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팬에게 제작비를 모을 때

2016.03.24
최근 라붐과 타히티, 스텔라 등 몇몇 걸 그룹이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메이크스타’를 통해 앨범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로 인디 밴드나 싱어송라이터들이 소규모 소비자들과 직접 연결되고, 이들의 후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음반을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크라우드 펀딩 형식이 아이돌 그룹의 앨범 제작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목표액 1,000만 원을 넘겼고, 스텔라는 4,000만 원을 모금해 목표액의 400%를 초과 달성하기도 했다. 스텔라의 소속사인 디엔터테인먼트파스칼 측은 “해외 팬덤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을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메이크스타의 김재면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이 “대형 기획사를 제외하고 많은 기획사가 자금 압박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해외 마케팅 기회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과 마케팅 툴을 제공하는 역할”이라고 밝혔다.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을 제작하는 데 참여했다는 보람을 주고, 기획사에서는 보다 나아진 제작 여건에서 앨범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앨범 제작을 후원하는 팬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후원하는 경우 리워드로 화보집과 뮤직비디오 크레딧에 명예 제작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인디 뮤지션의 크라우드 펀딩이 직접 만든 음악을 앨범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인 것과 달리, 아이돌 그룹의 크라우드 펀딩은 대부분 음악 산업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제작사가 진행하는 것이다. 자본을 투자해야 할 제작사가 팬에게 그 부담을 지운다고 볼 수도 있다. 

아이돌의 경우 오래전부터 팬덤이 사비를 들여 적극적인 홍보 및 지원 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크라우드 펀딩은 팬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직접적인 투자를 가능케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반면 팬은 기획사가 제작한 결과물을 통해 아이돌을 소비하고 응원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앨범을 제작해 활동을 선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책임지며 아이돌과 팬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기획사의 역할이다. 이 점에서 제작사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팬에게 제작의 어디까지 참여시키느냐는 제작사가 팬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팬들이 앨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 제작자라는 명목하에 경제력만을 제공하는 것은 앨범 활동에 대한 부담을 함께 분담해달라는 요청으로 보일 수도 있다. 반면 디엔터테인먼트파스칼 측은 “제작비에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해외 마케팅의 측면으로 진행했다”며 선을 그었다. 실제로 4,000만 원은 걸 그룹의 앨범을 제작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액수다. 팬들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스텔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참여한 팬들에게는 적당한 리워드를 준다면 팬들과 함께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최근 메이크스타에서 진행한 브라이언의 크라우드 펀딩은 팬들의 항의로 취소되기도 했다. 런치 미팅·디너 미팅 등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리워드를 후원 금액에 따라 다르게 구성한 것이 문제가 됐다. 상위 리워드를 모두 얻으려면 후원 금액을 다 따로 내야 하고, 이에 대해 아이돌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팬들의 마음을 이용해 더 많은 금액을 후원하게 만들려 한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있었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대부분 후원 금액에 따라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리워드가 전부 다르게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팬들이 더 많은 돈을 내도록 유도한다. 이런 경우 단순 홍보라기보다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얻는 리워드 자체가 상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애초에 창작자와 다수의 소비자들을 직접 연결해줌으로써 “기존 금융이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에 새로운 금융 통로로 구축”(도서 [크라우드 펀딩: 세상을 바꾸는 작은 돈의 힘])되며 만들어졌다. 반면 애초에 자본을 통해 시장에서 움직이는 기획사와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이 ‘기존 금융이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영역’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돌과 관련된 크라우드 펀딩은 기존 크라우드 펀딩과 팬의 응원, 기획사가 팬에게 제공하는 또 다른 상품의 개념이 섞여 있다. 

김재면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이 아직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에 조금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나 해외 팬들의 반응이나 여러 긍정적인 요소에 비춰 봤을 때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며, “진행하는 데 있어 어떤 자격이나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크라우드 펀딩은 팬덤이 좋아하는 가수를 지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안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기획사가 팬의 마음을 담보로 투자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수단에 그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아이돌 크라우드 펀딩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적어도 팬들 스스로 자조하듯 말하는 ‘팬은 감정이 있는 ATM’이라 부르는 또 하나의 예만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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