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의 전쟁│② 디저트에 설탕이 없다면

2016.04.19

정부가 2020년까지 시민들이 하루 500㎖ 페트병에 담긴 코카콜라 2병 이상을 마시지 않도록 당 섭취량을 관리해 나가기로 밝혔다. 식약처는 식품별로 당류 저감 목표와 연도별 저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할 예정이고, 커피 전문점의 디저트‧슬러시‧빙수 등 조리식품과 자판기에서 판매되는 음료는 업체에서 자율적으로 당류를 표시하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설탕과의 전쟁”, “살찌는 대한민국”, “달달한 악마 아웃” 등의 헤드라인으로 설탕을 악의 근원처럼 묘사한다. 물론, 많이 먹는 것은 무엇이든 좋지 않다. 그러나 설탕을 빼면 그만인 것일까. 도서 [설탕과 권력]에서는 설탕에 대해 “설탕은 빵이 상하는 것을 방지해 주며, 소금의 화학적 내용물을 안정시켜 주고, 케첩의 신맛을 경감시켜 주며, 이스트의 먹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용법에 있어서 설탕의 단맛은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17세기 이후로 설탕의 용도는 이렇게까지 발전해 온 것”이라 적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열거할 이 메뉴들에서 설탕을 빼고 먹을 수 있을까. 아니, 이 메뉴들을 먹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마음을 움직이는 한 조각의 달콤함, 초콜릿
동전 크기만 한 달콤함으로 세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면 그 유혹을 거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외젠 들라크루아, 까미유 끌로델 등의 거장들은 꼬로 프랑스 ‘드보브 에 갈래’라는 초콜릿 가게에 그림을 주었다. 당시 가난했던 그들은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그림과 초콜릿을 바꿨다. 깨물면 바삭하고 부서지며 그 안에 은은한 헤이즐넛 향이 감도는 봉봉 초콜릿, 입안에 넣자마자 따뜻함으로 녹아내리는 생초콜릿을 갓 내린 커피 한 잔과 마시면 하루의 피곤까지 녹아 사라진다. 그러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원래 쓴맛이 강하다. 카카오 99% 초콜릿이 제품으로 나왔을 당시 “흙 맛”, “크레파스 맛” 등의 반응이 나오고 정말 마니아가 아니면 시도조차 못 했던 이유다. 초콜릿의 달콤함은 설탕에서 나오는 것으로, 원래 쓴맛이었던 카카오 열매에 1600년대 유럽 상류층들이 쓴맛을 없애려 사치품이었던 설탕을 아낌없이 넣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설탕을 넣지 않았다면 카카오를 분쇄하고, 압축하고, 카카오 버터를 만들고, 우유를 더해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초콜릿의 주재료인 커버춰 초콜릿 중에서도 달지 않은 편인 다크 커버춰의 카카오 함량은 50~70% 정도고, 나머지는 설탕‧카카오 버터‧바닐라‧레시틴‧분유 등 5~6가지 정도 성분이 추가된다. 도서 [초콜릿 학교]에 따르면 이 5~6가지의 기본 재료 외에 물엿‧식물성 유지‧가당연유‧전지분유‧유화제‧합성착향료 등 알 수 없는 원재료명/화학명이 많을수록 안 좋은 초콜릿으로 분류하고 있다. 초콜릿을 맛있게 먹으려면 그냥 설탕을 쓰면 되는 것이다. 

설탕으로 만든 우리의 취향, 마카롱
벚꽃이 흩날리는 날에 벤치에 앉아 장미향 혹은 벚꽃향이 가미된 꽃분홍색 마카롱 하나를 먹는다. 마치 그날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 마카롱은 인스타그램과 절친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콜릿‧케이크 등 다른 디저트보다 늦게 한국에 소개됐음에도 #마카롱으로 검색하면 80만 개의 게시물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마카롱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는 것은 하얀 설탕의 역할이 크다. 설탕(슈가 파우더)‧달걀흰자‧아몬드 파우더라는 간단한 기본 재료로 만들어지는 마카롱은 그만큼 분홍‧하늘‧연보라‧연두‧노랑 등 온갖 종류의 색상과 디즈니‧카카오톡‧러버덕 등 캐릭터 모양까지 만들 수 있어 많은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 또한 마카롱 특유의 식감은 설탕에서 만들어진다. 바삭하게 씹히고 촉촉하게 입에서 녹는 마카롱의 독특한 식감과 달달하고 고소한 맛은 설탕과 아몬드 파우더‧달걀흰자의 적절한 비율에서 나온다. 고급 마카롱일수록 아몬드 파우더가 많이 들어가 고소한 맛이 강하며, 질이 낮을수록 설탕‧아몬드 파우더 비율을 줄이고 밀가루를 넣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설탕이 안 들어간 마카롱은 더 이상 마카롱이 아니다. 

