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은 싫다”

2016.04.18
영화의 완성도나 역할의 비중과는 별개로, 천우희는 어디서든 자신의 얼굴을 새겨놓고야 마는 배우다. 기생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 윤우(유연석)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해어화]에서도 ‘조선의 마음’을 부르는 천우희의 낭랑한 목소리와 흔들리지 않는 눈빛만큼은 잊기 어렵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매체와의 인터뷰에 [곡성]의 프로모션 일정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또렷한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어화] 관련 스케줄이 빡빡했는데도 힘이 넘치는 것 같다.
천우희
: 원래 체력이 없는 편인데, 이번에는 별로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든다. 여러 번 인터뷰 하는 것도 재미있다. 나 자신, 그리고 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특히 이번에는 내가 [해어화]로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들, 혹은 연기를 하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당연히 감사하기도 하고.

뭘 보여주고 싶었을까.
천우희
: [해어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한데, 천우희의 우울한 모습뿐 아니라 다른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일단 시각적으로도 굉장히 화려하지 않나. 노래를 직접 하면서 다른 영역을 시도해봤다는 의미도 있다. 그게 나로서는 굉장히 큰 도전이었거든. 뭔가를 새롭게 해본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라 (웃음) 그만큼 부담이 되기도 했다.

연습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천우희
: 보컬트레이너 선생님과 하루에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다섯 시간씩 4개월을 연습했다. 기본적인 발성법도 익혀야 하고, 내 목소리 중에서 매력적인 음색을 찾아야 하니까. 사실 불안했다. 평소에 나는 내 톤이 엄청 낮다고 생각했거든. 고음을 내는 데 두려움이 있는 편이라, 혼자 노래를 부를 때도 높은 부분은 그냥 넘겨버리는 습관이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해어화]에서는 꾀꼬리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보컬 선생님께서 의외로 괜찮다고 하시는 거다. “우희 씨, 두성도 되네. 성악 영화도 해” 이러시면서. (웃음) 다만 그 톤을 노래에 적용하고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도 영화에는 만족스럽게 나왔더라.

어떤 과제가 주어져도 결국 해내는 타입인가 보다.
천우희
: 약간 엄살은 심한데 겁은 없다. 주변에서도 그런다. 내가 “나 이거 잘 못 하는데” 하다가 막상 시키면 신나게 막 한다고. 엄살떠는 건 혹시라도 실수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건지…. 아무튼 도전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과감한 면도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맷집이 센 편인 것 같다.

최근 클라이밍에 빠져 있는 것만 봐도 도전적인 성격이라는 걸 알겠다. (웃음)
천우희
: (김)혜성이랑 (문)근영이랑 같이 했는데, 처음인데도 너무 재미있었다. 성취감이 정말 크더라. 닿지 않을 것 같은 지점에 손이 탁 닿는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한 코스를 끝내고 나면 확실히 쾌감이 있다. 그 맛을 알아가고 있었는데 마침 [해어화] 홍보가 시작돼서 네 번 정도밖에 못 갔다. 삼 개월 정도 일주일에 세 번은 가야 실력이 는다고 하던데 완전 초급인 거지. 다른 돌로 손이나 발을 옮기는 게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일단 바닥에 매트리스도 깔려 있고, 원래도 나는 이런 쪽에 겁이 없거든. 의외의 균형감과 유연성이 필요한 일인데 투지가 막 불타오른다. 다음에는 저 위로 꼭 가고 말아야지, 뭐 그런.

또래 배우들과 만나면 운동 외에는 주로 뭘 하나.
천우희
: 단순하다.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하거나. 정말 잡담만 할 때도 있고, 연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는데 사실 지난해에는 근영이나 (김)예원이 같은 동갑내기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연락만 계속 주고받다가 요 근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친구들도 내가 작년에 겪었던 고민이나 혼란스러움을 비슷하게 갖고 있더라. 예전에는 나 혼자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을 언뜻 했거든.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시기인 것 같았다. 작품이나 연기처럼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일 외적인 영역에서도 그렇고.

다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인데, 국내에는 여성 배우들이 활약할 만한 작품이 거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천우희
: 거기에 대한 고민이 예전부터 많았다. 내 생각에는 악순환인 것 같다. 작품을 만드는 분들이 여배우들을 쓰는 데 주저하고, 그러다 보면 배우들 역시 위축되고. 이런 작품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혹은 관객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겁먹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좀 과감한 연기를 했을 때 바깥의 시선이나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일들도 있으니까. 많은 분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왜 그렇게 힘든 연기만 해? 어렵지 않아?” 혹은 단순하게 “너 그런 것만 찍으면 CF 못 해”라고. 그런데 배우한테 그런 게 주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내가 무슨 잔 다르크처럼 앞장서서 가겠다, 이런 건 아니지만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지지 않을까? 변화의 한 축을 조금이나마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 개봉하는 [곡성] 작업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남성 배우들과 주로 작업해왔던 나홍진 감독 작품인 데다, 황정민·곽도원과 호흡을 맞췄으니까.
천우희
: 사실 [곡성]은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작업이었지만, 선배님들이나 감독님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받으니까 연기하는 게 너무 신나는 거다. 어느 날 다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찍는 동안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들이 깨졌다고, 여성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더 상상하게 됐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래요, 감독님. 여성들도 할 수 있어요. 분명히 많은 것을 표현해낼 수 있고, 그만큼의 에너지가 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비록 한 사람의 변화일지언정 나한테는 큰 의미로 다가온 거지.

