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혐오에서 인류애로], 혐오는 시대착오다

2016.06.17
모두가 게이 클럽에 총질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속하지 않은 특정 집단을 혐오하는 태도는 인간에게 꽤 보편적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혐오 반응이 감염을 피하는 전략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역겨움은 오물이나 배설물과 같은 감염원을 멀리 하게 해준다. 그런데 나와 늘 부대끼는 ‘내집단’보다는 낯선 ‘외집단’이 내 면역체계가 모르는 병원균을 가져올 위험이 더 높다. 그러니 외집단을 마치 오염원처럼 혐오하는 태도는 그럴싸한 헬스케어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장착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사람들에게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강조한 후에 설문조사를 하면, 외국인 노동자 이주를 반대한다는 응답이 더 높아진다.

정치철학자이자 법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2010년에 쓴 책 [혐오에서 인류애로: 성적 지향과 헌법]은 ‘원초적 혐오’와 ‘투사된 혐오’를 구분한다. 배설물, 혈액, 생리혈, 정액, 콧물, 시체, 진액, 썩은 고기, 구더기, 바퀴벌레 등을 보거나 만질 때, 실제 감염 위험이 있을 때 나오는 직관적 반응이 원초적 혐오다(우리는 이 문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거나 몇 단어를 건너뛴다). 하지만 우리 중 어떤 이들은 흑인이나 게이나 여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오염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 투사적 혐오는 오염원의 속성을 특정 집단 전체로 투사해 확장한다. 외집단 혐오의 스위치가 켜진다.

누스바움은 ‘혐오의 정치’와 ‘인류애의 정치’의 투쟁을 우리 시대의 핵심 전선으로 제시한다. 혐오의 정치는 외집단 혐오를 동력 삼아 소수자를 오염물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들에게 정치란 ‘순수한 우리’로부터 ‘오염된 그들’을 차단하는 숭고한 과업이니, 이야말로 히틀러와 IS와 국민전선과 트럼프까지 난감하리만치 다양한 극우파를 관통하는 태도다. 반대로 인류애의 정치는 “동료 시민에 대한 평등한 존중과, 그들의 처지를 상상하는 진지한 시도”다. 우리의 용어로 바꾸면 이렇다. 뿌리 깊은 외집단 혐오를 뛰어넘어 인류 전체를 하나의 ‘내집단’으로 상상해 낼 때, 인류애의 정치가 작동한다.

헌법은 이 싸움에서 중요한 진지다. 헌법은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잘만 활용하면 혐오보다는 인류애의 무기가 된다. 이 탁월한 법학자는 당위적 선언 대신 헌법에 뿌리를 둔 치밀한 논증으로 주요 과녁인 동성애 혐오론을 논파해 나간다. 헌법을 보수파의 레토릭인양 무시하는 한국의 일부 진보파에게도 참고가 될 접근법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현실은, 그리고 인간의 본능은 헌법보다 뒤에 있다. 그녀의 전략은 2015년 연방대법원이 동성혼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한 범인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 2세였다. 놀랍지 않게도 도널드 트럼프는 충분한 정보 따위 기다리지 않고 사건을 무슬림의 테러로 규정해 외집단 혐오 스위치를 건드렸다. 누스바움 식으로 말하면, 그는 헌법의 반대편에 서 있다. 외집단 혐오는 직관적이고, 인간 본능에 호소하고, 그래서 아마도 표가 되겠지만, 그런 구닥다리 헬스케어 시스템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10만 년쯤 시대착오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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