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① 여섯 명이 이야기하는 퀴어문화축제

2016.06.07
[아이즈]는 오는 11일 서울광장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19일 막을 내리는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한다. 이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알리며, 여섯 명의 필자에게 퀴어문화축제가 그들에게 준 경험과 감정에 대한 글을 받았다. 이 글들이 당신이 퀴어문화축제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모두 자기 자신을 노출하는 날
한국에서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어떤지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더 많은 노이즈가 생겨났으면 하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 세력에서는 ‘동성애 알몸 광란 파티’라고 선동하고 있는데, 나는 알몸은커녕 종로와 이태원에 즐비한 핫한 오빠들도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아웃팅을 두려워하며 잘 나오려 하지 않고, 저런 소리에 선동당한 이상한 사람들은 정말로 축제가 그런 줄 알고 온라인에서 ‘모두까기’를 하느라 바쁠 뿐이다.

2014년 신촌 빤쓰 게이라는 권좌에 오른 이후로 나는 축제에서 노출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남들처럼 잘 지내면 되지 왜 그렇게 과격한 짓을 해서 일반인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느냐’로 수렴한다. 그러나 축제는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정하든 말든 사회에 성소수자는 존재하며, 노출을 하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이른바 ‘변태’로 낙인찍었던 이들에 대해 ‘이런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는데 너희가 어쩔 것이냐?’는 선언이다. 중요한 것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사회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조용히 살 것,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일 것, 눈에 띄지 말고 살아갈 것, 이러한 메시지들이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성소수자의 삶을 지배하는 메시지이며, 일반인들이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존재하는 것을 숨길 필요 없이 당당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축제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는 단 하루뿐인 날이다. 사회에서 받는 억압을 잊고 이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자기 자신을 노출(exposure)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존재가 여기 있다.
글. 상근(유튜브 방송 [Open.kr] 운영자)

내가 주류가 되는 자리
나에게 퀴어문화축제는 기다려지는 명절, 소수자라 불리는 내 정체성에 감사하는 날, 더 열정을 다해 나댈 수 있는 날, 이날 하루로 1년을 살아가는 일종의 충전소 같은 느낌이다. 타인의 시선에 눌려 항상 조심하게 되는 내 목소리와 외적인 몇몇 부분들을 마음 놓고 온전하게 드러내도 환영받는 곳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이 그동안 잘 지켜내 주었다고 서로 보듬어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트랜스젠더로서 어떤 모습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곱씹으며 하루하루 뻔뻔하게 열정을 가지고 웃으며 산다. 그런데 내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가면 “여자인 줄 알았어. 몰랐어. 예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칭찬이겠지만 가끔은 ‘트렌스젠더인 걸 감쪽같이 잘도 숨겼네’라는 의미로 다가와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별에 따른 특징이 절대적인 기준이고, 그에 의해 나란 존재가 평가될 때면 어쩔 수 없이 나도 흔들린다. 그 기준에서 나는 한참 이상하니까.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는 그렇게 이상하다고 판정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잘났다며 이상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리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누군가 아무리 독특한 옷을 입더라도 트랜스젠더인 나는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더불어 넘볼 수 없는 ‘넘사벽’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사회의 기준으로 재단했던 이들이 비주류가 되고, 내가 주류가 되는 퀴어문화축제를 어떻게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글. 박에디(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회원모금팀장)

다수가 되는 기쁨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들만 모이는 여행에 참석했다. 짧디짧은 이틀간의 행복한 시간. 그들과 헤어져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내 얼굴은 한없이 흐르는 이유 모를 눈물로 흉하게 얼룩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날의 눈물은 처음으로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는 기쁨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수는 언제나 나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왜 상상하던 모습과 다른지, 어쩌다가 그런 길을 택했는지…. 호의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라면 웃으며 대답해주지만, 그들의 동정 어린 호기심도 더 이상 달갑지만은 않다. 다수 속에서 튀는 소수가 되는 건 이제 지겹다. 내 마음은 항상 이렇게 외친다. ‘이제 그런 질문은 지긋지긋해!’

