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레즈비언 영화라 부르지 못하고

2016.06.20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레즈비언 영화다.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의 섹스를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이것이 두 여성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가씨]의 제작사와 홍보사는 프로모션 단계에서 레즈비언 영화라는 부분을 딱히 어필하지 않았다.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가 중요한 내용에 비해 포스터에서 하정우(백작 역)와 조진웅(코우즈키 역)의 비중은 지나치게 크고, 같은 레즈비언 영화였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나 [캐롤]과는 달리 요약된 줄거리 어디에서도 둘 사이가 연인임을 명시하는 표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칸 영화제 관련 기사를 찾아보거나 세라 워터스가 쓴 원작 [핑거스미스]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아가씨]는 유명한 배우인 하정우와 김민희·조진웅이 출연하는 ‘19금’ 영화 정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새삼 부연 설명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레즈비언 영화임이 분명하나, 굳이 그 포인트로 홍보를 하지는 않는다. 물론 마케팅의 기본은 본질보다 대중적으로 잘 먹힐 만한 부분을 부각하는 것이겠지만, [아가씨]의 경우 하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레즈비언에 대한 설명을 누락했다는 점에서 동성애에 대한 국내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 관련 기사 아래에는 “아무리 치장해봤자 핵노잼 눈 썩는 동성애 영화”라거나 “동성애 장면에서는 눈을 돌려버리고 싶었다”는 등의 부정적인 댓글이 주로 달린다. 영화를 본 후 욕을 하거나 속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관객에 대한 목격담도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20억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비용으로 제작된 이 영화가 레즈비언에 관한 부분을 최대한 감춘 이유는 무엇인지, 짐작 가능한 지점이다.

언론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가씨]를 다루는 거의 모든 기사의 헤드라인에는 ‘파격 동성애 베드신’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고, 김민희와 김태리의 인터뷰에는 반드시 “동성애 베드신이 어렵지는 않았냐”는 뉘앙스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데일리안]은 김태리의 인터뷰 기사에서 “영화에선 두 사람이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아쉬울 법한 부분이라고 했더니 (김태리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고 썼으며, [아시아경제]는 “두 인물(히데코와 숙희)의 얼굴에 동성애를 두려워하거나 의식하는 눈빛이 없다. 이모와 어머니를 각각 잃은 비슷한 전사(前事)와 막 피어난 믿음에 의존할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강렬하지 않다”고 썼다. 동성애라면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고, 그러한 감정에 이르는 동기도 더욱 충분히 설명돼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전재돼 있는 것은 ‘동성애는 이성애와 달리 평범하지 않다’는 편견이다. [데일리안]은 [아가씨]를 비롯한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동성애를 낭만적으로만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 후 가해자가 ‘동성 간의 성관계 후 돈을 받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한 ‘안산 대부도 살인 사건’을 들먹이며 “경제적 격차와 양극화의 심화는 성적인 측면에서도 결핍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성 간의 상대적인 박탈과 소외는 결국 동성 간의 관계에 따른 만족 추구 행위를 낳을 것”이라고 동성애를 이성애의 대체재쯤으로 설명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를 사랑이 아닌 무언가로 파악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는 [엔터미디어]에 기고한 글에서 “아가씨와 하녀라는 관계 설정은 아마도 남성성을 드러내는 무수한 성애 영화가 보여주곤 했던 기묘한 상상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직접 보기 전에는 [아가씨]라는 영화가 일종의 동성애 영화가 아니냐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건 이 영화가 주는 반전에는 오히려 더 효과적인 면이 있다”며 숙희가 히데코의 뾰족한 이를 골무로 갈아주는 장면이나 섹스신을 “여성들의 연대”에 관한 일종의 메타포처럼 해석했다. 그가 언급한 장면들은 레즈비언으로서 두 여성의 정체성을 이보다 더 명백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동성애 영화”가 아니라 “동지애”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이쯤 되면 동성애를 언급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거나 레즈비언의 존재를 인식, 혹은 인정하지 못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가씨]의 흥행을 두고 “‘브로맨스’ 대신 ‘백합(여성의 동성애를 다룬 콘텐츠)’이 대세”라며 “걸 크러쉬 현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동아일보]의 기사는 이러한 의심을 더 짙게 만든다. 브로맨스와 백합·걸크러쉬 모두 [아가씨]에 관한 논의에서는 ‘동성애’라는 본질을 가리거나 피하는 용어일 뿐, 동성끼리도 사랑을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가시화시키지는 못한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 알고, 눈앞에 들이대면 불편해하며, 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불어 성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 즉 불쌍하고 슬픈 타자로 여기기도 한다. [아가씨]를 둘러싼 현상은 동성애를 바라보는 이곳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픽션 속 레즈비언을 보고도 부정한다면 현실에서 그들을 버젓이 존재하는 인간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으며,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달리 특이하거나 아예 ‘틀린’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를 재생산할 뿐이다. 더욱이 지금 한국은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길 한가운데서 무리를 지어 당당하게 외쳐도 누군가의 제재나 따가운 시선을 거의 받지 않고, 올란도 게이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아이돌들은 불특정다수의 팬과 대중으로부터 성정체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받기도 하는 상황이다. 성소수자를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시도가 점점 더 거세지는 현재, 그래서 더욱더 크게 이야기해야 한다. [아가씨]는 걸크러쉬나 백합이 아니라, 레즈비언 영화라고. 이것은 실재하며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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