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셔로], 영웅 신화를 깨는 영웅 이야기

2016.06.29
웹툰 [캐셔로]의 상웅과 민현은 소지하고 있는 돈 만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다. 그러나 그들은 공과금 내기 직전에나 힘을 쓸 수 있고 사람을 구할 때 잠깐 지갑을 빌려달라고 해야 할 만큼 돈이 없다. 또 다른 슈퍼히어로, 술을 마셔야 능력을 쓸 수 있는 수오는 미성년자가 ‘주폭’이라며 동네에서 의심을 받는다. 의명은 그가 좋아하는 윤주가 있을 때만 힘이 생기는데, 하필 그는 태권도 선수이며 상대 선수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경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상에 밀접한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설정은 그들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한다. 더군다나 기본적으로 슈퍼히어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회비용으로 삼아, 시간과 체력, 온갖 감정 노동까지 투자해야만 한다. 힘이 생겼다고 감정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거나 시간을 무한정 더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셔로]의 슈퍼히어로들에게 지속 가능한 호의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30년 전 초능력을 갖고 활약했던 호정은 빚을 지면서까지 무리해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돈에 대한 아쉬움과 무력감을 느끼며 남은 일생은 능력도 발휘하지 않고 살았다. 호정의 인생이 보여주듯 영웅의 희생은 숭고하지만, 외로운 희생은 오히려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대신 호정이 수십 년 후 오랜만에 힘을 쓴 것은 고공농성자들에게 핫팩과 음식과 보온병을 전달해주며 그들을 격려한 일이었다. 수오가 자신이 생각나는 만큼만 관찰하던 소녀의 자살을 막았던 것처럼 지속 가능한 선의는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찰나의 순간에 목숨을 살리는 일도 해낼 수 있다. 이 만큼의 선의는 시혜자와 수혜자를 구분 지으며 슈퍼히어로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격상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외로운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 만큼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싱크홀 사태를 막고자 통제 가능한 인위적 싱크홀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악구도가 정해진 일종의 패싸움을 연기하고, 위엄 대신 자극적인 논란의 주인공을 자처하기도 한다. 일종의 쇼를 연기하는 것으로 희생을 강요받거나 과시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때문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배려의 순간도 반짝거리게 묘사하는 [캐셔로]에서 주인공들이 남다른 사명감이 있거나 무결한 인간으로 묘사되지 않는 것은 필연적이다. 조금의 흠 잡힐 일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실행에 옮길 배짱은 없다. 주인공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구해줬으니 수수료 겸 기절한 사람이 떨어뜨렸던 지갑에서 3만 원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에 잠시나마 “얼마나 빼?”라고 잠시나마 충동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유명해지면 식당에서 주인아저씨가 음식 값을 안 받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런 순간을 소소한 일상적인 유머로 승화시키는 [캐셔로]는 선의를 갖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완벽하게 흠이 없거나 대단한 철학이나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냥 정말 어쩌다가 그냥 이렇게 된 거.” 여러분이 히어로 같다는 연구원의 말에 무덤덤한 상안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쩌다가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캐셔로]는 지치지 않는 선에서의 선의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1부의 주인공들은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때 부족한 돈이나 술을 잠시 빌리기도 했고, 2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함께 합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초능력자들은 물리적으로 힘을 합치고 그들의 친구들은 아이디어를 낸 결과 통제 가능한 상황의 싱크홀을 만들어내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웹툰의 설명대로 소동물/요정계 캐릭터의 청탁을 받는다거나 악의 비밀조직에 납치되어 개조인간이 된다거나 외계의 오버 테크놀러지로 초전사가 되는 전개와 비교했을 때 “20대 후반에 재래시장 떡집에서 주인 할머니의 권유로 슈퍼히어로가 되는 상황”은 놀라울 만큼 소박하지만, 그만큼 [캐셔로]에 등장하는 영웅이 가질 만한 호의와 행동 의지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캐셔로]가 슈퍼히어로 장르물로서 독특한 지점은 단지 주인공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우지 않고 생활 밀착형인 문제를 해결해서가 아니다. 영웅물의 장르 안에 속하면서도 도리어 영웅 신화를 깨기 때문이다. 선의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개인의 위대함이 아니라고, 짐을 나누어 가지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그러니 좀 더 용기를 내도 괜찮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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