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페미니스트 북클럽

2016.03.08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우에노 지즈코의 [여자들의 사상],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속속 번역되거나 출간되고, 관련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끊이지 않는 중이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아이즈]에서도 엠마 왓슨의 ‘Our Shared Shelf’ 같은 페미니스트 북클럽을 제안한다. 총 일곱 명의 여성 필자들이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을 추천했다. 이 일곱 권의 책들, 그리고 또 다른 페미니즘 서적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과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지음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굿즈를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작년 봄, 이따금씩 프로젝트를 비난하는 글을 보곤 했다. 비난의 언어는 꽤 다양했는데 그중 ‘그 슬로건이 그 뜻이 아니다’라는 설명은 특히 흥미로웠다. 연원을 전혀 모른 채로 자신이 가진 지식에 근거해 영어 단어를 풀어 슬로건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어리둥절해 있을 때, 바로 이 표현을 알게 됐다. ‘맨스플레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널리 퍼진 이 신조어는 그 동안의 많은 일을 한 단어로 명쾌하게 요약해주었다. 이 책은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맨스플레인과 같은 일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고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에 이르게 되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들어 알려준다. 나로서는 이 책의 첫 챕터를 읽으며 프로젝트를 비난하는 댓글 중 하나가 ‘가방 든 년들 밤 길 조심해라’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으로 하여금 말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설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지 큰 그림을 보고 싶다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한다.
글. 윤이나(칼럼니스트)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지음
버지니아 울프는 1929년 [자기만의 방]에서 한 세기가 지난 뒤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제적 안정과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2016년이 된 지금 그 예상은 맞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에게 자신을 얽매는 내적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외부의 비난과 조롱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정신을 갖기를 촉구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여전히 너무나도 가깝게 와 닿는다. 고독하게 내면으로만 침잠하다가 자살해버린 연약한 작가라는 이미지에 속지 말자. 그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남성들과 대등하게 교류했으며 동시에 그들에게 맞서 자신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평생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분노로 비뚤어지지 않은 순수한 정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이에 도달하기까지 여성들 앞에 산재한 장애물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아한 문체로 매끈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이 에세이는 결코 온화하지 않다. [자기만의 방]은 20세기가 낳은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써내려간 명백한 페미니즘 선전문이자 행동 강령이다. 당연히 심장이 뛸 수밖에. 그러니 낮에 읽기를 권한다. 잠자리에 누워 펼쳤다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될 테니.
글. 와조

[배고픔의 자서전] /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정제되지 않은 여자아이의 욕망을 관찰할 기회는 의외로 드물고, 그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설탕, 물, 술, 소설, 아름다움, 사랑 등 수많은 대상을 향한 “배고픔”의 궤적을 따라 진행되는 이 자전적 소설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국가를 오가며 자란 어린 아멜리가 나르시시즘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의 삶과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른들의 파티에서 남은 샴페인을 몰래 먹다가 유아 알콜중독자가 되고, 생각의 힘만으로 동급생을 죽이는 자신의 전능함에 의기양양해하고, 스페퀼로 과자의 쾌락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음미하는 어린 아멜리의 욕망은 그리 윤리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녀의 성장기는 보람찬 발전의 역사이기보다 무검열의 욕망 추구가 가능했던 어린 시절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쇠망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 같은 묘한 슬픔을 준다. 검열되지 않은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좇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린 아멜리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어나가면서 우리 각자의 삶을 형성해온 다양한 형태의 “배고픔”들이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글. 김경은(‘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 운영자)

