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는 어떻게 ‘일베’의 스타가 되었나

2016.05.30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수많은 언론의 젠더 의식과 보도 윤리를 가늠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당수 언론이 이 시험대에서 탈락했지만, 그중 가장 이미지를 구긴 건 MBC다. 해당 사건에 대한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MBC에 재직 중인 김세의 기자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줄곧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것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며 이를 젠더 문제로 보고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자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지존파, 이태원 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한국계 미국인의 예를 들며 해당 사건에서 가난한 사람이나 한국계 미국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볼 수 없듯, 강남역 살인 사건 역시 정신 질환이 있는 한 개인의 우발적 범죄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인용하는 경찰 자료처럼, 이번 사건이 여성을 죽여야겠다는 또렷한 의도를 갖고 벌어진 증오범죄라고 증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건 범인의 의도가 아니라 그가 남성 여섯은 그대로 내보내고 일곱 번째로 들어온 여성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조차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가. 여기서 젠더 이슈를 지우는 게 온당한가. 명백히 여성을 대상으로 차별적으로 벌어진 살인에 대해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부당한가. 하지만 김세의 기자에게 이런 고려는 없어 보인다.

당연히 비판이 쏟아졌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활동가는 [한겨레] 기고를 통해 그의 주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만들지 못해 안달난 사람”과 흡사하다 평가했으며, [미디어오늘]은 그의 페이스북 발언을 정리한 기사를 냈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해 “유일한 주류 우파 커뮤니티”라 언급한 과거 발언도 발굴됐다. 특히 그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 반발해 제3노조를 결성한 노조위원장이라는 것과 과거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 녹취록에서 보수 매체의 취재원으로 언급된다는 사실이 더해지며 그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물론 정치적 편향성이 여성 혐오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일한 적 있는 MBC의 A 기자는 “제3노조를 운영하면서 주로 변희재의 [미디어워치]와 일을 하더라. 기존 노조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내면 유일하게 받아 적어주는 곳이 [미디어워치]”라며 김세의 기자와 보수 매체의 친분을 인정하면서도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건 맞지만 그가 ‘일베’ 식의 여성 혐오를 공유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강남역에서 추모 중인 여성들을 조롱하기 위해 나선 ‘일베’ 회원을 옹호할지언정, 명백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 발언(Hate Speech)을 내뱉진 않았다.

그럼에도 김세의 기자와 ‘일베’가 확실히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맥락에 대한 무지다. 그는 강남역에 나선 ‘일베’ 회원에 항의하는 남성 사진을 공유하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위협하거나 방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똑 떼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일베’야말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여성들의 추모를 위협하고 방해하기 위해 체격 좋은 남성들을 모집하고 나섰다는 사실을 지웠다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지존파에 대한 예시에서도, 지존파가 사회적 약자로서 빈부 격차에 대한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휘두른 반면 강남역 사건의 가해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맥락을 제거한다. 여성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유리천장이나 일상적 폭력, 호남이 겪는 지역차별 등을 외면한 채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일베’와 마찬가지로 김세의 기자는 이번 사건에서 현상의 배경과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맥락맹’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것은 그가 자주 공유하는 윤서인의 만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문제다. 그의 발언을 강남역 사건이 그러하듯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보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맥락맹’의 신념 체계는 명시적인 혐오 발언보다 훨씬 그럴싸한 담론처럼 유통될 수 있다. 앞뒤 맥락을 잘라내면 맞는 말 같기 때문이다. 김세의 기자가 공유한 게시물 중엔 세월호 사건 당시 회자된 ‘가만히 있으라’라는 문구를 인용해 현재 추모 중인 여성들이 ‘우리가 뭐라 하건 가만히 있으라’는 태도를 취한다고 비판하는 내용도 있다. 실제로 남성의 발언권 자체를 제한할 권력을 여성들은 구경도 해본 적 없다는 것, 당장 SNS 바깥에선 해당 사건으로부터 젠더 문제를 지우기 위해 언론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것, 그동안 데이트 폭력과 염산 테러에도 참고 가만히 있어야 했던 건 여성들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틀린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발언을 제한하면 안 된다는 당위 명제와 세월호 사건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가해자는 분노한 여성 같고 피해자는 합리적 반박이 제한당한 남성처럼 보인다. 이것을 공신력 있는 거대 언론의 기자이자 상당한 외부 네트워크를 확보한 노조위원장이 사태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말하며 공유한다면, 자신이 정의라 믿는 ‘맥락맹’들의 잘못된 신념 공동체는 더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의 페이스북 발언을 문제 삼은 [미디어오늘] 기사에 대해 [미디어워치]는 공격적으로 나섰고, ‘일베’에선 [미디어오늘]이 김세의 기자를 비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고 환호했다.

김세의 기자가 어떤 의도와 배경으로 최근의 발언을 내놓는지는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가 결과적으로 여성 혐오 담론의 상당히 중요한 허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진보 매체의 녹취록 공개로 오히려 보수의 스타가 됐다며 김세의 기자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오히려 그를 애국보수의 스타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냐는 A 기자의 우려는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당장 MBC 기자회도 그에 대한 대외적 입장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김세의 기자는 ‘일베’의 스타이자, 다른 건 몰라도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은 못 참는 상당수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보수적 남성 집단의 새로운 스타가 사실 얼마나 많은 걸 놓치는 ‘맥락맹’인지 파헤치는 것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이것은 강남역 사건 이후 선명하게 드러난 이 사회의 추한 민낯의 본질에 가까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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