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지난 3년간 스스로를 상당히 많이 깨고 열었어요”

2016.03.23
3년 전 만난 이승원은 기회를 찾고 있었다. 커버였던 마리우스 연기를 무대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1년간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마무리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기보다는 [영웅]의 유동하나 [빨래]의 솔롱고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현실적인 고민을 먼저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후 드라큘라의 심복으로 피에 집착하는 렌필드([드라큘라])를 맡으며 가능성을 열었고, 경력도 인지도도 제각각이었던 열세 명의 오케스트라([오케피]) 안에서도 제법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나아갔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온 곳에서 탭에 빠진 북한군 포로 로기수를 만났다. 주변의 믿음은 그의 자격지심을 자신감으로 바꿔놓았고, 그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대 위에서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만난 이승원은 3년 전보다 더 크고 솔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커튼콜에서 너무 행복해 보이길래 좀 찡했어요. 이번 [로기수]에는 오디션이 아닌 김태형 연출가의 제안으로 출연하게 됐다면서요.
이승원
: ‘너 믿으니까 이거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되게 짜릿했어요. 오디뮤지컬컴퍼니랑 작업을 많이 했지만 대표님, 연출님, 음악감독님이 다 같아도 오디션은 봐야 했거든요. 물론 연출님의 제안이 연극 [모범생들] 오디션으로부터 이어진 거지만, 오디션을 [로기수]로 본 건 아니니까요.

2달 안에 수준급의 탭을 춰야 했는데, 탭은 배운 적 있어요?
이승원
: 2007년에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는데, 거기에 탭신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쉬운. 그 후 전혀 안 했다가 작년 말 [오케피]에서 탭을 춰야 했었어요. 저랑 더블이었던 (육)현욱이 형은 뮤지컬계에서도 알아주는, 몸을 참 잘 쓰는 배우였고 탭도 매우 수준급이라 ‘탭을 춰야 한다’는 디렉션이 오자마자 기가 막힌 라인이 착 나왔어요. 저는 기본 스텝부터 배워야 했고. [로기수]는 군무도 있고 탭을 알아간다는 설정이라도 있지만, [오케피]에서는 수준급의 탭 솔로를 해야 했거든요. [로기수]도 2달 걸렸는데 되겠어요. (웃음) 결국 저는 탭은 안 했지만, 2주간 배운 탭이 매우 도움이 되긴 했어요. 어떻게 보면 탭은 단순 동작의 반복인데 웬만한 사람들은 이 근육 자체를 쓸 일이 없어서 처음 배울 때 너무 너무 너무 아프거든요. [오케피] 덕분에 그 근육이 조금 생긴 거죠. 연습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말 그대로 기본 준비.

‘탭에 빠진 북한군 포로’라는 설정 때문인지 탭 외에도 사투리, 봉술, 깊은 감정의 연기까지 생각보다 배우에게 요구하는 테크닉이 많던데요?
이승원
: 탭만큼 걱정된 게 북한사투리였어요. 연습 초반에 사투리 선생님을 보는데 말이 되게 빠르시더라고요. 성격도 급하시고. 기본 말투나 말의 성격이 전투적이랄까? 그걸 캐치하다 보니 말이 빨라졌는데, 북한 사투리다 보니까 알아듣기 힘들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고치려고는 하는데 그 ‘전투적’인 게 제가 처음 접한 북한사투리의 강한 포인트여서 쉽지는 않네요. 그리고 선생님이 모든 뉘앙스를 가르쳐주시는 게 아니다 보니 연습하면서 바뀌는 감정들을 다른 뉘앙스로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다행히 연출님이 지금 사투리도 어색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고 제 감정대로 하라고 믿음을 주셨고, 억지로 연습하기보다는 ‘에라 모르겠다 막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한 게 더 도움이 됐어요.

