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고아라·류현진의 행장님이 허락한 힙합

2016.03.17
Mnet [쇼 미 더 머니]의 영향인가? 작년 류현진 NH농협카드에 이어 고아라 우체국 체크카드, 유재석 우리은행 위비까지. 힙합 ‘사랑’이라고 보기엔 ‘사태’에 가까운 금융권 CF들이 전파를 타고 있다. 아무리 ‘머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렇지 금융권에서 왜 이런 ‘셀프디스’에 가까운 힙합광고가 선호되는 걸까?

광고에 등장하는 ‘힙합리듬에 랩’은 낯설지 않다. 영타깃을 겨냥하거나 음료·과자 같은 관여도 낮은 제품들에 심심찮게 써왔던 방식이다. 하지만 고급 가전제품·자동차 등의 고관여 제품 광고에선 금기에 가깝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권에서도 마찬가지. 현대카드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CEO의 감식안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현대카드의 경우, 앵무새에게 ‘옆길로새’ 랩을 시키면서 크리에이티브를 확보했지만 NH농협카드, 우체국카드, 우리은행 광고들은 그렇지 못하다. 래퍼가 아닌 빅모델에게 랩을 시키다 보니 완성도가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이 힙합/랩이라는 떡밥을 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랩은 15초건 30초건 처음부터 끝까지 떠들 수 있다. 즉 많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 새로 출시되는 상품처럼 이것저것 할 얘기가 많은 경우, 랩이란 형식은 광고주들에게 무척이나 달콤한 유혹이다. 둘째, 힙합이 주는 ‘젊은 느낌’ 때문이다. 이제는 대중화되어 은행장님들에도 낯설지 않은 힙합. 어쩐지 이걸 활용하면 ‘우리 제품이 젊어 보일 것 같고,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로 이걸 집는 나도 젊은 감각이다’까지 이어지는 판단이 후한 점수를 주게 만든다. 셋째, 보고체계가 복잡하다. 최종결정권자에게 도달하기까지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중요한 프로젝트일수록 관심 갖는 사람의 수는 늘어난다. ‘오늘도 무사히’가 택시기사님들만의 기도가 아니다. 광고/마케팅 실무담당자에겐 좋은 캠페인을 온에어시키는 것보다 각 단계마다 무사히 넘어가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새롭되 너무 새롭지 않은 랩은 ‘개념녀’ 노릇을 한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처럼 ‘기특하지만 안전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진다. 보고하는 쪽에서도 보고받는 쪽에서도.

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힙합/랩이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그것도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사랑받는 기이한 현상은 이렇게 설명 가능하다. 참고로 몇 년 전 뮤지컬 형식의 ‘송(Song)광고’가 금융권을 휩쓸었던 데에는 하이마트 광고의 영향이 컸다. 핵심은 광고가 제작되기까지 ‘의사결정과정의 보수화’다. 위기가 일상이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광고에서도 위험부담을 줄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대중이 좋아하는 광고보다 ‘그분’이 좋아하는 광고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단 얘기다. 이 일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보다 보수화의 정도가 더 심해졌다. 크리에이티브가 안전을 지향하면 결과물은 퇴보한다. ‘오~!’ 소리가 나올 만한 광고를 TV에서 못 본 지 오래다. (대신 ‘악!’ 소리 나는 국가 ‘선전’을 영화관에서 보고 있다.)

또 하나, 기업 조직이 보수화되는 것처럼 광고대행사의 고령화도 함께 진행 중이다. 신입사원 채용이 줄어들면서 대행사 내부의 평균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 광고를 중년의 남자가 담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혁신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내 자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성향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광고주에게 대차게 대들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질 뿐이다. 한쪽에선 ‘쉽고 재미있는 것’을 무조건 ‘센 것, 자극적인 것’으로 이해한 ‘일베’스러운 광고가 나오고, 또 한쪽에선 ‘진짜 젊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이 생각하는 젊음’을 담은 ‘아재’스러운 광고가 나오고 있다. 지금 시대의 트렌드가 ‘퇴행’이라고 하면 광고가 트렌드를 끌어가는 건 맞는 것 같다.

김진아(광고플래너)
이노션 월드와이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골목아이디어앤필름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Jinakim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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