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서 맥주를 마셔요!

2016.05.20
가을에 겨울옷을 꺼내는 일은 잽싸게 해치우면서 봄에 여름옷 꺼내는 일은 늘 꺼리고 미루게 되는데, 작년에 입었던 옷이 올해는 몸에 맞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매해 적중하기 때문이다. 몇 개 남지 않은 올해의 옷가지를 개키며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살을 빼야겠다’고 중얼거려보지만, 그보다 먼저 내 ‘마음의 소리’는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어디 가서 맥주 마셔야지!’라고 외치고 있다. 맥주야 매일 마시는 건데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 가서’라는 말이다. 날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습해지기 전에, 또는 긴 장마가 오기 전에, 빨리 가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 ‘어디’가 어디냐고? 휴양지? 페스티벌? 뭐 그럼 좋겠지만 멀리 못 가도 상관없다. 그저 머리 위가 뻥 뚫린 곳이라면 어디든!

옷 정리만 미룰 뿐이지 사실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엔 옷을 입고 벗는 데 드는 시간과 수고로움이 엄청나게 단축되고, 싸고 맛있는 채소가 많이 나며, 비빔면 두 개를 한 번에 먹어도 죄책감이 덜한 데다 무시무시하게 비싼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맥주가 맛있다! 싼 맛에 물처럼 마시던 마트표 맥주도 한여름에 샤워하고 나서 벌컥벌컥 들이키면 세계맥주대회에서 메달을 휩쓴 맥주가 딱히 부럽지 않다. 조악하고 번잡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형 비어홀도 여름밤에는 어쩐지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시끄러운 댄스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런 곳 말이다. 그 정신 없는 가운데서 마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500cc 생맥주가, 이상하게도 여름밤에는 제법 맛있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여름의 맥주’라면 단연 야외에서 마시는 맥주가 으뜸이다. 공원이나 한강 둔치에 돗자리를 깔고 누운 채 뒹굴뒹굴 거리면서 치킨과 함께 시켜먹는 맥주. 길가에 내놓은 편의점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홀짝홀짝 마시는 캔맥주. 이때 맥주는 비싼 게 아니어도 좋다. 싱거운 라거라도 시원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바깥이라는 사실이니까. 만약 두 통의 문자가 동시에 와서 하나는 핫하고 힙한 크래프트 바에서 수제맥주를 마시자 하고, 다른 하나는 노천에 테이블이 있는 허름한 호프집의 맥주를 제안했다 치자. 나는 8할, 그러니까 일 년 중 10개월은 크래프트 바로 향하겠지만, 두 달은 두말하지 않고 노천을 택하겠다. 5월과 6월. 바로 요즘 같은 때라면 말이다.

이맘때 야외에서 마시는 맥주는 왜 맛있을까? 왜 7월은 안 되고 지금이어야만 할까? 싱겁기 짝이 없는 답이지만, 맥주가 지금 맛있는 이유는 ‘날이 더워졌으니까’다. 더우면 갈증이 나고, 갈증엔 맥주가 정답. 이 시기가 지나면 햇볕은 너무 뜨겁고 바닥에선 지열이 올라와 숨이 막히기 때문에 야외 음주를 호젓하게 즐길 수가 없다. 별수 없이 실내로 들어서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게 틀어둔 에어컨 때문에 갈증은 금세 가라앉고 만다. 맥주와 냉방은 상극 중에서도 상극인데 말이다. 따끈따끈한 햇살 아래 느른하게 앉아 적당히 더워하며 맥주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기간은 짧다. 사실 짧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거고.

고개를 젖히면 바로 하늘이라는 점도 통쾌하다. 시종 나를 짓누르는 듯한 칙칙한 천장 따위 없이, 나와 저 하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과장하면 우주까지도 다이렉트다. 탁 트인 하늘을 향해 가슴을 펴고 숨을 크게 쉬면, 가끔 그 들숨에 라일락이나 아카시아 향이 들어오기도 한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맥주를 마시다 보면, 매년 돌아오는 여름이지만 올해는 특별히 더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게 어딘지 모르게 간지러운 기분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술은, 참 달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대낮에 야외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지나가는데, 이게 또 너무너무 좋다. 남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 나는 지금 술 마시는데~ 수고가 많아요~’하고 으스대는 기분이란! 옹졸하고 좀스럽다는 거 나도 잘 알지만 이런 마음으로 마시면 술이 백배는 더 맛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당장 월차를 내거나 수업을 째고 야외로 나가 맥주를 마셔보자. 머리 위가 시원하게 뻥 뚫린 곳이면 어디든 좋다. 풀이나 꽃이 가까이에 있으면 더 좋고,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다니는 길이면 더더욱 좋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더 습해지기 전에, 큰 비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바로 지금! 거듭 말하지만 이 시기는 짧다. Work Later, Drink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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