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필석x이한밀 작곡가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수 있다면 좋겠어요”

2016.03.09
누구에게나 유난히 도드라지는 것들이 있다. 강필석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캐릭터의 처연함을 극대화하는 배우이고, 성악을 공부했던 이한밀 작곡가는 노래를 부르고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중견배우와 스스로를 “강필석 키즈”라고 부르는 신인 창작자는 뮤지컬 [아랑가]에서 처음 만났다. 욕망으로 파멸해가는 백제의 개로왕 이야기는 판소리와 양악이 뿜어내는 독특한 비애로 이어졌고, 여기에 강필석의 처연한 목소리와 연기가 얹히자 관객의 마음이 움직였다. ‘윈윈’이라는 단어의 실체는 두 사람을 통해 구체성을 띠었고, 배우와 음악감독으로, 선배와 후배로, 또다시 배우와 배우로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에게는 어떤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했다.
 

두 분은 이번 [아랑가]에서 처음 만났죠?
이한밀
: 이건 뻥 아니고 진짜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때나 본공연 때나 (강)필석이 형은 캐스팅 리스트에 제일 먼저 이름이 나온 배우였어요.
필석: 거짓말하지 마요. 제가 이번에 엄~청 괴롭혔거든요. 어떨 때는 음악감독님! 어떨 때는 한밀아! 이러면서. (웃음)
한밀: 원래도 팬이었거든요. 여러 작품을 보면서 개로에 정말 싱크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형은 가슴을 후벼 파는 처연함 같은 걸 워낙 잘 표현해주니까요.

작곡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로 처연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는데, 개로는 기존의 캐릭터들과 어떻게 다른가요.
강필석
: 더 드라마틱하죠. 예전에는 단추가 열려도 바로 잠그고 어떻게든 이성을 찾으려 했다면 개로는 열리는 순간 끝까지 밀어붙여요. 연습 과정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개로는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한 사람이거든요. 소심하거나 어떤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은 누구보다 복잡할 거예요. 게다가 이야기가 많이 축약되어 있고 감정들이 커서 공황상태를 유지해야 설득력이 생기는 캐릭터라 공연 초반에는 물리적으로도 멘탈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전에 어떤 관객이 과호흡증 걸린 줄 알았다고, (웃음) 그러다 쓰러지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까지 하더라고요.

[아랑가]는 열녀 도미부인 설화에서 시작됐는데 거기서 왜 개로라는 인물을 주목했나요?
이한밀
: 도미와 도미부인 아랑의 사랑이야기로 풀었다면 작품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온도로 나왔을 거예요. 김가람 작가가 죽음과 관련된 소재를 되게 좋아해요. 본인이 니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실 저희 둘은 오랫동안 절친하게 지냈음에도 근본적인 세계관이 완전 다르거든요. 그런데 저도 개로 이야기에 공감했던 것 같아요. 우리 작품은 한 인간이 욕망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게 결국 우리의 생이고 그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려면 개로라는 인물에 더 포커싱을 맞춰야 했어요.

음악적으로는 판소리와 한국적 선율이 서양음악과 공존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오랫동안 음악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국악은 익숙했나요?
이한밀
: 필석이 형은 학교 다닐 때 장구를 끼고 살았다고 하던데 저는 없었거든요. 소위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대중음악작곡가를 위한 국악 아카데미를 수강하기도 하면서 우리 소리가 무엇이냐부터 찾아갔어요. 다만 어릴 때부터 국악적인 소스를 가지고 퓨전 내지는 월드뮤직을 하시는 몇몇 뮤지션들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양방언이라든지 이번에 제가 사사했던 류형선 선생님 같은. 작업을 하면서 단순히 국악기를 사용한다가 아니라 선율적인 부분까지 알게 되었고, 작품 초기부터 도창 역의 박인혜 배우가 작창을 담당하면서 함께 밸런스 맞춰 가는 것을 가장 많이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장구를 하신 줄 몰랐어요.
강필석
: 저도 어렸을 때 되게 싫어했었어요. 한국적인 것 지루해. 근데 학교에서 배워야 되는 수업이 있었어요. 흥미가 없으면 배워지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6개월 정도는 거의 뭐 열등생이었죠. 그러다 비오는 날 북을 그냥 치고 있는데 그 북소리가 너~무 좋게 다가오는 거예요. 가슴이 막 두근두근 뛰고. 그때부터 정말 한 1년 반을 연기 안 하고 사물놀이만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 실습 때마다 장구 들고 가서 중간에 멈추고 치고 이래서 연기 파트너가 울면서 나가고. (웃음) 사물놀이를 하면서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머리가 다 서고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한국적인 것이 굉장하구나. 판소리도 그래요. 사실 초반에는 왜 저렇게 목 아프게 노래하지 싶었는데, 노래를 한참 공부하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쓰는 이 발성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사실 우리나라 말에 잘 맞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죠.

