을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했다. 그리고 나의 까다로운 뇌는 조건 하나를 더 단다. “알지? 수학은 쓰지 말고.” 이 뻔뻔스러운 요구에 훌륭하게 응답하는 책이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와 [김상욱의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다. 과학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엮어 출판한 시리즈 중 3, 4권이다. 이론물리학자 김상욱은 수식을 쓸 수 없고 오로지 ‘이빨’로만 일반인에게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극한체험을 두 번이나 했다.

입자가 둘이 됐다 하나가 됐다, 고양이가 죽었다 살았다 하는 정신 사나운 이야기를, 이 책은 보통 사람이 알아듣게 설명해낸다. 브라보. 일반인 눈높이에 맞추려는 김상욱의 노력은 눈물겨울 지경이고, 사회자 원종우는 청중이 흐름을 놓치겠다 싶은 대목마다 기민하게 개입해 들어간다. ‘한 권으로 끝내기’ 류의 오만도 부리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생략된 설명인지 되풀이해 강조한다. 덕분에 독자는 “내가 양자역학을 이해했어!”가 아니라, “감이 올 것도 같은데, 어디 본격으로 다룬 책을 찾아 읽어볼까?” 하는 겸손한 호기심 상태가 된다. 바꿔 말하면, 독자를 ‘과학 하는 마음상태’로 가져다 놓는다.

우리 모두가 양자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당대 지식의 최전선을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하려는 태도는 시민의 중요한 덕목이다. 최전선과 대중의 지식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빈틈을 헤집는 선동꾼과 유사과학의 난장판에 사회가 취약해진다. 지식의 발전 속도가 하도 빠른 우리 시대는 특히 그러기 쉽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믿는 남자가 절반쯤 대통령(트럼프가 아니면 누구겠어?)인 시대다. 사회 어딘가에 기능장애가 있다는 신호다. 지식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은 학자와 대중 공동의 책무이고, 이 책은 물리학자가 책무를 다한 멋진 사례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목록

SPECIAL

image 한국, 광고, 혐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