‘에라 모르겠다 막 해보자’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이승원
: 그냥 대본에 있는 상황에만 집중했어요. 어떤 목표의식을 갖기엔 제가 [로기수]를 너무 모르기도 했고, 고민하는 것보다 제 몸을 써야 할 시간이 많았거든요. 내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형이 내 눈앞에서 삼촌을 칼로 죽인다, 저 조그마한 칼로 찌르면 피가 얼마나 날까, 삼촌이랑 나는 얼마나 친했을까, 피 묻은 형이 다가올 때 어떤 기분일까. 어머니가 나를 막아주다 총에 맞는 걸 본 순간 나는 어머니가 걱정됐을까, 내가 총에 맞을까 봐 더 수그렸을까 등등등. 모든 신을 그렇게 보기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제 색이 나오더라고요. 연출님도 저를 가둬두면 자꾸 갇힐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연습 초반부터 동선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셨어요. 아무래도 초연 버전 그대로 갔으면 이런 작업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여러 가지가 바뀐 상황이라 가능했던 것도 같고.

원래 이렇게 연기했던 건 아니었죠?
이승원
: 저 연기를 되게 안무처럼 했어요. 연습을 통해서 최고의 감정과 리듬을 찾고 그 느낌을 최대한 잃지 않고 기복 없이 하는 것. ‘관객에게 최고의 공연을 선보인다’는 가치관은 같아요. [레미제라블] 같은 라이선스 작품들은 워크숍에 오프에 온에 다른 나라로까지 가면서 수천 수백 번의 공연을 통해 ‘이 동선과 이 목표와 이 역할 수행이 최고’라는 걸 확정지은 거거든요. 그런 작품을 할 때는 최적화된 시스템을 몸에 빨리 익혀서 톱니바퀴처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은 제가 부족해서 제 속에 있는 충동을 들으려는 시도가 적어지니까 가끔 진실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가 있더라고요. 게다가 음이탈이라든가 가사, 안무, 대사 실수가 나오잖아요? 그럼 그 뒤부터 완전 멘붕이에요. 그런 실수를 안 하기 위해 택한 방식인데 실수가 나와버리니까 의미도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지금 작품에서는 가사도 엄청 틀리고 대사도 순간순간 틀리는데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요. 2년 전 [드라큘라]에서 렌필드 역을 맡으면서 순간의 충동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방식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변화가 왜 렌필드 때부터 시작됐어요?
이승원
: 렌필드였으니까요. 렌필드가 정신병원에 구금되어 있기도 하니까 관객에게는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전 미친놈을 연기한 건 아니거든요. 렌필드한테는 ‘피에 집착한다’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어요. 완전 자유로웠죠. ‘상황에 집중해야지, 새롭게 해야지’가 아니라 애초에 그 캐릭터가 자유도와 함께 떨어진 거예요. 전에 했던 것처럼 하면 할수록 연기가 안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피만 생각해볼까?’ 했더니 예전에는 못 느꼈던 피비린내, 피의 점성, 이에 낀 동물 털 같은 게 느껴지는 거예요. 오! 너무 새로운 경험. 그 감정을 느끼고 나니까 너무 재밌었죠. 렌필드는 저에게 전환점을 줬어요.

비슷한 것들이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작품은 장르도 캐릭터의 성격도 다른 [드림걸즈]였잖아요. 많이 아쉬워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승원
: 공연이 다 끝나고서야 알았어요. [드림걸즈]는 일종의 장르물인데 내가 그걸 장르물로 이해하지 않고 연기했구나. 예를 들면 팝을 불러야 하는데 판소리 창법을 배웠다고 한을 못 버리고 팝을 불렀구나. 갇혀 있었던 거죠. 어떤 뮤지컬, 어떤 연극, 어떤 영화를 하든 모든 걸 관통하는 건 진심이야! 자유도를 이제 갓 느껴본 배우의 착각이었어요. 템포와 리듬이 중요한 작품도 있고 극 전체의 호흡을 위해서 관객을 웃길 신도 필요한데, 전 그 전체를 보지 못하고 ‘씨씨가 누구인가! 내가 씨씨라면!’ 이러고 있었죠. 무난했으나, 혼자 결이 다른 연기를 했던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그야말로 깨지면서 배우고 있네요. (웃음)
이승원
: [드림걸즈] 끝나고 시야에서 지원해주는 해외프로그램으로 뉴욕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요. 뉴욕 가기 전에도 오해를 좀 했어요. 뮤지컬이라는 장르, 거기서도 브로드웨이라고 하면 ‘쇼뮤지컬의 본고장’이라고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가보니까 우리나라보다 훨씬 실험적이고 연극적인 작품도 많았던 거죠.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엔드 뮤지컬 이런 게 있는 게 아니고 똑같이 진심으로 연기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완성된 진심’이 있는 거였어요. 진심은 당연한 거고 연기의 본질이니까 그건 놓고, 작품의 장르와 연출, 배우들과의 호흡 이런 것들을 배우기 시작한 거죠. 제가 그동안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 거였어요. 그게 작년 여름이었으니까. 14년 렌필드, 15년 뉴욕, 그리고 [오케피]까지. 최근 3년은 꿀 같은 영양분들이 오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정리도 많이 됐고.

