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예능│① 그리고 아재들만 있었다

2016.03.29
근 자주 언급되는 용어 중 하나는 ‘아재(‘아저씨’의 낮춤말)’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3월 16일 자 방송에서는 현아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셰프들의 표정이 비춰졌고, JTBC 측은 이 영상을 포털사이트에 공개하며 “현아의 ‘매혹적 뒤태’에 아재들 침 질질… 단체 경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SBS [토요일이 좋다] ‘백종원의 3대 천왕’(이하 ‘3대 천왕’)은 백종원이 “(파인애플은) 좋은 사과라는 얘긴가요?”라고 실없는 농담을 하자 ‘아재 개그 경보’라는 자막과 함께 “아재 개그가 되게 열풍”이라는 김준현의 발언을 내보냈다.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은 아재, 즉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이다. tvN [수요미식회]와 [어쩌다 어른], JTBC [아는 형님]처럼 2015년부터 편성된 방송은 물론, KBS [해피투게더 3]와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무한도전]처럼 비교적 역사가 긴 예능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중년 남성들이 출연하고, 썰렁한 코미디가 문제는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방송이 분위기나 기준을 중년 남성들에게 맞춰놓고 그 외의 사람들을 들러리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잘 익은 삼겹살을 설현의 뒤태 같다고 표현했던 ‘3대 천왕’에는 매회 걸 그룹 멤버처럼 젊은 여성이 ‘먹요정’으로 출연해 노래와 춤, ‘먹방’을 선보이고, 이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이휘재와 백종원 등의 모습 위로는 ‘아빠 미소’라는 자막이 달린다. [해피투게더 3]의 ‘1박 2일’ 특집에서는 엄현경이 한자리에 있음에도 ‘1박 2일’ 멤버들과 MC들 모두 김종민의 주요 부위 왁싱에 대한 노골적인 농담을 꽤 오랫동안 나누며 낄낄거렸다. 아재들끼리 모인 예능에서 어린 여성은 보기에 흐뭇한 대상이고, 아재들은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조차 서슴없이 한다. 그러나 이처럼 불쾌한 장면들은 늘 웃음으로 무마되며, 다른 한편으로 아재란 불쌍한 존재로 그려진다. [무한도전]의 ‘나쁜 기억 지우개’ 편에서 정준하는 조정민 목사에게 “아내도 집에서 애기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이라면서도 “요즘은 (내가) 일하는 소”라며 가장으로서 자신의 희생을 더욱 강조했다. 이것은 가정 안에서 반복되는 아내의 노동을 가치절하 하는 발상이지만, 대부분의 예능에서 중년 남성 외 가족 구성원들의 어려움은 언급될 기회조차 없다. 마음껏 고충을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재들뿐이다.
덕분에 중년 남성들은 사회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도 권력을 갖는다. 아재들이 지배하는 예능에서 공격을 받거나 토크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해도 겉으로는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다. 중년 남성과 중년 남성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파트너에 대한 존중은 당연한 일이지만, [해피투게더 3] ‘잡혀야 산다’ 특집은 아내에게 나름대로 잘한다는 중년 남성들을 모아 ‘가족에게 꽉 잡혀 사는 가장들’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결과적으로 방송은 누가 아내 앞에서 더 기를 펴고 사는가에 대한 배틀이 되었다. 아내인 김은희 작가가 자신보다 돈을 더 잘 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던 장항준 감독은 “부부가 아니라 갑을관계다. 이 사람(장항준)이 거의 노예”라는 김승우의 도발에 젊은 시절 혼자 점수를 매겨서 아내를 골랐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걸 그룹 멤버들이 중년 남성 위주의 각종 예능에 자꾸만 ‘꽃병풍’처럼 동원되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는 형님]에서 이수근과 서장훈 등의 멤버들은 신인 걸 그룹 우주소녀를 동등한 출연자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로 맞이했지만, 어쨌든 우주소녀는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방송 러닝타임 내내 얼굴을 비출 수 있었다. 그렇게 은연중에 예능 프로그램들은 말한다. 아재들의 입맛에 맞춰라, 그러면 살아남는다.

오세득 셰프의 ‘아재 개그’가 먹혔던 맥락에는 중년 남성이 재미없는 유머를 하고, 그보다 어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비난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아재’라는 말에는 중년 남성들의 자기애만이 듬뿍 담겨 있다. [연합뉴스]와 [조선일보]는 각각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아재문화’로 나타났다”고, “‘아재 개그’로 한국 사회는 ‘아저씨’를 넉넉한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예능에서조차 중년 남성들은 중심부를 차지한 채 종종 아무런 필터나 자기반성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있지만, 역시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는 ‘개저씨’라는 말을 황급히 거뒀다. 대신 ‘아재’라는 용어로 중년 남성들은 원래 푸근하며 소통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라고, 그러니 그들 또한 위로받아야 하며 가끔은 미성숙한 행동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포장한다. 아재들의 자기애와 동지애, 자기연민은 누구에게도 제지받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예능은 점점 더 망가져 간다. 지난 1월 9일, 김구라는 [무한도전] ‘예능총회’에서 “윤종신의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와 MBC 예능의 유착관계를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예능의 진짜 유착관계는 ‘아재 카르텔’인 것 같다. 다 함께 바닥을 보이는 것이 진정성이자 재미라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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