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유시진, 캡틴 코리아

2016.04.14
KBS [태양의 후예]는 멜로물이 아니라 히어로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 드라마답게 히어로가 연애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은 단순히 완벽한 남자친구가 아니라, 완벽한 슈퍼히어로다. 군인으로서의 전투력부터 전술 능력, 그리고 가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는 신비의 초능력까지, 드라마에서 드러난 캡틴 유시진, 아니 한국을 대표하는 히어로 캡틴 코리아의 능력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았다.


BB 스나이퍼
휴가 중에 BB탄 총으로 과녁 맞히기 게임을 하던 유시진과 서대영(진구)은 낮은 점수와 함께 “눈 감고 쏘셨나요, 당신의 계급은 이등병입니다”라는 굴욕적인 멘트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실제 사격 능력과는 별개로 BB탄의 탄도는 실탄과 다르며, 유시진이 구시렁댄 것처럼 영점 역시 맞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아무리 과녁을 잘 조준하고 흔들림 없이 쏜다 해도 겨눈 곳에 그대로 총알이 닿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오토바이를 훔치고 질주하던 김기범(김민석)의 이마를 향해 그것도 거의 같은 부위만 연속으로 맞췄다는 것은 과녁 게임을 하면서 이미 탄도 및 영점 계산을 끝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

스트리트 파이터
너무 당연하지만 특전사 대위 유시진은 사격뿐 아니라 맨몸 격투에도 능하다. 비무장지대에서 북한 특수부대원과 벌인 나이프 대결에선 옆구리를 내주고 목을 노렸으며, 미국 델타포스 대원과 벌인 일대일 격투에선 피지컬에서 밀리자 몸에 올라타 암바까지 연결하는 화려한 그래플링 기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의 압도적인 전투력은 일대다수의 스트리트 파이팅에서 돋보이는데, 조직원들에게 맞고 있는 기범을 구하기 위해 몇 명의 깡패를 땀도 흘리지 않고 제압했으며, 우르크에선 총을 든 일곱 명을 상대로 싸워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 어느 순간부턴 강모연(송혜교)도 유시진과 함께라면 총 든 상대를 봐도 긴장을 하지 않고 있다.

알파고 급의 연산 능력
유시진은 언제나 농담 속에 진심을 숨기는 타입이다. 그는 강모연에게 한 기습 키스에 대해 “천 번쯤 생각하다가 한 번 용기 낸 겁니다”라고 말했다. 천 번. 이것은 단순히 ‘할까, 말까’라고 되뇌는 것만으로도 2,000초 약 33분 정도다. 그걸 유시진은 강모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1, 2분 사이에 해낸 것이다. 심지어 유시진은 그냥 키스를 한 것이 아니라 “되게 먹고 싶은가 봐요”라며 와인을 흔드는 강모연에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며 키스를 했다. 즉 단순히 ‘할까, 말까’를 천 번 되뇐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키스를 할 타이밍과 그에 어울리는 대사를 천 번 시뮬레이션 했다는 뜻이다. 엄청난 연산 능력으로 수백만 번의 연습을 하며 실력을 끌어올리는 알파고의 대항마는 한국 기원이 아닌 우르크 태백 부대 주둔지에 있었다.

최강의 사이드킥 서대영
유명 히어로 곁에는 뛰어난 사이드킥이 존재한다. 배트맨 곁엔 로빈이 있으며,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의 관계 역시 영화와 달리 코믹스에선 히어로와 사이드킥 관계다. 그리고 캡틴 유시진의 곁엔 서전트 서대영이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남한 군인이 북 특수부대원들에게 억류되어 있을 때도 무장을 해제한 상태로 서대영과 단둘이 진입해 문제를 해결했으며, 휴가를 나가도 둘이서, 소개팅을 해도 둘이서 한다. 거의 모든 임무마다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상의하는 사이드킥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며 특히 “힘든 일은 서 상사님이” 하는 것이고, 얄미운 진영수(조재윤)를 때려주는 것도 서대영이 해주니, 유시진의 고운 피부의 8할은 서대영의 덕이다. 