저도 ‘우리 가요 part A’가 리듬 때문에 굉장히 신나더라고요.
강필석
: 한국 사람인 거예요. (웃음)
이한밀: ‘우리 가요 part A’는 세마치장단으로 썼거든요. 덩덩덕쿵덕. 근데 국악 전공 연주자들이 듣더니 “이거 세마치 아닌데?” 이러는 거예요. 제 속에서는 그게 분명 세마치였거든요. (웃음) 그럼 이건 뭐냐고 했더니 그건 제 안에 있는 제 그루브래요. 그래도 세마치로 쳐주세요 그랬죠. 제가 국악을 깊게 공부한 게 아니라서 국악인들이 보기에는 짝퉁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연주자들이 열려 있어서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제가 쓴 대로 가보자 해주셨어요. 그런데 감사한 건 아직은 대중들과 저의 수준이 비슷하다 보니 (웃음) 굉장히 좋다! 이렇게 되더라고요.

한국적 선율과 뮤지컬적 선율을 모두 쓰면서 악기도 굉장히 다양하게 쓰고 있죠?
이한밀
: 지금 같이하고 있는 연주자들은 지난번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할 때 만났는데요. 타악기 주자가 한 스무여 가지를, 관악기 주자도 십여 개를 불고, 베이스도 콘트라 베이스랑 일렉 베이스를 번갈아가면서 연주해요. 기본적으로는 음향 이펙터를 쓰지 않고 악기군으로 모든 효과를 채우고 싶었던 게 있어요. 특히 타악기는 무궁무진한 표현을 줄 수 있어서 상당히 매력적인데, 같이 하고 있는 타악기 연주자 분은 국악을 전공하셨는데도 서양악기도 다루세요. 디렉터 입장에서 타악기의 경우엔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군침이 돌죠. (웃음)

동양의 악기들은 좀 더 비애가 느껴지는 편인데 개로가 고뇌하는 인물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더라고요. 음악감독으로서는 배우들에게 어떤 걸 주문하셨나요.
이한밀
: 결국 뮤지컬은 노래연기잖아요. 음악을 하다 연극을 공부하면서 딜레마에 많이 빠졌어요. 기술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배우들이 ‘거짓말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노래의 기능적인 부분이 조금은 축소되더라도 정서나 캐릭터에 훨씬 더 집중하셨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드렸고, 그런 부분에서 분명히 불편한 부분들도 있으셨을 거예요. 개로는 처음부터 노래가 너무 커서 너무 많은 것을 확 도드라지게 드러내야 하거든요.
강필: 개로가 5~6곡 정도를 하는데 특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는 정말 노래를 하면서 울어요. 음은 내고 있는데 호흡은 사실 우는 호흡이라 그 곡을 부를 때 뭔가가 확확 올라와요. 한밀 감독이 정서에 대한 얘기를 했지만, 그건 두 번째 단계인 것 같아요. 테크닉이 되어야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자기 호흡을 실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제가 계속 틀리는 음정이 하나 있어요. (웃음) 연습할 때는 괜찮은데 공연장만 들어가면 음정보다는 감정에 맞춰 가니까 또 다른 음정으로 가고.