영화계 전체적으로도 달라지는 중일까.
천우희
: 긍정적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배우가 요구한다고 해서 갑자기 변화하는 게 쉽지 않고, 관객이 원해야 가능한 부분도 있고. 한 번씩은 ‘아, 내가 너무 이상만 가지고 있나?’ 싶은 순간도 오겠지만,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후회가 없도록 끝까지 노력할 거고,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이 없다면 이 일에서 깨끗하게 손을 털겠다고. (웃음) 나는 뭐든지 그러는 스타일이다.

여성 위주의 이야기를 담은 해외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도 있겠다.
천우희
: 최근 그런 작품들을 많이 봤는데, [캐롤]이나 [대니쉬걸],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은 영화의 규모가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부 여성을 소모되지 않는, 혹은 기능적이지만은 않은 역할로 그려내더라. 만약 이 작품들이 한국에서 나왔다면, 같은 소재를 다룬다고 해도 여성을 좀 다른 시선에서 표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리우드에도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한다고는 들었는데, 그래도 한국의 지금 상황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부러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해어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소율과 연희의 관계가 우정이든 갈등이든 조금 더 부각됐다면 어땠을까 싶더라. 뛰어난 재능이 있는 여성들에게 사랑이 결정적인 요소일 것 같지는 않아서.
천우희
: 음…. 미친 짓일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거침없이 말을 했던 부분이 있다. 갑자기 후회되네. (웃음) 뭐였냐면, 지금 이 영화가 개봉하고 만들어지는 데는 뭐든지 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이 영화로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정확해야 하고, 지금 1940년대를 굳이 끌어왔다면 그에 걸맞은 의미를 전달해야 된다고 본다. 당시에도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은 지금과 비슷했겠지만, 그래도 현대 여성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지 않나. 이런 의견을 제작사 분들께 전달했었는데 내용을 바꿔달라는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생각을 한번 해보자는 거였다. 시대가 변했으니까.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이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더라.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런 의견을 표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타고난 성격일까, 일하면서 만들어진 태도일까?
천우희
: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되게 소심하고, 쑥스러움도 많이 탄다. 잔걱정도 굉장히 많다. 하지만 연기적인 부분에서 내 소신을 보여야 할 때는 조금 강하게 나가는 편인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지 못한다는 뜻인가.
천우희
: 뉘앙스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느끼게 하거나, 혹은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뭔가를 우기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는 모두에게 좋을 선택을 하고 싶고, 그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가자, 이런 뜻이라면 싫다. 나한테는 한 작품 한 작품이 굉장히 소중하다. 정말 최선을 다해도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해서도 피 터지게 고민해야 한다. 이 순간은 넘어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해 아쉬워하면 주변에서 “아이,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그런데… 다음에 잘하는 건 당연한 거다. 다음은 다음인 거고, 이번은 이번인 거고.

빨리 더 많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없나.
천우희
: 전혀 없다. 만약 그랬다면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초조해했겠지. (웃음) 누구나 본인의 때가 다 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가는 게 좋다고 본다. 나는 정말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제 속도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잠깐 작품을 하지 않고 쉴 때도 연기에 대한 호기심은 있을지언정, 빨리 작품을 해야겠다는 조급함은 느끼지 않는다. 물론 막상 일이 없어서 쉬는 순간이 딱 다가왔을 때는 분명히 불안할 거다. 그럼에도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설령 가시밭길일지언정 나는 정도를 걷고 말겠다 (웃음) 이런 생각도 항상 하고. 묵묵하게, 꿋꿋하게 한 발 한 발 가야지.

그럼 올해 이루고 싶은 건 뭘까.
천우희
: 지난 1년 동안 상처를 받기도 하고,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 다 정리하고 심적인 여유를 찾은 상태다. 올해는 육체적인 여유도 좀 찾고 싶고,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조금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20대 때는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포기한 것들이 많았거든. 연기든 뭐든 과감하고 싶다.

그동안 충분히 과감했던 거 아닌가? (웃음)
천우희
: 더 과감해지려고.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뭐든 겁 없이 해야지. 앞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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