정부에도 할 말은 하는 애국자
강모연과의 말다툼 도중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국기를 향해 경례하는 장면은 영화 [국제시장]의 패러디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유시진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태도와는 별개로 뼛속까지 애국자 타입의 인간이다. 그는 국가를 들먹이며 실종자보다 서류부터 찾아야 한다는 진영수에게 말한다. “국가? 국가가 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야. 군인인 나한테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자고 한 임무는 없어.” 이처럼 국가의 가치를 권력의 주체인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찾는다는 점에서 그는 캡틴 아메리카를 연상케 하는데, 최근 국정원 업무도 도와준 그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간첩 신고도 유시진, 소방 신고도 유시진
게릴라전, 정찰, 정보 수집, 인질 구출. 윤명주(김지원)가 강모연에게 밝힌 유시진의 주 업무다. 하지만 우르크 지진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유시진은 전투를 위한 전술뿐 아니라 소방 전술에도 능통하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10톤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에어백 네 개를 무게 분산 포인트에 맞춰 잔해를 들어 올리자는 계획도, 동시에 에어백 공기 주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로 대신하자는 아이디어도 모두 유시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것도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으며 행동한다는 유시진이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때려 부수거나 남을 죽이는 것으로밖에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히어로와는 거리가 멀다.

알고 보니 천근추
강모연이 몰던 차가 낭떠러지에 걸린 상황에서 유시진이 자동차 무게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강모연을 구한 장면은 [태양의 후예]의 비현실성을 지적할 때 끊임없이 회자된다. [아이즈]에서도 해당 상황에서 유시진이 앞으로 자동차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선 약 300㎏의 무게를 실어야 했다고 계산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유시진의 능력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협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상승 무공 중에는 천근추(千斤錘)라 해서 모든 기운을 단전에 모아 무게를 증가시키는 무공이 있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니, 합리적으로 재구성해보겠다. 유시진이 천근추로 무게를 실어 자동차의 균형을 잡은 뒤, “이 차를 빠뜨릴 겁니다. 날 믿어요. 구해줄게요”라며 자동차를 추락시키는 순간 강모연을 붙잡고 경공술과 함께 솟아올라 바다 위를 걸어 나오면서 구조가 완료된 것이다. 참고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경공술은 과거 지하철 2호선 합정역 1번 출구 근처 학원에서 배울 수 있었다.

나의 부활을 의심하느냐
총을 맞았다. 피를 콸콸 흘렸다. 심장이 정지됐다. 그리고, 부활했다. 북한 특수요원 안정준(지승현)을 구하다 괴한들의 총을 맞아 쓰러졌던 유시진이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면 당신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리라. 강모연이 일하는 병원에 실려와 심정지에 이르렀지만,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이 나쁜 놈아!”라는 강모연의 말에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난 그는 이것으로 둠스데이와 싸우다 죽은 뒤 다시 살아난 슈퍼맨처럼 부활한 히어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니 어젯밤 들려온 그의 작전 중 사망 소식에 슬퍼하고, 실종 1년 만에 생환한 그의 여전한 모습에 안심한 이들은 반성하자. 아주 오래 전 부활의 복음을 알렸던 예수의 말을 옮겨 본다.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캡틴, 오 마이 캡틴
우르크 갱단 두목인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는 유시진에게 “캡틴”이라 호칭한다. 유시진의 계급인 대위의 영어 명칭 자체가 캡틴이기 때문이다. 대위 위로 소령부터 대장까지 수많은 계급이 존재하지만, 캡틴이라는 단어에 선장이나 주장 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위는 단순한 중간 계급이 아닌 좀 더 직관적인 리더, 대장의 느낌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로,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위 신분으로 하울링 코만도를 이끌었고 70호봉을 넘긴 지금까지도 여전히 장군 대신 캡틴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유시진 역시 대위, 혹은 캡틴이란 명칭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데, 그의 직속상관의 대사를 인용하면 “사고만 아니면 별이란 별은 다 달 놈”이지만, 결국 명령 불복종으로 소령 진급 심사에서 누락된다. 아, 캡틴이여 영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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