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영의 적은 여성인가

2016.06.01
tvN [또 오해영]의 인물들은 신경증에 시달린다. 신부가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결혼에 실패한 박도경(에릭)은 아예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고, 옛 여자친구인 오해영(전혜빈, 이하 전해영)에 대한 이야기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나오기만 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전해영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동정도 받기 싫어 모든 일에 생긋 웃기만 하며, 박수경(예지원)은 외로움을 잊으려 늘 술을 마시고 남성과 섹스하는 환상에 빠져든다. 어릴 때부터 전해영과 비교되며 살아왔고, 결혼식 바로 전날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차이며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오해영(서현진, 이하 해영)은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는 분노와 강박·결핍 등 현대인 특유의 정신질환을 포착하는 동시에, 수경의 대사를 빌려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으로 그 허기를 채운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해영은 마음이 허해질 때마다 무언가를 폭식한다.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비뚤어진 이 시대의 풍경을 조금 과장된 방식으로, 하지만 예리하게 그려내는 것은 [또 오해영]의 미덕이다. 인물들의 정서를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본능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셈이다. 더불어 직장에서는 딱히 인정받지 못하고, 결혼이나 연애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나보다 잘난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등 평범한 서른두 살 해영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또래 여성들의 마음을 보다 깊숙이 건드린다. 해영 같은 여성이 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무례한 세상 때문이다. 여성의 외모를 지적하고, 예쁘거나 조건이 좋은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급을 나누고, 그들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손쉽게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살아간다.

그러나 해영의 원망은 모두 전해영으로 소급된다. 자신의 자존감을 깎아내린 것은 세상의 잘못된 시선이 아니라 잘난 전해영의 존재이며, 때문에 전해영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기분이 다운됐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또 오해영]은 해영의 이런 피해의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낡은 편견을 펼쳐놓는다. 직장 상사인 수경은 마땅한 이유 없이 걸핏하면 해영을 후려치고, 해영이 스스로 “나도 어디 가서 예쁘다는 소리 좀 듣는다”고 말하자 회사의 나머지 여직원들은 그를 은근히 비웃는다. 해영의 적만 여성인 건 아니다. 전해영이 여전히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썅년”이라고 말하는 해영의 친구 희란(하시은) 정도면 사소하다. 돈 때문에 장 회장(강남길)과 만나면서 아들 도경으로부터 “엄마가 꽃뱀이야?”라는 핀잔까지 듣거나, 역시 돈 때문에 도경과 전해영을 억지로 떼어놓은 도경의 엄마 허지야(남기애)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수없이 봐온 악독한 시어머니들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겉보기엔 완벽한 전해영이 자존감 낮은 여성으로 자란 것은 부모님의 이혼, 그중에서도 엄마의 잦은 재혼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를 숨기기 위해서다. 도경과 해영 등이 겪는 신경증의 끝에는 전해영이 있고, 더 나아가 드라마가 가리키는 원흉은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았던 전해영의 엄마다.

해영 역시 ‘여적여’ 구도에 가담한다. 동정심을 얻기 위해 회사 사람들이나 도경 앞에서 일방적으로 전해영과의 악연에 대해 털어놓거나, 수경을 가리켜 “얼굴이 물에 불린 감자” 같다며 “마흔 넘어 술 마시면 저 꼴 난다”고 인신공격성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영은 항상 [또 오해영] 안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며, 이것은 해영의 위악에 대한 면죄부가 된다. “난 내가 여기서 좀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걔(전해영)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라는 그의 고백은 모순적이다. 나 자신인 채로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지만, 해영에게 그것은 자신보다 잘난 여성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자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세상에 여자는 나 하나였으면 좋겠어”라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해영의 혼잣말은 위험할 정도로 과도한 피해의식에 가까우나, 드라마는 꾸준히 그를 짠한 눈길로 바라보며 상처를 어루만진다. 늘 구석에 몰려 있다시피 한 해영의 심리를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발언들이 그를 위로해야 할 당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엇나간 행동은 애틋한 자기애처럼 연출되고,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여성들은 유해할뿐더러 없어져도 괜찮을 존재로 비춰진다. 그사이 전 여자친구 앞에서 화를 내며 주먹으로 차 유리창을 깨거나 걸핏하면 해영의 손목을 잡아끌고 가는 등 폭력적인 도경의 태도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 나한테만 잘해준다, 그거 여자들 뻑 간다. 엄청난 희소성이 애정인 거지”라는 드라마 초반의 대사를 통해 로맨틱한 것으로 포장된다. 오로지 해영 한 명을 위해 일그러져 있는 세계. [또 오해영]은 얼핏 여성을 위한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여성 때문에 자신의 삶이 무너졌다고 굳게 믿고, 세상의 잘못된 기준에 무감각하며, 무엇이 나쁜지 직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여성을 그리고도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한다고 미숙한 주장을 펼친다. 4화에서 해영은 “맛있는 음식보다 더 위로가 되는 건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연민에서 출발한 사랑이 과연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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