[벨벳 애무하기] / 세라 워터스 지음

석판과 분필 조각보다 굴 칼을 먼저 쥐고 사용법을 배운 생선장수의 딸, 예쁘지 않은 얼굴과 비쩍 마른 몸을 지닌 소녀. [끌림]과 [핑거 스미스] 등을 쓴 세라 워터스의 [벨벳 애무하기]는 19세기, 노동계급의 평범한 여자아이 낸시가 레즈비언이라는 성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는 남장여자 배우인 키티 버틀러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가족에게서 독립해 함께 떠나기도 하고, 키티가 “우리는 ‘톰(레즈비언을 일컫는 말)’과 다르다”고 성정체성을 애써 부정할 때도 “전 이게, 우리가 하는 게 그르지 않다는 걸 알아요. 세상이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할 뿐이에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키티로부터 상처받고 몸을 팔며 겨우 연명하기도 하지만, 결국 낸시가 새 연인 플로렌스를 만나 여성운동과 노동운동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책의 결말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고, 연대함으로써 다른 여성의 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폭행당하거나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도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던 시대, 낸시의 성장기는 한 명의 여성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는 방법에 관한 보고서처럼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역시 유효할.
글. 황효진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 패니 플래그 지음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영화를 감상했던 초등학생 시절 이후 십수 년 동안, 나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불행한 사고로 연인/오빠를 잃은 두 여자의 우정과 ‘자매애’에 대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은 레즈비언 작가가 쓴 레즈비언 커플의 로맨스와 가족, 그들이 이루었던 아름다운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또 다른 두 여자의 우정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착한 여자’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지만 바로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고 비참한 나날을 보내던 40대 주부 에블린은 노인요양원에서 우연히 만난 80대 할머니 니니로부터 두 여자, 이지와 루스의 삶에 대해 듣게 된다. 1920년대 남부 앨라배마 주의 작은 마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지켰는지, 인종차별이 극심하고 대공황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에 어떻게 그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는지, 동성애라는 개념조차 알고 있지 못했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했는지. 과거와 현재, 휘슬스톱과 버밍햄을 오가며 솜씨 좋게 꿰매지는 이야기의 조각보는 눈물겹고 따뜻하며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여성으로 살면서 가졌던 두려움과 억눌러온 욕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니니를 만난 에블린이 그랬던 것처럼.
글. 최지은

[십이국기] / 오노 후유미 지음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아. 지금처럼 살기는 싫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른다. 막연한 불만 속에 살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에게 쫓겨 다른 차원으로 떨어진다. ‘싫어’와 ‘안 돼’만 웅얼거리며 돌아갈 방법을 찾던 소녀는 결국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난생처음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로 결정한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판타지 세계로 가서 모험을 한다는 흔해 빠진 설정이,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만으로 특별해진다. 모험을 통한 성장, 소년들에게는 그토록 넘치는 영웅 서사가 소녀들에게는 정말이지 드물다. 모험을 떠난 소녀는 소년을 왕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직접 왕이 되지는 못한다. [십이국기]의 소녀들은 전형적인 영웅은 아니다. 선인으로도 악인으로도 평면적 존재가 아니며 모험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결함 많은 존재로서 성장을 거듭한다. 그리고 서로 돕는다. 조연들도 영웅의 들러리라기보다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문자 그대로 세상을 이룬다. [십이국기]는 1992년 처음 나와 2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어설펐지만 주인공과 독자는 물론 소설 자체도 성장하며 최신작인 [히쇼의 새]쯤 와서는 깊이와 폭을 가진 수작이 되었다. 언젠가 끝날 때 소녀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글. 정은지(번역가)

[숨통]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라는 작가를, 나는 얇지만 강력한 페미니즘 선언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쓴 사람으로 처음 알았다. 내가 그 책을 읽고 아디치에에게 반한 정도를 100으로 잡는다면, 책의 토대인 TED 강연 동영상을 찾아 보고 반한 정도는 150쯤 된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소설들을 읽고 반한 정도는 300쯤 된다. [숨통]은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낸 아디치에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열두 편의 단편 중 하나를 제외한 모두에서 화자가 나이지리아 흑인 여성이지만, 어떤 전형적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유학생, 결혼 이민을 온 가난한 여자, 소설가, 부족 간ㆍ종교 간 폭동에 휘말린 대학생…. 공통점이라면 다들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가난한 나이지리아와 풍요롭지만 자신이 흑인임을 매 순간 인식해야 하는 미국 사이에서, 갑갑한 가부장 전통과 자유롭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큰 현대 사이에서 흔들리며 성장하는 여자들이란 점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하나가 아니다. 인종, 나이, 국적, 직업, 성적 지향, 결혼 관계, 사회경제적 계급, 그리고 물론 성별. 아디치에는 어떻게 이런 요소들이 다 같은 여성들이라도 각자 다르게 옥죄거나 해방시키는지를 스케치한다. 여성의 이야기에도 다양한 결이 있음을 잊지 않을 때, 모든 여성에게 공통된 이야기는 더욱 힘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숨통]을 읽은 사람은, 아디치에의 다른 번역된 소설들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현재적인 언어로 여성, 인종, 이민자의 이야기를 한 두름에 꿰는 솜씨에 나처럼 300쯤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 김명남(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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