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예능│② 아재가 지배하는 예능에서 알아야 할 것들

2016.03.29
머릿수로나 영향력으로나 중년 남성들이 TV 예능을 장악하면서, 이들 프로그램이 드러내는 패턴은 점점 뚜렷해지고 전반적인 태도는 비슷해진다. 그들의 서클 안에 들어 있지 못한 여성이나 나이 어린 사람, 미혼자를 대하거나 다루는 방식은 점점 무신경하고 무례해지지만 이미 익숙해진 분위기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한국 예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그렇기 때문에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결혼은 감옥이 아니다
결혼을 인생의 무덤이자 고생의 시작으로 취급하는 농담은 기혼 남성 연예인들 사이에서 뿌리 깊은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결혼을 앞둔 이찬오 셰프에게 정형돈은 “축하할 일입니까?”, 김성주는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놀렸고,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여자친구랑 사는 느낌”이라는 최현석 셰프에게는 야유가 쏟아졌다. 반면 “히말라야 등정하는 기분”이라는 이연복 셰프의 표현에는 “솔직하다”는 호응이 따랐고 결국 최현석이 ‘대세’를 따라 이찬오에게 “얼마나 갈 것 같니?”라고 묻고서야 ‘남자들만의 공감 토크’는 폭소로 마무리됐다. 성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임에도 결혼 그 자체를 억압과 손해로 여기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은 ‘같은 편’인 남성들끼리의 연대를 확인하며 웃음 속에 죄책감을 희석시킨 채 퍼져나간다. 최근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육중완은 결혼을 앞둔 기분에 대해 “돈을 벌어야 된다는 책임감에 가슴 속이 묵직해지고, 약간 과장하면 군 입대할 때 기분이랑 똑같다”고 답한 데 이어 “군대는 2년이면 제대인데…”라고 덧붙였다. 불과 6개월 전, 결혼 상대에게 자신의 집에서 1년에 제사를 14번 지낸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며 “비밀이다. 말하면 결혼 못 한다”던 그다.

아내는 적이 아니다 
SBS [자기야-백년손님]에서 성대현은 남자로서의 로망에 대해 “남자로 태어났으면 밥상은 한 번 엎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이천수는 결혼 초반까지 현역이라 수입이 좋았던 자신이 ‘갑’이었지만 은퇴를 하자 갑을 관계가 바뀌어 “눈치를 보고 청소도 한다”고 말했다. 이천수 부부가 그렇듯 맞벌이 가구 비율은 2014년 10월 기준 43.9%로 전년 대비 1% 증가(통계청)했고 기혼 여성들의 생계형 취업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예능에서는 여전히 ‘가장으로서의 남성’을 치켜세우는 동시에 그들이 ‘집에 있는’ 배우자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바가지를 긁히며 사는 것처럼 그린다. “아내의 동의 따윈 필요 없다”는 모토 아래 남성 시청자의 의뢰를 받아 집의 일부를 개조해주는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는 “세상 살다 보면 가정도 힘들지만 사회생활도 힘들다”, “맥주 한 잔 마시는 걸로 아내분들이 눈치 주는 건 좀 그렇다”는 멘트들로 남성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면서 자기 공간 하나 갖지 못하는 약자’로 포지셔닝한다. 그들이 가족 모두의 공간에 실내 야구장, 격투기용 케이지, 남성 전용 화장실을 설치하며 의기양양해하는 동안 ‘남편을 이해해주지 않는 무서운 어른’으로 취급되던 아내는 뒤늦게 화를 내거나 황당해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다. 아내를 동등한 파트너로, 혹은 진짜 무서운 상대로라도 여긴다면 그럴 수 있을까.

