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라는 이름의 환자

2016.03.14
풍경 하나. 지난 2월 23일,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43년 만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었지만 당일 KBS [뉴스9]은 무제한 토론이 시작된다는 것과 테러방지법의 효용에 대해 소개할 뿐, 정작 야당에서 제기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다음 날에는 KBS뉴스 트위터 계정을 통해 “국가안보 국민안전에 한목소리 내도 부족할 때 우린 뭘 하고 있는 걸까요?”라며 직접적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풍경 둘. 2월 24일, KBS는 자사 보도 내용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정홍규 기자와 KBS 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 김준범 기자에게 각각 감봉 6개월 및 견책 징계를 내렸다. 풍경 셋. 지난 3월 2일 KBS 내부 소식통들을 통해 소위 ‘일베 기자’로 불리던 일간 베스트 저장소 헤비유저 출신 기자가 입사 1년 만에 보도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외부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말부터 한 달 이내에 벌어진 이 세 가지 사건은 개별적으로도 문제적이지만, 현재 공영방송 KBS라는 조직이 앓고 있는 병이 세 가지 증상으로 드러난 것에 가깝다.

“고대영 사장 취임 이후로 공영방송 장악의 역사가 2기로 바뀐 것 같다.” KBS 보도국에서 2015년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긴 심인보 기자의 평가다. 현재 KBS 보도국 내부에 있는 기자 A 역시 “보도국 간부 중 고대영 사장을 따르는 사람이 많다. 조대현, 길환영 전 사장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 사장이 보도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 사장들과 달리, 고대영 사장은 보도본부 보도총괄팀장부터 보도본부 본부장까지, 보도국이 포함된 보도본부 간부로서 보도국 내 영향력을 쌓아온 케이스다. 본부장 시절 공정방송 약속 미이행을 이유로 KBS 기자협회에서 협회원 제명 투표를 벌이자 스스로 기자협회에서 탈퇴한 전력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KBS 사장 임명권을 면직권이 포함된 임면권으로 해석하고 정연주 전 사장을 해임한 뒤부터 꾸준히 정권의 눈치를 보던 KBS의 태도가 최근 더 노골적으로 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물론 사장이 자신의 면직권을 쥔 청와대의 눈치를 본다고 KBS라는 거대한 조직이 통째로 대통령의 소유가 되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임면권으로 바꿨던 것이 외부압력으로부터 KBS를 지키는 방어선이었다면,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언론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이하 공방위)와 보도본부의 보도위원회는 내부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로 작동해왔다. 앞서의 정홍규·김준범 기자에 대한 징계가 단순히 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건 그래서다. “예전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노조의 공방위는 사측에서도 부담스러워하던 장치였고, 백 퍼센트 반영은 안 될지언정 치열한 토론을 통해 약간의 개선을 이뤄낼 수 있었는데 이젠 공방위 간사가 보도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자 징계를 내린다.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라는 심인보 기자의 말은 외부에 대한 방어선에 이어 KBS 조직 내부의 방어선까지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A에 따르면 “보도국 내 정치부 구성원 중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을 다 내보내고, 사측에 우호적인 KBS노동조합 인원들로 채우고 있다.” ‘일베 기자’의 보도국 복귀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2014년엔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인 길환영 전 사장에 대해 KBS 양대 노조가 파업으로 퇴임을 요구하고 또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 힘의 공백을 틈타 잠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강도 높은 검증을 하며 공영방송으로서의 날카로움을 잠시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간부들이 기자협회에서 제시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거부해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젠 최소한의 내부 저항 동력마저 뺏겼다. 사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윤리성과는 별개로, 건전한 내부 토론과 갈등은 언론의 균형감각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자정 장치 없는 정수기에서 맑은 물이 나오길 기대할 수는 없다. 앞서의 필리버스터 관련 보도에서 [뉴스9]은 “국회가 이렇게 중요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질질 끄는 건 안건 상정 조건을 까다롭게 만든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며 입법부의 권한을 부정하는 수준의 멘트를 하는 것은 물론,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북한과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 없이 노골적으로 ‘사드, 선택 아닌 필수’라는 타이틀로 정부의 입을 대신했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닌 공정성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듯, 이 조직이 앓고 있는 병의 한 증세다.

과연 KBS라는 환자는 나아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현재 KBS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건 쉽다. 정부의 정책에 검증적인 태도를 취하는 JTBC로 채널을 돌리거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 언론의 보도에 귀를 기울이면서 KBS를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정권 친화적인 종합편성채널과 같은 부류로 분류해 외면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공영방송에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보수적 종합편성채널이 쥔 정치 담론의 헤게모니에 균열을 낼 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면, 여전히 KBS의 역할은 유효하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이 병이 너무나 깊어 언제 나을지 알 수 없지만, 대중의 관심과 감시가 끊긴다면 재기 불능으로 면역 체계가 파괴될 병이라는 것만이 확실하다. 그러니 우선은 이 병의 실체를, 그 원인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대중이 이 환자를 포기할 때 가장 신날 사람이 누구인지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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