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여성들의 사회│② 언론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어떻게 다뤘나

2016.05.31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리고 가해자는 살인의 동기를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라고 밝혔다. 이것은 살의가 특정한 성별을 향했다는 점, 여성들은 상시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됐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의 맥락에 있는 사건이지만, 많은 언론은 본질을 파고드는 대신 엉뚱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나타난 언론의 일곱 가지 나쁜 패턴.


‘묻지마 살인’이라고 썼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건을 ‘묻지마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묻지마 살인, 서울 서초동 노래방에서’([서울신문]), ‘강남 술집 화장실서 20대 여성 묻지마 살인… 30대 남성 검거’(TV 조선), ‘노래방 화장실서 벌어진 충격의 묻지마 살인’([시사위크])처럼 사건의 자극성을 부각하거나, ‘강남역 10번 출구, 서초동 묻지마 살인 애도 쪽지‧국화 행렬 이어져’[(이데일리])처럼 추모 현장 기사를 쓰면서도 ‘묻지마 살인’이라는 제목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관계없는 사람을 해한 사건마다 따라붙던 ‘묻지마’는 이번에도 관성적으로 사용됐고, 그 사이 오로지 여성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여성혐오적 맥락은 흐릿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묻지 말라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몇몇 언론은 이 사건 이후 연달아 벌어진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서도 ‘묻지마’라는 제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쓰고 있다.

가해자의 동기를 원인처럼 썼다
가해자가 직접 밝힌 이유는 살해의 동기일 뿐, 어떤 경우에도 객관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은 친절하게도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헤드라인에 옮겼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 30대 男, 생면부지 여성 무참히 살해’([쿠키뉴스])라거나 ‘30대男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강남 유흥가 화장실서 묻지마 살인’([동아일보])처럼 ‘강남 유흥가’와 ‘묻지마’·‘여성들이 무시했다’는 말을 나란히 배치해 피해자에게도 뭔가 잘못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MBN은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30대男 강남역 인근 묻지마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사건 경위를 육하원칙으로 정리하며 ‘왜’ 항목에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라고 써넣음으로써 이것이 팩트처럼 읽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연합뉴스]는 ‘무시당하면 못참아… 메슬로우 4단계 욕구 때문에 잔혹 범죄’라는 기사를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존경의 욕구’가 좌절되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전문적 지식인 양 늘어놓기도 했다. ‘여성들이 무시했다’는 가해자의 동기가 정당하기라도 하다는 것일까?

굳이 가해자의 ‘꿈’에 대해 썼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범인 A씨는 전직 신학생…‘헉’([서울신문]), ‘“교회 여자들이 무시해 여성 혐오증 생겨”…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신학대 출신’([동아일보]) ‘강남역 묻지마 피의자, 목사 꿈꾸던 신학대생…검거 당시에도 흉기 소지’([무비조이]) 2014년까지 서울 지역의 한 신학원을 다니다 그만뒀다는 가해자의 진술은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다양한 언론에서 인용됐다. 신학도였는데도 살인을 저지른 게 놀랍다는 이야기인지, 신학도조차 여성들이 무시하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으므로 결국 여성들이 나빴다는 메시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피해자의 미래는 통째로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가해자의 ‘꿈’을 언급하며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유발하는 것은 너무나 기만적이다. 여기에 더해 [동아일보]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현장검증 후, ‘경찰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현장검증서 미안한 심경 읽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의 심경을 무려 ‘읽어내는’ 경찰도 놀랍고, 그것을 제목으로 뽑는 언론도 놀라울 따름이다.

남녀 공용화장실이 문제라고 썼다

남녀 공용화장실이 분리형 화장실보다 더 위험한가 아닌가는 이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이 사건으로 여성은 그 어디서도 얼마든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남녀 공용화장실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기사는 여성혐오라는 범죄의 본질에서 시선을 돌리게 만들 뿐이지만, ‘강남역 묻지마 살인 남녀공용화장실 위험…전문가 “2004年 이전 건물 특히 취약”’([조선일보]), ‘잠금장치 고장 난 남녀 공용화장실…관리도 허술’(JTBC) 같은 기사들은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장소 남녀 공용화장실도 도마 “위험하고 불편”’, ‘엿보고 찍고 덮치고… 잠금장치 없는 공포의 공용화장실’ 등 현장취재 기사까지 꾸준히 작성하며 공용화장실 논란을 주도했다. 이 기사에서 드러난 내용 역시 여성들은 “하나같이 불안함을 호소”하고 남성들은 “소변기 앞에 서 있다 여성과 눈이 마주치면 괜히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는, 극명한 성별 차이였지만 말이다.

