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파탈’은 실재하는가

2016.06.23
지난해 ‘뇌섹남’에 이어 또 하나의 유령이 한국 대중문화 미디어에 창궐하고 있다. ‘아저씨’의 낮춤말인 ‘아재’와 ‘파탈(fatal: 치명적인)’을 합친 ‘아재파탈’은 지난 3월 [TV 리포트]에서 매력적인 40대 남자 배우 조진웅·지진희·이서진을 묶어 소개하며 처음 공식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도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았고 여전히 댄디한 이미지를 지닌 지진희와 이서진이 40대가 되었다 해서 갑작스레 ‘아재’의 범주로 소환하는 것은 뜬금없다. 이후 쏟아져 나온 기사들에서도 알 수 있듯 ‘아재파탈’의 원형은 조진웅이다. 그동안 수많은 남자 주인공들의 매력이 훤칠한 꽃미남 외모에 ‘차가운 도시남자’로 요약되는 성격, 재벌 2세와 같은 조건 등에서 나왔던 것과 달리 tvN [시그널]에서 정의롭고 마음 따뜻하며 사랑 앞에 수줍어하는 등 귀여운 구석도 있는 형사 이재한을 연기한 그는, 미남은 아니지만 건장한 체격과 섬세한 연기, 작품 안팎에서의 호감 가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아저씨’라는 단어가 원빈을 만났을 때 다르게 들렸듯, ‘아재’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자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이처럼 독특한 맥락과 적절한 대상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시작은 조진웅이었으되 그 끝은 아무나가 될 것이다. 

지난 3개월간 매체에서 보도된 바를 기준으로 하면 안재욱, 박신양, 이성민, 윤상현 등 드라마 주연을 맡은 40대 남자 배우는 일단 ‘아재파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연기자가 아닌 안정환도, 30대 중반의 비도 ‘아재파탈’이라 불린다. tvN [명단공개]는 ‘아재파탈 스타’로 정우성, 조진웅, 에릭, 하정우, 황정민, 은지원, 유지태, 진구를 뽑으며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사실 정우성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아재’가 아니라 ‘세기의 미남’이다. 하정우가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고, 에릭과 은지원이 원래부터 미남 아이돌이었듯 이들의 매력을 대표하는 키워드도 ‘아재’가 아니다. 그러나 김흥국, 이연복, 설운도가 ‘아재파탈’ 열풍의 주역으로 불리고,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어린 여성과 교제하는 남성 연예인들도 ‘아재파탈’의 자격을 얻는 지금 35세 이상의 한국 남자 연예인이라면 아무나 ‘아재파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TV조선 [호박씨]는 성별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이영하, 석주일, 한석준을 초대해 ‘아재파탈 특집’을 방송했다. 남자가 아니라 ‘수컷’이기만 해도 된다. [정글북]의 흑표범 바기라(벤 킹슬리)는 ‘중후한 아재파탈’이라고 불린다.

‘아재파탈’ 열풍을 주입하고 확산시키는 매체들은 여성들이 ‘오빠’보다 멋진 40대 남성들의 ‘아재미(美)’에 홀딱 빠졌다고 분석한다. 이들의 비교 대상은 대개 KBS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이며,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매력을 가진 중·장년 남성을 ‘아재파탈’이라고 부른다”([조선일보])는 주장처럼 요즘 여성들이 꽃미남보다 연륜 있고 성숙한 ‘아재’를 좋아하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원래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던 꽃미남과 옴므 파탈, 중년에 접어든 연기자들을 모조리 ‘아재파탈’의 카테고리에 욱여넣으며 그들의 인기가 ‘아재’의 승리인 양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재 개그의 유행과 드라마 속 ‘아재파탈’의 인기에 “언제부터 아재가 이렇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나”([중앙일보])라고 감개무량해하는 외침에 대한 답은 ‘그런 적 없다’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견뎌내야 하는 현실 속 상급자의 아재 개그와 달리, TV 속 아재 개그는 발화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거나 소비자로서 권력을 가진 관객의 솔직한 야유와 함께 완성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아재파탈’은 ‘아재’라서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원래 스타였던 남자 배우들이 나이를 먹어서도 매력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것뿐이다.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서 무례하고 불쾌감을 주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 ‘개저씨’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그 대립항에 은근슬쩍 ‘아재’를 놓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탈색한 뒤 서툴거나 측은하거나 귀여운 이미지를 전유하려 했던 ‘아재’들이 인정하든 않든, ‘아재’는 예나 지금이나 ‘여심’을 저격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국일보]에서는 최근 드라마 속 상대 여배우들과 적게는 14살에서 많게는 22살까지 차이 나는 남자 배우들에 대해 “아재들은 듬직하고 신중하고 어디서든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매력으로 시청률까지 꽉 잡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삼촌과 조카뻘의 나이 차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30-40대 남성들이 대부분 드라마의 주연을 맡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들에게는 그만한 비중의 배역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의 반증이다. 반면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미모가 빼어나지 않아도, 상식이 부족해도 비난받거나 시장에서 쉽게 밀려나지 않는다. 유독 중·장년 남성들에게만 관대하게 다양성을 인정하고 장점으로 치환해 치켜세우는 풍토에서 ‘아재파탈’이라는 수식어는 끝없이 오·남용되며 그들의 매력자본을 한층 더 공고하게 쌓아올림으로써 불균형을 지속시킨다. 그리고 이제 ‘아재파탈’은 인기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띄워야 할, 팔아야 할 누군가를 위해 ‘아재파탈, 아재 어벤져스, 꽃보다 아재들’ 같은 영화 홍보 문구나 소속 배우가 ‘아재파탈’임을 강조하는 연예기획사의 보도자료, “패션 시장에 아재파탈 열풍이 불고 있다”는 광고성 기사를 통해서도 쏟아져 나온다. 아무 데나 있다고 하지만 어디에도 없고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르는 ‘아재파탈’의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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