여성은 양념이 아니다
예능의 대세가 된 ‘먹방’과 ‘쿡방’에서도 여성은 대개 보조역이나 눈요기의 대상이 된다. SBS [일요일이 좋다] ‘백종원의 3대천왕’은 맛집 주인들이 출연해 직접 요리를 하고 ‘백설명’ 백종원과 ‘먹선수’ 김준현이 토크를 이끄는 맛 중심의 예능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지난 1월 “젊은 여성의 입맛을 대표하는 MC가 필요했다”며 ‘먹요정’ 하니를 MC에 합류시키면서 아이돌 패널의 비중도 늘렸다. 걸 그룹이나 이수민 등 어린 여성 출연자들이 주를 이루는 이들은 맥락 없이 춤이나 상황극 등 개인기를 선보이며 시식의 기회를 얻고, 이들에게는 ‘걸 그룹이 저래도 되냐’, ‘내숭 없는 폭풍 먹방’과 같은 호들갑이 관성처럼 따라붙는다.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찬사는 희롱의 경계를 오간다. [냉장고를 부탁해] 현아 편에서 김성주는 “혹시 남정네들이 (냉장고) 문을 열어본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아니라는 답변에 흐뭇해한 안정환은 “한번 안아볼까?” 하며 냉장고를 끌어안았다. 냉장고를 공개하는 건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는 현아의 말에는 “은밀히 감춰왔던 속살을 드러내는 느낌”처럼 성적인 뉘앙스를 담은 자막이 씌워졌다. 특정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더라도 여성은 흔히 ‘먹을 것’에 비유된다. tvN [수요미식회] 막국수 편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인 같아 차마 옷고름을 풀 수 없다”와 같은 표현이 등장했고,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이현우는 보기 좋게 차려져 있던 막국수를 먹은 것에 대해 “범했다”고 말했으며 제작진은 이를 편집하는 대신 자막에 호랑이 CG를 넣는 것으로 ‘장난스럽게’ 장단을 맞췄다. 

애교는 여성의 본분이 아니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애교를 요구받은 강지영이 눈물을 보인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성 출연자에게 애교를 맡겨놓은 듯 보여달라는 분위기는 여전하고,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신인의 입장에서 애교는 생존을 위한 필수 기술이 되었다. 지난해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레드벨벳의 슬기는 자신이 원래 애교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면서도 준비해온 애교 개인기를 선보였고, MC들은 함께 출연한 그레이를 향해 ‘곡을 달라’는 애교를 부려보라고 요청했다. 톱스타라 해도 애교 노동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SBS [연기대상] MC 이휘재는 전지현에게 “남편한테 하는 애교가 있다면 보여달라. 간단하게, ‘여봉’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고 한참 곤란해하던 전지현은 카메라를 향해 애교 섞인 한마디를 남겼다. 이처럼 애교를 요구받았을 때 수행하지 않는 여성은 ‘방송의 룰’을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제시에게 윤종신은 “김구라 씨가 MBC [세바퀴]에서 아주 골치 아팠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했고, 김구라는 “이 친구는 밖으로 내보내야 되지 스튜디오 토크는 아니라는 거”라고 해명했지만 제시는 “저도 그때 애교를 계속 부탁해서 열 받았다”고 받아쳤다. 이에 김구라가 “대본에 있고 위에서 자꾸 시켜서 그런 것”이라 말하자 제시는 “애교를 계속 안 했더니 저한테 ‘시키는 건 해야지’라며 화내더라”고 덧붙였다. MC의 문제인지 ‘위’의 문제인지 가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성의한 아이템은 불편할 뿐 아니라 진부한 방송을 만든다. 

짝짓기는 축제가 아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나 JTBC [님과 함께] 등 ‘짝짓기’ 콘셉트의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솔로인 사람에게 주변의 기혼자나 연장자들이 이성을 만나도록 압박하고, 이를 모두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있다. 지난해 MBC [무한도전] 멤버들은 광희가 호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유이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 “너 남친 있어, 없어? 그것만 확실하게 얘기해줘. (광희랑) 사귀면 안 되냐?”고 물은 뒤 유이를 녹화에 초대했고, 유이에게 머리 넘기는 것과 긴 소매를 손끝으로 쥐는 것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남자를 설레게 한다며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이런 거 하지 마”라고 놀려댔다. 이처럼 다수의 연장자 남성들이 무리 중 한 남성의 연애 전선을 응원하는 상황에서 상대 여성의 행동은 의도와 상관없이 ‘유혹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흥’을 깰 수 없는 입장에 처한 당사자는 반박하거나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드러낼 기회를 차단당한다. 최근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에서 ‘월요 커플’로 설정된 송지효와 개리의 데이트가 진행될 때, 방송을 앞두고 메이크업을 받는 송지효의 모습을 VCR로 본 김종국·유재석·지석진 등은 “끼 부리네. 끼 부려”, “너도 보통 아니다 야, 못 잊게 하려고!” 등의 멘트를 던졌다. 다시 말하지만 그 순간 송지효는 그냥 메이크업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이좋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하하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게 저건데~ 오늘 끝나기 전에 키스 한번 안 해봐요, 진짜?”라고 말했지만, 시청자들이 그렇게까지 방송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지랖도 적당해야 하는 건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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