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 21세기 인터넷생태리포트

2016.06.08
연극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라이선스 초연│2016.05.24 ~ 06.25│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팀 프라이스│연출: 윤한솔│배우: 박찬호(토피어리), 강병구(티플로우), 박민우(케일라), 김효영(사부), 박근영(AV유닛), 박기원(픈소스)
줄거리: 런던에 사는 모범생 무스타파(16세)와 스코틀랜드 외곽에 사는 은둔형 외톨이 제이크(18세)는 포챈(4chan·다양한 주제의 게시판으로 이루어진 해외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다. 둘은 포챈에서 만난 다른 이들과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해킹을 정치사회적 투쟁수단으로 사용하는 국제적 네트워크)와 룰즈섹(Lulzsec·어나니머스에서 파생된 소규모 해커그룹)에 연루되어 핵티비스트로 활동한다. 그들은 사이언톨로지교부터 미군방위업체까지 다양한 기관들을 해킹하며 이름을 알린다. 

★★★☆ 21세기 인터넷생태리포트
해커들의 이야기다. 검열에 대응하며 ‘신상 털기’와 디도스 등의 방식으로 사이버공격을 주도한 어나니머스의 시비를 단순하게 가를 수 없듯, 연극 역시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양극단의 상황을 펼쳐놓고 각자의 판단을 기다린다. 랩처럼 들리는 프로그램 언어와 개념들은 낯설고, 게시판과 채팅창의 글을 쉴 새 없이 뱉는 배우들의 빠른 말은 수시로 중첩되며 종종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자유’라는 이름으로 낄낄대며 쏟아내는 각종 차별과 비하, 혐오와 조롱, 무시와 위악의 언어들에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이슈가 온라인을 타고 더 큰 오프라인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과 오버랩되며 인상적인 순간을 남긴다. 

Direction: 해체와 의도적 B급의 향연
무대는 3면이 뚫려 있고, 전통적으로 무대라 설명되는 곳에서는 크로마키 기법을 이용한 실시간 영상 합성이 이루어진다. 객석 중간중간에는 온라인 인격체들의 공간이 관객과 뒤섞여있으며, 웹캠을 통해 ‘군단’으로서의 어나니머스도 보여준다. 온라인상의 글과 그림이 배우라는 몸으로 구현되는 만큼 그럼피 캣(Grumpy Cat·특유의 불퉁한 표정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고양이)·어드바이스 도그(Advice Dog·강아지의 해맑은 미소에 직설적인 조언을 달아 게시하는 이미지) 등은 의상으로 자신이 ‘짤’임을 어필한다. 인터넷이라는 모호한 가상 세계는 해체와 재조립으로 구체화됐으며, 여기에 의도적인 B급 정서로 관객의 흥미를 끈다. 가상 세계의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에 비해 현실의 인물들은 말을 더듬거나 한국어로 더빙한 80년대 미국드라마처럼 한껏 과장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와 톤의 극명한 대비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더 익숙한 세대의 특징을 드러내고, 이들에게서 영웅서사를 찾아내 현실의 희미한 존재였던 10대 소년 제이크와 무스타파가 어나니머스 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획득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힘을 싣는다. 특히 우스꽝스러운 히어로 코스튬 차림으로 “다들 지금 최고니까 여기 있는 거야”라며 ‘정의 구현’에 도취된 이들의 모습은 연극의 제목이 이야기하는 역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Message: 괴물이 되지 않는 법에 대한 질문
어나니머스와 룰즈섹, 포챈이 실존하고 그럼피 캣·소셜리어쿼드 펭귄 등의 밈이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그 개념이 한국적 상황으로 치환되지 않는 이상 한국 관객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계와 검열에 반대하며 다양한 가능성과 자유를 보장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각종 방종은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이다. 전달이 가능하다는 규칙 아래 다양한 저작권 침해가 벌어지고, 끔찍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규칙은 인종차별·동성애 혐오·여성 혐오는 물론 고인에 대한 인격모독까지 용인한다. 어떤 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공간에서 “씹선비”라 천대받던 “뉴비”라면 훨씬 더 높은 수위의 저주를 퍼붓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받는다. 어나니머스의 사이버 공격이 결과적으로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됐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재미’였으며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기존의 자신을 부정하는 모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결국 연극은 어떤 선을 넘어 체포된 룰즈섹을 통해 절대적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끔찍하고 감각 없고 가차 없는 괴물이 되지 않는 법이 무엇일까 질문한다.

Plus: 두산인문극장의 성장
매해 주제에 맞는 신작으로 꾸준히 주목받아온 두산인문극장은 ‘모험’이라는 올해의 주제를 더 다양하고 넓은 방식의 실험으로 시도했다. 이은결 대신 EG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멜리에스 일루션 에피소드]는 영화를 ‘일루션’의 관점으로 접근했던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존경을 담은 독특한 퍼포먼스였고, 하우스 푸어를 통해 부의 불균형과 관음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다룬 [게임]과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는 동시대를 향한 질문을 던졌다. 특히 세 작품 모두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무대와 객석을 확연하게 구분한 무대 형식)를 파괴해 ‘체험’으로써의 몰입도를 높였으며,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는 쌍방향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 발언 형태의 대본을 연극화함으로써 제작 방식에 대한 모험까지 꾀했다. 두산인문극장에게 2016년은 뚜렷한 콘셉트와 그에 맞는 실행력까지 잘 따라와 준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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