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여성들의 사회│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살아남은 여성들의 세계

2016.05.31
수천 개의 비명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들입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예민녀’가 되었지만 이제 그것조차 소용없음을 느낀다”, “제발 죽이지 마세요. 여자 때리지 마세요. 제발 하지 마 제발.” 일일유동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빼곡히 적혔다. “내가 살해당했다면 네가 이 자리, 이곳에 와 주었겠지”, “다음에는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요. 태어나도 대한민국의 여자로는 태어나지 말아요.” 이름 모를 이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 더미 앞에 누군가는 이렇게 썼다. “수천 송이 꽃을 놓는다 해도 네가 걸었을 앞날보다 아름다울까.”

스물세 살이었다. 5월 17일 새벽 1시경, 강남역 인근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은. 흉기를 소지하고 화장실 안에 숨어 있던 서른세 살의 남성 김 모 씨는 화장실에 들어왔던 남성 여섯 명을 그냥 보낸 다음 일곱 번째 방문자이자 첫 번째 여성이었던 피해자를 수차례 찌른 뒤 도망쳤다. 검거된 그는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가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구체적인 사례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행의 원인이 피의자 김 모 씨가 앓고 있는 조현병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루쯤 포털 사이트를 달군 뒤 잊혀질 사건일 수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91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95명이었다. 주변인이나 김 모 씨처럼 일면식도 없는 남성의 범행은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루 이틀 걸러 일어나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번화가의 쾌적한 건물 안에서 일행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피해자가, 단지 화장실에 처음 들어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언제 어디서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또렷하게 인식시켰다. 여성을 향해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세간의 모든 기준과 상관없이 여성은, 여성이라서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

‘아직’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 폭행·추행·강간·모욕·조롱 등 무수한 형태의 폭력을 겪어온 여성들에게 이 사건은 그래서 ‘나의 일’이었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와 SNS에서 개인들이 시작한 추모의 움직임은 불길이 일듯 빠르게 확산되었고 서울은 물론 부산·대구·광주·울산 등 각 지역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털어놓은 여성들은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21일 오후 5시 반,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여성 대상 혐오범죄 피해자 추모행진이 진행되었다. 집회를 진행한 ‘강남역 추모집회’ 카페 측은 흰 국화와 흰 우비 등 3백 명 분의 물품을 준비했지만 점점 늘어난 참가 인원은 5백 명을 넘어섰다.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든 행렬 가운데 한 참가자는 “‘남자가’, ‘오빠가’ 지켜주는 사회는 필요 없다. 여자가 안전한 사회가 필요하다”고 썼다.

‘지켜주겠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선별적 범죄가 분명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관성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피해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경찰과 언론, 이에 기꺼이 동조하며 한국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를 방관하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이는 ‘남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말라’는 말은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혹은 이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레베카 솔닛이 [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인용한 제니 추라는 여성의 트윗은 이 문제를 명료하게 요약한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5월 25일, 서울의 한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여성 혼자 탄 차를 노려 강도짓을 하다 붙잡혔다. 이 같은 여성 대상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일부 기관 및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성전용주차장은 ‘역차별’에 대한 남성들의 주장에 단골로 언급되는 비난의 대상이다. 같은 날 부산에서는 한 50대 남성이 가로수 지지대를 뽑아 70대 여성과 20대 여성 행인을 폭행해 중상을 입혔다. 범행 이유를 묻자 “아시잖아요”라고, 재차 이어진 질문에 “묻지 마세요”라고 답한 그는 남성 행인들에게는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유독 여성만을 향해 제어 없이 날뛰는 폭력성을 단지 일부 개인의 병증 혹은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구 곳곳에서 전염병처럼 퍼지는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 살해) 현상을 그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소설 [체체파리의 비법]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 5월 26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피의자 김 모 씨는 검찰에 송치되면서 여성혐오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저 말고도 여러 부분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리고 많은 남성들은 말하지 않는다. 이곳은 사람 사는 세상이기 전에 여성이 죽임당하는 세상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공중화장실은, 엘리베이터는, 거리는, 내 집은 안전한가? 연인 사이에도 ‘안전이별’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르는 남성의 벽돌과 흉기까지 피할 수 있을까? 미리 유서를 써두어야 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아직 살아 있는 여성들은, 그리고 여성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믿는 남성들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저항해야 한다. 묻지 말라는 말 앞에 지지 않고, 돈이든 투표권이든 시간이든 자신이 가진 무기를 통해 안전과 생존, 행복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체체파리의 비법]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을 죽이려는 남자들로부터 숨어 도망치던 앤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한다. “내가 전에는 한 번도 여자들이라는 뜻으로 ‘우리’라고 한 적이 없다는 거 알아요? 선별적인 살해는 집단 동일시를 촉진하죠.” 강남역 10번 출구, 더 이상 무심히 떠올릴 수 없게 된 그곳에 누군가는 이렇게 적었다. “너의 죽음에 네 탓은 없지만 그동안 침묵했던 내 탓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고 미안해. 만약 나라도 목소리를 내었다면 지금 넌 살아 있을까. 이제는 침묵하지 않을게.” 우리는 이제 그날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살기 위해서, 살아 있는 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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