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여성 영화의 달?

2016.06.24
“6월은 여성영화의 달이다.” 지난 2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변영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영화제가 개최되고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가 개봉할 예정이며 현재 가장 흥행하고 있는 영화가 여배우들이 중심이 된 [아가씨]인 지금은 어느 때보다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영화계의 중심에 여성이 서 있는 순간을 특별히 기념해야 할 만큼 여성들은 중심부에 서 있지 않다.

“남성중심적인 분위기.” 몇 편의 상업영화 스태프를 거친 A씨는 이렇게 자신의 고충을 표현한다. “단순히 현장에 여자가 적다거나 한 문제가 아니다. 분장이나 의상 쪽은 여자가 더 많기도 하고, 지금 있는 현장도 연출부 막내는 여자다. 다만 나 자신이 핵심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느끼는 게 문제다.” 스태프로서 필요한 능력이 아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 영화제작사 대표 B씨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태생적으로 남자는 공격적이고 여자는 방어적이라 기초 체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높은 강도의 육체노동을 감당해야 하고, 특히 촬영·조명·동시녹음과 같은 기술 스태프들은 수십 kg의 장비를 옮기는 일을 겸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 편의 상업영화 스태프를 거친 C씨는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장비를 옮기는 등의 힘쓰는 일은 스태프 간에 일을 잘 분담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명 스태프를 하고 있는 여성 D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무거운 걸 잘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중요한 건 사람과 대화하고 얼마나 공부했는가”라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여성 스태프에 대한 인식 그 자체다. 임순례 감독이 “촬영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이 여자가 카메라 만지는 것을 싫어해서 다른 남자들은 눈높이에서 뷰파인더를 보게 하고 여학생들은 카메라를 바닥에 놓아 누워서 보게 했다”(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판사]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고 설명한 90년대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열악하다고 알려지는 현장일수록 여성이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B씨는 “지방 촬영을 갈 때 촬영부, 촬영기사 합쳐서 방을 1~2개만 주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포함돼 있으면 함께 지내기 불편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선배가 죽었다 깨어나도 날 데려가야겠다고 말해주면, 숙소를 포함한 문제들도 어떻게든 해결된다. 기술 파트에 여자들이 많으면 해외 촬영이 있어도 그 사람들끼리 방을 함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D씨처럼 해결 방법을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만, 이런 노력을 하는 현장은 그리 많지 않다. 몇 편의 상업영화 스태프를 거친 여성 E씨는 “영화 하는 여자들은 술도 잘 마셔야 한다. 남자들 중심의 현장 분위기에 흡수되려면 어쩔 수 없이 남자처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여성 스태프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판사]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예리는 “많은 여배우들이 모이면 술자리에서 불편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고백했다.

여성 스태프가 능력 이전에 성별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장의 분위기는 영화일을 꿈꾸는 여학생들의 심리에도 영향을 준다. 모 대학교 영화과 학부를 졸업한 후 현재 같은 학교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여성 F씨는 “학부 입학할 때는 동기들 성비가 반반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자 동기들은 대체로 기획 PD를 하거나 투자배급사, 영화제작사에 들어가는 등 데스크 업무를 한다. 현장에서 일하며 ‘입봉’을 준비하는 건 대부분 남자 동기”라고 말했다. “힘든 현장에서는 사람같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은 버티기 힘들다”는 식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 심리적 장벽이 됐다는 것이다. 모 영화 학교에 재학 중인 여성 G씨는 “입학할 때는 학교에서 여자가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기술 부문에서도 여학생을 고르게 선발한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허들이 높은 까닭에 졸업 후 영화가 아닌 광고 쪽으로 빠지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적응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굳이 들어가거나, 개선을 요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은 [아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라는 것 자체가 삶을 담아내는 도구인데, 만드는 사람들의 성비가 깨지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쩔 수 없이 영화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말했다. D씨는 “여자 스태프를 꼭 포함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남자만 있을 때보다 팀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로 합쳐 나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최근 흥행하고 있는 [아가씨]는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미술을 담당한 류성희 미술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작 현장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어날 때 한국영화를 얼마나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다.

영화 제작 현장은 “원래 힘든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작년을 기점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크게 확대됐고, 십수 년 전보다 ‘입봉’의 기회를 잡은 여성 감독도 늘어났다. 변화는 계속되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들]이나 [아가씨]와 같은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성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여성 영화인의 참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만 의도적으로 애써 더 노력하고 설득하고 설득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리즈 위더스푼이 [와일드]를 제작한 것처럼 제작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캐스팅에 응한다거나, 영향력 있는 여성 영화인이 연대하고 노력하면 예비 영화인들, 여학생들에게 귀감이 되고 자극이 되고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필요한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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