설탕으로 만든 아름다운 성채, 케이크
“딸기를 설탕으로 조리기 전에 냉동해뒀다가 쓰면 그냥 조릴 때보다 더 진한 엑기스”가 나와서 “촉촉하다 못해 거의 질척할 정도로 새콤달콤한 시럽이 스며든” 맛있는 케이크.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 묘사하는 케이크 중 하나다. 빵은 각종 시럽‧무스‧크림 등 설탕이 바탕에 되는 재료들을 통해 “끝내주게 맛있는” 케이크로 태어난다. 애초에 케이크의 기본인 시트에서도 설탕은 중요한 재료다. 케이크에 사용되는 밀가루는 글루텐이 적은 박력분을 주로 사용하는데, 너무 많으면 좋지 않지만 케이크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설탕은 단맛을 낼 뿐만 아니라 글루텐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을 막아 시트를 부드럽게 해준다. 또한 수분 보유력이 뛰어나 시트에 시럽(물과 설탕을 조린 것)을 발라 줄 경우 촉촉한 맛을 살려준다. 설탕 없는 케이크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고, 누군가 만든다 해도 뻑뻑하고 아무런 달콤함도 없을 것이다. 그런 케이크였다면 디저트 가게에서 홍조를 띤 채 고심하며 케이크를 고를 일도 없지 않을까.

집에 올 때 사오는 그것, 아이스크림
메로나가 200원(1992년)이던 시절 저녁이면 온 가족이 후식으로 메로나를 먹으며 TV를 보곤 했다. 그 기억에 지금도 퇴근 후면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럼을 뿌려 아포카토를 먹곤 한다. 야심한 밤, 조금 추워진 날씨에 뜨듯한 방바닥에서 몸을 지지며 먹는 아이스크림은 이가 시리도록 차면서 달달하고, 그때 TV를 함께 보면 시간을 방탕하게 쓴 듯한 만족감을 아주 저렴하게 느낄 수 있다. 인터넷 관용구로 “올 때 메로나”라는 말이 생긴 이유일 것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만들려면 달걀 4개‧설탕 60g(각설탕 30개)‧우유 7컵‧휘핑크림 3컵‧바닐라 4~5㎖‧소금 2~3㎖가 들어간다. 특히 설탕은 제품화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아이스크림 회사에서는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사용, 재료가 들어간 걸쭉한 액체의 온도를 낮추면서 공기압축기를 통해서 공기를 넣어 부피를 늘리는 흡열 과정을 거친다. 이때 설탕은 흡열과정에서 어는점을 낮추고, 덕분에 수분이 영하 18도에서도 얼지 않아 공기와 함께 아이스크림 조직 전체를 느슨하게 하면서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하며 단맛의 풍미를 더한다. 설탕이 없다면 서걱거리는 아이스크림밖에 먹을 수 없다.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팥빙수
고소한 우유로 만든 눈꽃얼음 위에 탱글탱글하고 윤기 있는 팥이 올라간 빙수를 먹고 나면 한여름이라도 입술이 덜덜 떨린다. KBS [생생정보]에 나왔던 팥빙수 황금레시피에 의하면 빙수에 올라가는 팥조림은 팥 2컵(400g)‧우유 2컵 반 (500㎖)‧연유 1+1/4컵(250㎖)‧설탕 1컵+8큰술‧소금 1/4큰술‧꿀 1큰술‧인절미 8조각(4인 기준)이 들어간다. 우유 소는 우유 2컵 반‧연유1+1/4컵‧설탕 4큰술이 들어간다. 설탕 및 연유(우유를 농축한 후 설탕 40%의 설탕을 첨가한 것) 역시 상당히 들어간다. 여기서 설탕과 연유를 빼고 팥으로만 단맛을 낸다면, 그 맛은 지금의 팥빙수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설탕 없는 팥빙수란 밍밍한 우유 얼음에 잡곡밥을 올려 먹는 것 같은 맛밖에 나지 않는다. 최근 정부는 설탕 섭취 규제 방안을 내놓고 설탕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팥빙수를 이 대상 중 하나로 삼았다. 팥빙수를 건강식으로 생각하고 먹으라는 것일까. 

노동력의 대가, 식혜
찜질방에서 막 나와 마시는 어석거리는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달달한 식혜 한 모금. 명절날, 산적과 갈비찜 등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다음 들이켜는 고소한 식혜 한 사발. 식혜는 독특한 단맛과 우아한 고유의 향기를 가진 한국의 대표적인 음청류로, 엿기름 4컵‧멥쌀 5컵‧물 20컵‧설탕 3컵‧생강(또는 유자청) 1뿌리‧잣 2큰술이 들어간다. 엿기름 속에는 효소가 많이 있어 당화(효소 또는 산의 작용으로 녹말 등 무미한 다당류를 감미가 있는 당으로 바꾸는 반응)작용이 일어나 식혜의 독특한 맛을 낸다. 우리가 보통 먹는 식혜의 단맛은 대부분이 설탕에 빚지고 있다. 물론, 설탕을 안 넣고 식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고생한 양에 비해 먹을 수 있는 양이 현저하게 적다. 식혜는 찐 밥에 엿기름을 넣고 5~6시간이 지난 후 물과 함께 끓여야 하는데, 적당히 달달하게 먹으려면 넣은 물이 거의 절반 이상 없어질 때까지 조려야 한다. 명절날 여러 명이 먹을 식혜를 설탕 없이 만든다면 상당히 많이, 오래 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양을 늘리기 위해 설탕을 넣고 양을 불리는 것이다. 설탕은 재료의 맛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아끼게도 해준다. 그런데도 건강 때문에 설탕 없는 식혜를 먹고 싶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식혜를 먹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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