정신분열증 때문이라고 썼다
시작은 ‘강남 살인사건 피의자, 조현병으로 4차례 입원’이라는 [한겨레]의 단독기사였다. 서초경찰서가 밝힌 가해자의 입원기록은 기사 본문에서 자세히 소개됐고, 이후 ‘경찰, 여성혐오 살인 논란 관련 “정신병력으로 4차례 입원”’([경향신문]), ‘강남역 묻지마 살인 피의자, 정신분열증 4차례 입원… 두 달간 약 못 먹어’([이투데이])처럼 정신병력에 집중한 보도가 잦아졌다. 가해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과 여성혐오라는 맥락은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고, 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노렸느냐는 문제가 있음에도 언론은 ‘경찰-표창원 “강남역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 짓기 어렵다” 한목소리’([조선일보]) 같은 기사로 다른 방향의 논의를 아예 차단해버렸다. 다른 한편으로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검증] 정신이상 범죄자 작년 4,642명…5년 새 34% 급증’([헤럴드경제]), ‘강남역 묻지마 사건 등 이상범죄 절반은 정신병력자가 범인’([서울신문]) 등 일부 언론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기도 했다. 뒤늦게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조현병 환자의 범죄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으나, 사건은 이미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우발적 살인으로 공식 정리된 상태다.

남성혐오 vs 여성혐오 구도라고 썼다
아무 이유 없이 어디서든 죽을 수도 있다. 여성들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지만, 언론은 이를 여성과 남성의 대립으로 몰아갔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추모 물결…‘왜 일반화하느냐’ 날선 반응도’([한국경제])라는 제목을 붙이고 본문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입장을 대치시키며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거나, ‘강남역 묻지마 사건에 네티즌… “사건보다 남혐 여혐으로 더 부각되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세계일보]), ‘강남역 남녀 격한 대치… 추모객 눈살 찌푸려’(MBN)처럼 사건의 원인을 여성혐오에서 찾는 것이 순수한 애도 분위기를 흐린다는 식의 기사도 나왔다. 게다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인용, “피해자 측면에서 본다면 ‘여성이라고 하는 약한 상대를 선택했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같은 이야기는 [위키트리]와 [동아일보] 등을 통해 계속해서 재생산됐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국민일보]는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이라는 기사에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여성혐오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이 무서워 말하지 못한다는 남성들의 넋두리를 싣기도 했다.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위축되는 쪽과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쪽, 이것이 같이 비교될 일인가.

‘일베’의 입장도 썼다

‘핑크코끼리’ 탈을 쓴 사람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회원으로, 스스로 밝혔듯 여성들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부르는 게 기분 나빠 방해하기 위해 추모 현장에 나타났다. 시민들은 수상한 행색의 그를 추궁하고 저지했을 뿐이지만, 언론에서는 불쾌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이 일을 폭행사건으로 둔갑시켰다. ‘“날 때리고 모욕하고!” 강남역 핑크코끼리 고소 예고…’([국민일보])라는 기사에서는 핑크코끼리가 ‘일베’ 게시판에 쓴 글이 언급되었으며, [연합뉴스]는 ‘강남역 10번출구 핑크 코끼리 폭행사건 수사 착수’라는 기사와 관련 영상을 함께 내보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이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뉘앙스의 자막을 달고 사건을 호도했다. 온갖 사회문제를 일으킨 것은 물론 특정 지역과 약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사이트 차원에서 용인하는 ‘일베’조차 여성혐오라는 주장 앞에서는 정당한 행동을 한 존재가 된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누군가 살해된 사건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이것은 여성혐오 살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혐오가 뚜렷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드러나고 있는 2016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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