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공감 토크에 공감하기 어렵다

2016.03.21
요즘 김제동의 장르는 토크쇼도, 버라이어티도, 코미디도 아닌, 공감이다. 지난해 5월부터 방영 중인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이하 톡투유])에서 그는 방청객들의 고민을 하나하나 경청하고, 함께 웃거나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함께 이겨내자고 한다. 여기서 언변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김제동은 [시사IN] 주진우 기자와 함께 한 팟캐스트 [제동이와 진우의 애국소년단](이하 [애국소년단])에서 공감에 대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능력”이라 말한 바 있다. 그가 어떤 사연이 나와도 물 흐르듯 말을 받고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건 이러한 능력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 김제동은 공감의 힘을 너무 과신하다가 정작 상대방의 고민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가령 지난 3월 6일 방송에서 남자들만 있는 회사에 다니느라 자신에 대한 호의조차 차별은 아닌지 신경이 쓰인다는 여성 방청객의 사연에 대해, 그는 황정민, 강동원, 소지섭 등과 술을 먹으며 괜히 신경 쓰이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로선 사연에 공감하기 위해 자신이 겪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린 것일지 모르지만, 여성 경력 단절이 빈번한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가 느끼는 불안감과 잘생긴 사람들 사이에 섞인 김제동의 자격지심은 같거나 비슷하지 않다. 그에 앞서 “남녀 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이것은 명백한 남녀 간의 문제다. 다른 회차에서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한 윗세대의 마음을 이야기하던 그는 “세대 갈등 같은 말에 넘어가지 말고 함께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자고도 말한다. 다른 세대가 소통하기 위해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는 건 분명 공감의 영역이다. 하지만 동시대 세대 갈등의 핵심은 정서적 균열이 아닌 권력과 부동산의 불균형이다. 즉 공감과 마음가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진행에서 김제동이 SBS [힐링캠프]에서 스승이라 칭했던 멘토 법륜 스님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법륜 스님은 김제동에게 조언의 방법을 가르치며, 버는 것에 비해 생활비를 적게 주는 남편에게 불만을 느끼던 여성에게 생활비를 주고도 많은 돈이 남는 남편을 둔 걸로 생각하라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김제동보단 덜 친절하지만 해당 문제의 사회적 맥락이나 관계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대신 마음가짐의 문제로 치환하고 화해를 도모한다는 점에선 흡사하다. 미움의 대상을 이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무의미한 건 아니다. 다만 시시비비와 책임의 영역은 그것대로 남겨두고, 우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차원에서만 그러하다. 이 둘을 뭉뚱그리면 자칫 고민과 상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개인의 책임으로 넘어간다.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연대하자는 김제동의 훌륭한 기획은 근본적인 딜레마를 품고 있다.

[톡투유]의 모델인 공연 [김제동 토크콘서트-노브레이크](이하 [노브레이크])에서 관객 사연을 받는 보드에는 “제동이에게 다 이르세요, 무조건 당신 편 돼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조건 편이 되어줄 수 있을진 모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 한 사람 한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서는 황희 정승 같은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톡투유]에서 피트니스 클럽 아르바이트 중 관장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았다는 학생에게 “그 정도 부탁할 수 있을 만큼 관장이 너를 믿은 게 아니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심지어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헬조선’ 담론에 대해서도 “왠지 친구 집이 자기 집보다 좋아 보인다”며 다시 한 번 문제를 마음가짐의 영역으로 축소한 뒤 “대한민국이라는 긍정적인 기반 위에서 개선책을 찾아가자”며 너무 쉽게 화해를 시도한다. 방청객끼리의 교감과 김제동의 진정성 있는 화법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강요된 화해다.

김제동의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 그리고 화해의 제스처에 그럼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경청과 공감은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봉합해주는 해결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소통과 논쟁을 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확인하는 선행 작업이다. “마이크를 청중에게 주는 것은 권력을 청중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민주주의가 별건가? 발언권을 나눠 주는 것”([시사IN])이라는 김제동의 말은 옳다. 다만 민주주의는 그 각각의 발언이 더 나은 결론을 위해 능동적으로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으로 완성된다. 남성의 기득권에 대한 여성의 불만이, 윗세대의 부동산에 대한 젊은이들의 상실감이, ‘헬조선’에 대한 정직한 절망이 충분히 이야기되고서야 비로소 강요되지 않은 진짜 화해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톡투유]의 평화롭고 따뜻한 토크와는 거리가 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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