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① [또 오해영]이 보여주는 요즘 로맨틱코미디의 한계

2016.06.14
tvN [또 오해영]의 오해영(서현진, 이하 해영)은 측은하다. 어렸을 적 자신과 이름은 같지만 미모, 성격, 지력, 부모님의 재력까지 훨씬 더 뛰어났던 또 다른 오해영(전혜빈, 이하 전해영) 때문에 기죽어 살았고, 결혼 전날에는 상대방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직장에서는 동기들 중 홀로 진급조차 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해영은 마냥 쭈그러져 있지 않는다. 상사인 박수경(예지원)에게 필요 이상의 훈계를 들을 때는 “일곱 번이에요. 셌어요. 제가 결혼 엎은 걸로 몇 번이나 구박하시나”라고 항의하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소개팅 상대방에게는 “제가 그렇게 아닌 얼굴은 아니지 않나요?”라고 따지며, 결혼은 자신이 깬 거라며 쿨하게 웃어넘기기도 한다. 어느 정도 할 말은 하고,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때때로 가면을 둘러쓰는 해영의 모습은 현실의 여성들과 매우 닮았다.

그런 해영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도경(에릭)에게 애정을 느끼는 전개는 [또 오해영]이 만든 가장 달콤한 판타지다. 도경은 유일하게 해영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람이며, 해영이 누구보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거의 처음 만나는 남성이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 고통에 공감해줄 확률은 실제로 지극히 낮지만, 적어도 옛날식 로맨틱코미디의 기본 설정이었던 재벌과 평범한 계층 여성과의 연애담보다는 훨씬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다. 그리고 도경은 TV 바깥의 여성들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위험 상황에서 종종 해영을 구해내며 이런 판타지를 완성시킨다. 중국집 배달원이 해영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 그는 왜 부주의했냐고 해영을 다그치는 대신 애인인 척 연기해주고 자신의 신발을 해영의 현관에 놓아두었다.

평소에는 까칠하지만 관심 있는 여성에게만은 따뜻한 남자의 매력을, [또 오해영]은 영리한 방식으로 구현해낸다. 그러나 동시에 도경은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지면 언제든지 여성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만한 폭력성을 지닌 남자이기도 하다. 해영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끄는 것은 기본이고, 해영이 차 안에 앉아 있음에도 굳이 맨주먹으로 유리창을 깨며 분노한다. 해영과 전 애인 한태진(이재윤)이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후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미친 새끼…”라 중얼거리며 과격하게 차를 몰기도 한다. 사랑한다면 격정적으로, 혹은 ‘상남자’라면 이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는 듯한 연출은 로맨틱코미디 혹은 멜로에서 오랫동안 반복돼왔던 나쁜 습관이지만, [또 오해영]은 문제의식 없이 재현한다.

어떤 면에서는 앞서 나가는 드라마가, 로맨스나 성 역할에서는 고리타분한 편견을 고수한다. 안나(허영지)와 두 오해영, 수경은 각각 20대, 30대, 40대 여성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며, 작품은 이들을 낡디낡은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낸다. 20대 초반의 안나는 자유롭게 스킨십을 할 만큼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때문에 남자친구인 박훈(허정민)은 “파리에서 온 여자 같애. 한국 여자 같지가 않아”라고 평가하지만 정작 다툴 때는 둘 사이의 나이차를 들먹이며 ‘어린 여자친구’를 혼쭐내는 성인 남성의 입장에 선다. 수경은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별 이유 없이 해영을 미워하는 상사로, 혹은 나이 어린 여성들을 부러워하고 언제나 남자를 갈구하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해영과 전해영의 차이를 그려내는 [또 오해영]의 시선은 보다 더 노골적이다. 밥과 국이 가장 중요하고, 소개팅에서는 레스토랑보다 삼겹살집을 선호하고, 도경에게 조개구이를 손수 구워주며,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해영. 반대로 청담동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약속을 잡고 사무실에서 당당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부모님의 잦은 이혼과 재혼 때문에 제대로 된 애정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전해영. 어떤 면에서 두 해영은 각각 소위 말하는 가정교육 잘 받은 ‘개념녀’와 겉만 번드르르한 ‘된장녀’의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오해영]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자신의 정당한 몫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들이 부딪히는 어려움도 다소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연애와 여성을 바라보는 드라마의 관점은 오래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최근의 로맨틱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계다. KBS [태양의 후예] 속 강모연(송혜교)은 현실적인 욕망과 직업적인 전문성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유시진 대위(송중기)에 의해 성장했으며, tvN [치즈 인 더 트랩]은 대학 내 계급도를 생생하게 그리는 한편으로 남성들의 멋짐을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이리저리 휘둘리게 만들었다. [또 오해영]은 이런 과도기의 상징처럼 보인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결점이 있으며, 드라마 속 인물들이 완벽하게 올바른 행동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랑하니까 그래도 된다고, 또는 편견으로 빚은 여성 캐릭터들을 비교하며 교묘하게 한쪽만을 응원하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문제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드라마 바깥 세상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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