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감정의 식탁], 내가 아니라 뇌가 먹는다

2016.05.20
신에 대한 믿음, 연인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애착.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신체기관에서 일어난 생화학적 반응의 결과라면 어쩔 건가. 그리하여 언젠가는 영혼의 상처나 실연의 아픔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또 어쩔 건가. 결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게리 웬크의 주장이다. 사이비 교주나 인터넷 현자가 아니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의대에서 심리학과 신경과학·유전의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뇌기능에 미치는 약물 효과 연구의 권위자이다. 

약물(뇌가 최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과 음식(몸이 최상의 기능을 하기 위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커피·차·담배·알코올·코코아·마리화나는 약물일까, 음식일까? 웬크는 이들을 모두 음식으로 간주한 후, 입으로 들어가는 다양한 음식이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흔히 기분이나 의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이 많은 경우 과학의 영역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데 멈출 수가 없다. 세상에 이런 쓰레기가 있나 자책하던 이들이여, 그것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위의 팽창 정보를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일이다. 살아남아서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하면 뇌는 보상으로 엔도르핀과 엔도카나비노이드를 분비한다. 이런 내인성 아편 물질은 포만감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피드백을 차단함으로써 계속 먹도록 부추긴다. 이것이 ‘섭취 통각상실증’, 과식에 대한 신경과학자의 설명이다. 

여자들은 흔히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며, 특히 월경 직전과 월경 기간에 집착한다. 초콜릿에는 쾌감을 유발하는 화합물이 여럿 들었는데, 뇌에 미치는 영향과 그 결과는 프로게스테론 수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면 부종이 심해질 수 있는데, 초콜릿에 포함된 마그네슘염은 이를 예방할 수 있다. 마그네슘염 100mg이면 해결할 수 있지만, 누가 초콜릿 대신 마그네슘염을 선택하겠는가! 갓난아이가 젖을 무는 것은 모성의 신비가 아니라 유제품에 함유된 헤로인 유사 화합물인 베타-카세오모르핀이 미숙한 장을 지나 뇌로 흡수되어 도취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불안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보통 5HT-1A형 세로토닌 수용체가 적고, 그 결과 종교적 믿음과 실천에서 위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종교 체험은 오른쪽 해마의 뒷부분이 활성화되거나 두정엽의 윗부분이 비활성화되는 현상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민감한 주제를 과학적 입장에서 담담하게 진술하는 데 있다. 그리고 역시 담담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 때문에 산소를 섭취하며, 산소를 섭취하기 때문에 늙는다. 오래 살고 싶으면 소식해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좌절할 건 없다. 외롭다 싶으면 동네 약국에 다녀오는 것으로 충분한 날이 조만간 올 테니까. 사실 뇌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약들이 이미 나와 있고, 그 가치와 효용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혹시 그 전에 늙어 죽을까 걱정이 된다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매일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하루 2~3잔씩 적당량의 커피를 마시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고, 제2형 당뇨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니 마시자. 귀찮거나 괴롭지 않은데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니, 믿기 힘들지만 믿는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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