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젠더의식은 언제쯤 개선될까

2016.05.09
언론사 경쟁이 치열하다. 특종 경쟁은 아니다. 지난 4월 8일 [연합뉴스]는 ‘소라넷은 어떻게 17년을 살아남았나’라는 기사에서 가상의 운영자 A의 시점으로 소라넷의 흥망성쇠를 그려냈다. 해당 기사는 끔찍한 범죄적 사안에 대해 가해자 시점에서 묘사했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지난 4월 27일 다시 [연합뉴스]에선 ‘비혼이 대세? 외국 처녀라야 딱지 떼는 총각에겐 상처’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여성의 존재와 결혼이란 제도를 남성의 총각 딱지 떼는 도구로 여기는 수준의 제목이었다. 질세라 5월 1일 [매일경제] 프리미엄 섹션의 ‘Mr.존슨의 밤의 동화’라는 외부 필자 코너에서는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에게 술을 먹이고 섹스를 하는, 말 그대로 강간하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풀어냈다. 이 정도로 굵직한 건은 아니지만 다음 날 [헤럴드경제]는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지하철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역무원 기사를 링크하며 여성이 속옷을 벗고 변기에 앉은 이미지를 활용하며 그 스스로 가해자와 같은 관음증적인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보다 전인 4월 28일 SBS 뉴스 트위터 계정은 남성이 먼저 쳐다보고 폭력을 행사했다가 시비가 붙은 사건에 대해 마치 남자가 쳐다보자 여자가 숟가락을 던진 것처럼 멘션을 올렸다가 강한 반발을 샀다. 같은 사건에 대해 ‘예뻐서 쳐다봤다가 숟가락 맞은 30대’라는 타이틀로 소개한 [연합뉴스]로 비난의 화살이 분산되기 전까진.

버라이어티·코미디·웹툰·인디 신 등 여성 혐오로 문제가 됐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최근 불거진 언론의 젠더 의식 부족 역시 갑자기 생겨난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문제 삼지 않았던 것뿐이다. 지난 3월 [헤럴드경제]는 수면내시경 환자에 대한 의사 성추행 기사에 ‘대장내시경女’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가 비판 여론에 결국 사과했다. 그만큼 크게 회자된 일이었지만, 이것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ㅇㅇ女’라 부르는 걸 당연시하던 언론 관행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의 여성 혐오적인 기사는 브레이크 없이 발현되던 왜곡된 젠더 의식이 선을 넘어버린 것에 가깝다. [연합뉴스] 소속 A 기자에 따르면 “기자가 기사를 쓰면 데스크는 제목을 포함해 전권을 갖고 기사를 손봐서 내보낸다.” 즉 기자 개인의 문제만으로 축소할 수 없다. A 기자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연합뉴스]뿐 아니라 많은 언론사의 데스크와 간부가 소수자를 배려하거나 인권을 중시하는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문제 같다. 정치적인 성향과는 다른 의미로 이 집단이 보수적이라는 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해당 문제는 기자와 데스크의 젠더 감수성 부족만이 아닌 시스템의 무능한 일면을 드러낸다. [연합뉴스]에 직접 항의 방문을 했고 최근 트위터를 통해 언론의 여성 혐오 문제 대응을 위한 연대를 준비 중인 B 씨(트위터 아이디 @nojamhater)는 “본인들이 해도 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자체적인 기준이 없더라”고 토로한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뉴스팀 부장(해당 기사에 대해선 휴가 중이라 데스크는 보지 않았다고 한다)은 소라넷 기사에 대해 “소라넷이란 사이트가 이렇게 근절되기 어려워서 위험하다는 선한 의도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형식이다. 좋은 의도가 나쁜 형식에 담겨져 왜곡됐다는 뜻이 아니다. 형식은 의도를 담는 투명한 그릇이 아니라, 의도를 최대한 온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정교하게 깎아낸 조각 같은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소라넷 문제를 묘사한다는 건, 의도가 무엇이든 소라넷에서 벌어진 강간모의와 리벤지 포르노 공유가 여성에게 얼마나 공포인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이것이 소라넷에 대한 경계의 의도로 읽히길 바란다면, 그게 무능이다. 농촌 청년 기사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비혼이 늘어난다는 것과 농촌 총각이 결혼을 못 한다는 것, 두 개 팩트의 시간적인 인접성을 논리적 인과로 이해 혹은 포장했다가 벌어진 참사다. 악의적이기 이전에 못 쓴 기사다.

언론의 여성 혐오적인 기사에 대응하는 여성 단체들이 해당 기사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언론 전체의 개선을 요구하는 건 그래서다. [매일경제]에 ‘Mr.존슨의 밤의 동화’ 관련한 공식 항의 공문을 보낸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사무국장은 “이 한 건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방송처럼 심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 아무런 조심 없이 혐오를 정당화하는 기사들을 내는데, 이런 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요구 자체는 별다른 강제성이 없다. “필자에 대해 의식불명 강간 혐의로 고소할 수 있는”(이윤소 사무국장) [매일경제] 기사나 “범죄미화를 했다는 점에서 언론중재위원회에 명시된 시행규칙에 어긋난 부분이 있어 제소 가능”(한국여성의전화)하다고 본 [연합뉴스] 소라넷 기사처럼 범죄를 용인하는 수준의 기사를 중심으로 압박을 가하는 건 유용한 전략이다. 실제로 A 기자에 따르면 [연합뉴스] 내부에서도 기사 제목을 쓸 때 여성이나 소수자를 비하하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과연 지난 한 달간 나온 부당한 기사들은 외부적 압박과 내부적 자성을 통한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언론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감히 위대해지자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연합뉴스]와 [매일경제] 등은 해당 기사를 통해 결과적으로 가이드라인의 부재와 데스크의 필터링 능력 부족 등 전문 직능인에 어울리지 않는 무능을 드러내버렸다. 사회적 분업의 생태계에서 숙련되지 않은 직능인은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기사 가이드라인을 비롯한 기자의 직업윤리는 선의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와 모래의 비율을 맞추는 것과 같은 전문직으로서의 테크닉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위대해지자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분업을 통해 먹고사는 입장에서 다른 숙련된 직업인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능력과 체계를 복원하자는 것뿐이다. 이것은, 염치의 문제다.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이직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