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대한민국 치킨전], 치킨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2016.06.10
치킨은 닭이지만 닭이라고 다 치킨은 아니다. 삼계탕이나 닭찜은 안 되고, 가라아게 같은 일본식 닭튀김도 안 된다. 치킨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한국의 자영업을 대표하는 존재다. 직장인이 가장 자주 즐기는 외식 메뉴고,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게 되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업종이다. 퇴근하는 아버지가 품에 안고 귀가하던 음식이자 운동회 날 사이다와 함께 싸가던 음식으로서 한국인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콩이나 옥수수에서 기름을 뽑고, 남은 찌꺼기로 사료를 만들어서 닭을 키우고, 닭을 다시 기름으로 튀긴다. 이 간단한 과정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돈을 벌어서 치킨을 주문하고, 치킨 먹고 힘내서 돈을 벌고, 더 이상 돈을 못 벌게 될 것 같으면 치킨을 튀긴다. 이쯤 되면, 치킨이 나인지 내가 치킨인지 구별해서 뭐하나 싶다.

오븐 치킨, 숯불구이 바비큐, 불닭도 있지만 치킨 하면 역시 후라이드다. 치킨에 대한 취향은 결국 후라이드 치킨에 대한 취향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튀김옷에 대한 취향이고, 염지에 대한 취향이다. 후라이드 치킨은 크게 세 종류인데, 각각 장단점이 있고 애호층이 다르다. 엠보 치킨은 한약재가 가미된 스파이스로, 염지 후 물반죽이 아니라 튀김가루를 얇게 묻혀서 압력튀김기로 튀긴다. 민무늬 치킨은 물반죽 단계에서 바로 튀기는 이른바 시장 치킨이다. 크리스피 치킨은 튀김옷-배터믹스(물반죽 코팅)-튀김가루를 입힌 이른바 물결무늬 치킨이다. 치킨을 튀김옷 맛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크리스피가 인기다. 민무늬 치킨은 식으면 눅눅해지지만 양념과의 궁합이 좋아서 간장치킨, 마늘치킨 등으로 무궁무진 변신한다. 엠보치킨에는 독특한 향미가 있어서 마니아가 존재한다.

치킨은 1997년 이래로 단 한 번도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내어준 적 없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치킨인가. 혹시 한국인의 DNA에는 치킨이 새겨져 있나?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치킨의 흥망성쇠에는 언제나 구체적인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1997년에는 IMF로 수많은 실직자들이 치킨집을 차렸다면, 2002년에는 월드컵과 한국의 선전을 계기로 71%나 증가해서 2만 5천 곳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신규 진입한 7만 4천 곳 중 5만여 곳은 제대로 닭을 튀겨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았다. 현재 등록된 한국 치킨집의 수는 3만 곳 정도이지만 노점이나 트럭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음식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주제다. 관련 콘텐츠의 대폭발 속에 치킨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한민국 치킨전]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사회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방대한 조사와 냉철한 분석으로 단순한 예찬이나 추억팔이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재미있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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