작곡가님의 경우 지금은 작곡가와 음악감독의 롤을 하고 있지만, 작년에 뮤지컬 [무한동력]에 배우로도 출연하셨잖아요. 롤체인지가 각 영역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이한밀
: 많이 배우죠. (김)태한이 형 같은 경우는 저랑 [무한동력]에서 같은 배역을 했었는데 연기 스승처럼 소스도 많이 주시고, 그래서 사실 이번에 제가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어요. 필석이 형 같은 경우는 한참 선배님이시고. 어떻게 보면 저는 강필석 키드거든요.
필석: 말도 안 돼. 왜 이러세요. 같은 연배잖아요. (웃음)
한밀: 이건 되게 부끄러운 얘긴데, 작년 7~8월에 [아랑가] 예그린 어워드랑 [무한동력] 연습을 동시에 했던 때가 있었어요. 오전 10시에 [아랑가] 연습하면서 배우들한테 “이거 틀렸어요” 이런 디렉션 주다가, 오후에는 [무한동력] 연습실에서 “너 그거 아니야, 이렇게 해야지”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자존감이 아주 바닥으로 떨어졌죠. 배우에게 요하는 건 전혀 다른 기질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필석: 제가 이 작품 전에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했는데, 신춘수 대표님이 연출이셨잖아요. 근데 대표님은 영화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했단 말이죠.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옛날에는 배우들한테 “진정성 있게 연기해야지”라는 말을 했는데 자기가 연기를 해보니 그런 얘기는 절대 못하겠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제는 배우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하더라고요.
한밀: 그런 게 분명히 있어요, 역지사지가 되니까. 분야가 다르니 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줘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제가 겪어봤으니 이건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 같은 것도 생기고.
필석: 그건 되게 좋은 것 같애. 좋은 경험이야. 재작년에 영화를 찍을 게 있어서 카메라감독을 위한 카메라 연기 디렉팅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감독이 배우에게 “섹시하게 연기해주세요”라고 디렉션을 준단 말이에요. 그러면 배우는 “섹시함이요?” 하면서 엉뚱한 걸 해버리는 거예요. 근데 옆에 있는 여자 입술에 김이 붙어 있는데 그걸 몰래 떼어준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보라는 전혀 다른 디렉션을 줬어요. 그랬더니 이 배우가 갑자기 확 섹시해지는 거죠. 장면을 찍어서 봤는데 대사는 하고 있어도 이 행동을 몰래 해야 하니까 눈빛이나 행동이 뭔가 계속 바뀌면서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섹시함은 관객이 느끼는 거예요. 배우는 그냥 상황에만 집중하는 거죠. 물론 이건 영화에서만 통용되는 방법이지만.

하나만으로도 버겁다, 라고 생각할 때는 없었나요?
이한밀
: 연기를 하고 싶어서 대학을 늦게 들어갔고, 작년 3월에는 대학원에도 갔거든요. [아랑가]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준비를 가장 밀도 있게 하던 때라 사실 연기를 아예 놓으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이지나 선생님 연기 수업을 들어가야 했는데 독백이든 뭐든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걸 가져와라 하셔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첫 장면이랑 ‘나비’를 이어서 했어요. 끝나고 나서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음악을 계속 한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고 계속 공연할 수 있을 건데 부모님이 너에게 주신 좋은 것들이 있다. 나 같은 연출 만나면 엄청 욕먹고 혼나가면서 작업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네가 계속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제 대한민국에 너 같은 애 하나 나올 때쯤 됐어.” 보통 덩치가 크면 우둔하고 미련하고 멍청한 캐릭터인데,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서 덩치가 있어도 지적인 캐릭터를 가질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예를 들어주신 게 로빈 윌리엄스였어요. 그런 캐릭터를 갖는다면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마치 승인받은 느낌이었어요. 그날 수업 녹음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배우 선배로 봤을 때 배우 이한밀은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까요?
강필석
: 배우로 만나서 같이 연기를 주고받지를 않아서 어떤 호흡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있어요. 그런데 일단 기본적으로 하드웨어가 너무 좋고, 음악 하는 사람의 섬세함도 있으니 감성은 당연히 있을 거예요. 보기와 다르게 되게 재밌고. (웃음) 먹을 걸 너무 좋아해서 귀여워요. 음식을 좋아한다는 건 대단히 좋은 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한밀: 음식이랑 잠은 어렸을 때부터 걱정거리는 아니었어요. 너무 자서 전철역을 진짜 많이 놓쳤어요. 서서도 자고. 정신을 어떻게 놓으면 그럴 수 있냐 할 정도로.

곧 배우로도 다시 만나게 되겠네요. 마지막으로 [아랑가]를 보고 관객들이 어떤 걸 가져가면 좋을까요?
강필석
: 극이라는 거 자체가 결국 한 권의 책을 드리는 거거든요. 에필로그랑 프롤로그 때 ‘시간이 무엇이냐 인생이 무엇이냐’라는 대사가 나와요. 모든 극이 모든 인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냥 인생이라는 걸 느끼고 가시면 좋겠어요.
한밀: 이야기는 정해져 있는 거니까 받아들이시는 입장에서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 좋겠죠. 그러니까 많이 오시면… 예매는 인터파크에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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