나에게 퀴어문화축제는 첫 여행에서의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시청광장과 홍대·종로 등 다수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 속에서 나 또한 하루만큼은 다수의 기분을 맛본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당연히 있어야 할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며,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조차 원래 소수에 속할 나 한 명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퀴어문화축제의 모든 것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수가 되는 기쁨만큼은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누구에게도 들킬 걱정 없이, 설명할 필요 없이 길 한가운데서 트랜스젠더인 나를 온전히 드러내도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는다. 1년 동안 한 번뿐인 소중한 경험이자 미래에는 일상이 되어야 할 모두의 꿈일 것이다.
글. 노희정(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활동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까

나의 본가는 부산이다. 결혼 등을 거부하며 가족하고는 거의 인연을 끊고 도망치다시피 서울로 왔다. 마포구에서 월세를 사느라 매달 수입의 1/4 정도를 주거비로 쓴다. 하지만 서울살이에 드는 돈, 게다가 하필 홍대 근처에서 사는 데 드는 돈이 별로 아깝지는 않다. 한국에서 내가 나 그대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장소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를 산책하며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억압이나 차별 같은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처럼 곁의 애인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밝은 얼굴로 걷는다.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서울의 다른 많은 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이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부산의 본가에서 지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못했을 삶이다.

서울에서 멋진 퀴어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나는 부산의 대학가 외곽에 있던 ‘플라토닉’이라는 오래된 레즈비언 펍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트위터로 전해질 서울시청광장의 떠들썩함이 비-서울 지역의 퀴어들을 쓸쓸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016년 6월 11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는 축제는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지만 이걸 아무도 ‘서울’ 퀴어문화축제라고 부르지 않고 있다. 연결될수록 강하다는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까?
글. 손진영(팟캐스트 [L살롱] 진행자)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 퀴어문화축제

2000년, 대학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시작됐다. 하리수의 데뷔 전, 홍석천의 커밍아웃 전이었다. 그 전부터 성소수자는 계속 존재했고, 퀴어문화축제는 시작했다. 첫 축제에서는 50명 남짓한 참여자들이 빗속에서도 당당하게 퍼레이드 행진을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축제 기획단만 50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커졌다. 6월이 되면 실시간 검색어에 ‘퀴어문화축제’가 올라올 정도로.

2007년, 나는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해서 한껏 레즈비언 자긍심이 높아진 상태로 퍼레이드 행진을 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해방감, ‘레즈비언’이라는 피켓을 들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즐겁고 재밌고 여태까지 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내게 1년 중 가장 큰 기념일은 생일이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되었다. 온 동네 퀴어가 다 모인다고 해서 ‘퀴어 명절’이라고도 불리는 퀴어 퍼레이드, 이날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며 364일을 기다린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퀴어문화축제,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오면 좋겠다.
글. 우야(퀴어문화축제 창작지원팀장)

늦은 결핍

나부끼는 무지개 깃발 아래 행진하는 관능적인 드랙, 땀에 젖은 벗은 몸, 키스하는 비규범적 주체들. 이 모든 실루엣과 함께, 사람들이 모인다. 작열하는 6월의 태양 아래 행진할 ‘퀴어 명절’을 고대하며 옷을 고르고 몸을 만든 사람들. 익숙한 이름의 인권단체와 정당, 서구의 대사관과 글로벌 기업, 대학생과 기발한 창작자들이 세운 부스를 탐방하다 스치는 사람들. 퀴어한 아이템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연대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린, 구호와 슬로건을 외치고 듣는 사람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느새 나타나 어깨를 맞대고 함께 행진하는, 바로 그 사람들. 예정되지 않은 조우였고, 기대한 적 없는 충만함이었다. 피와 살을 가진 실체가 되어 대낮에 서울 시내를 걷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이 내게는 얼마나 큰 쾌락이었는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광장을 열고 거리에 나섰다는 게 또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억누르고 참은 끝에 터져 나온 단 하루의 일탈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저히 만족할 방도가 없다.
글. MECO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 미디어 파트너 [아이즈]는 제17회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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