기수에게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세상 모든 게 리듬이고 춤”이라고 말한 프랜이 떠오르는 변화네요.
이승원
: 3년 전에는 진짜 불만투성이였어요. 자격지심 같은 게 있어서 그랬는지 스태프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 못 해주면 내가 아직 안 유명해서, 저 사람이 날 얕잡아봐서 그런 거라는 생각에 틱틱대는 거죠. 그럼 그분들은 ‘얘 왜 이래?’ 이렇게 되고. 사실 단 한 명의 스태프도 어떤 배우를 얕잡아 보거나 나쁘게 하려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실수가 생기면 본인들의 일이기도 하니까 본인들이 더 속상하지 내가 안 유명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죠. 딱 관점 차이인데 감사하게 보면 다 감사하더라고요. 어디서 궁시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웃음) 지금은 감사한 거 투성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극후반으로 갈수록 기수의 성장이 배우 이승원의 성장처럼 보였어요.
이승원
: 사실 처음에는 로기수라는 친구를 내가 어떻게 알아야지?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저랑 닮은 구석이 많더라고요. 제가 잡은 기수는 변화가 포인트예요.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아이가 탭을 만난 후 사람들한테 먼저 말을 걸고 웃고 춤을 춰요. 저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고 어렸을 때는 가정환경도 좋지 않고 체격도 작아서 잘 웃지도 않았거든요. 연기하면서 성격이 진짜 많이 유해졌어요. 사실 [로기수] 자체가 배우들한테도 되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북한 사상을 가진 친구가 미국 춤을 배우는 거나 먹고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배우라는 불투명한 직업을 쫓아가는 거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결국 둘 다 미친 짓이거든요. 근데 ‘당부’의 “꿈을 버리면 너도 없다. 절대 포기하지 마 꿈꾸며 살아”라는 가사가 저한테 하는 울림 같아서 연습할 때도 되게 묘했어요.

3년 전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꿈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얘기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이승원
: 그냥 더 발전하고 싶어요. 계속 현미경처럼 한 곳만 보고 있었는데 저 스스로를 상당히 많이 깨고 열었어요. 이런 작업들이 더 재밌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느끼면서 매일 공연했기 때문에 2~3년 안에 많이 변할 수 있었던 거지, [드림걸즈] 끝나고 다음 작품까지 한참 걸렸으면 더뎠을 거예요. 영양분을 많이 받으면서 작품도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인 동시에 되게 연극적인 일본 작품, 소극장 창작뮤지컬. 캐릭터들 성격도 다 달랐고.

결국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네요.
이승원
: 예전에 선배님들이 해주신 말씀 중에 “배우는 평생 배워야 한다”, “배우는 기다려야 한다” 같은 말은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대신 이제는 “힘을 뺄수록 좋은 연기다”, “감정을 온전히 보인다고 좋은 연기가 아니다” 같은 말들이 머리로는 알겠는데 완벽히 체득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배우고 또 배워서 연기의 또 다른 면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동안 정답인 줄 알았던 것이 정답이 아니었듯이. 바람이 있다면 안 쉬었으면 좋겠어요. 20대 때 많이 쉬었으니까. 제가 잔 시간들만 생각해봤거든요. 8시간만 자도 하루에 1/3을 자는 건데, 1/2는 잔 것 같아요. 너무 20대를 술과 잠으로만 보내지 않았나. (웃음) 다음 날 아무 일도 없는데 혼자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산책하고 책 보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이 기질도 20대에 알게 됐으니까 30대 남은 기간 동안에는 ‘열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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