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치즈 인 더 트랩]은 어쩌다 망가져 버렸을까

2016.03.02
tvN [치즈 인 더 트랩](이하 [치인트]) 3회에서 백인호(서강준)는 의기소침해 있는 홍설(김고은)에게 빙과류 설레임을 주며 달랜다. 이 장면은 동명의 원작 웹툰에서는 유정(박해진)이 홍설에게 했던 행동을 약간 바꾼 것이다. 제작진이 의도에 따라 원작의 에피소드를 변형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때로부터 11회가 지난 종영 한 주 전, [치인트]의 14회. 백인호는 홍설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그 11회 사이,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설레는 상황을 연출했지만, 관계의 발전은 없었다.
 
원작에서 유정은 남들 앞에서 늘 좋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복잡한 생각과 계산이 있다. 원작은 그 유정의 내면을 연인이 된 홍설과의 관계를 통해 천천히 풀어나간다. 반면 드라마는 유정과 홍설이 사귄 후, 그들 사이의 감정이 깊고 복잡하게 얽히는 과정을 상당 부분 생략한다. 14회에서도 유정은 방영시간 30여 분이 지난 뒤에 등장했고, 홍설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헤어졌다. 이 여백을 채우는 것은 계속 만나며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고민하는 홍설과 백인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을 느끼지만, 연인이 아니기에 상대의 감정에 깊게 다가서지 못한다. 대신 백인호가 설레임을 준 것처럼, 끊임없이 서로에게 설레는 과정을 반복한다. 
 
원작과 다른 홍설의 캐릭터는 이 변화의 의미를 보여준다. 원작에서 그는 예민한 성격에 눈치가 빨라 다른 사람들의 속내를 빠르게 알아챈다. 반면 드라마의 홍설은 인간관계에 이리저리 치이다 유정 또는 백인호의 도움을 받는다. 닥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하기보다 남자 주인공에게 도움을 받는 소녀 같은 여주인공. 이것은 드라마 [치인트]가 원작을 해석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진지한 순간은 최대한 회피하고, 오직 설레는 순간만을 찾는다. 그러니 복잡한 유정의 내면을 설명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 연애를 해나가는 두 사람의 고민도 줄어들었다. 대신 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백인호와 홍설에게 유정과 홍설의 에피소드 일부를 부여하면서 설렘을 보다 쉽게 만들어낸다. 유정은 로맨스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어둡고 계산적인 성격이 보다 강조됐다. 백인호는 로맨스의 비중이 늘면서 그에 걸맞게 그가 홍설을 생각하는 감정이 보다 자세하게 묘사된다. 원작의 캐릭터들이 복합적인 내면을 로맨스를 통해 드러냈다면, 드라마는 캐릭터를 로맨스를 쉽게 많이 보여주는 도구처럼 활용한다.
 
과거의 많은 로맨스 드라마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치인트]의 원작은 그 많은 드라마의 반대편에 있었다. 이 작품이 2010년대 청춘의 기록이자 로맨스일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드라마는 원작의 설정과 에피소드를 가져오되,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원작만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로맨틱한 순간들을 단편적으로 이어 붙이고, 캐릭터를 그에 맞게 바꿨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된 박해진의 분량 축소에 대한 논란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원작의 해석과 캐릭터의 분량 조절은 연출자인 이윤정 감독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다만 이유가 무엇이든, 그의 선택은 [치인트]를 가장 안일한 방식으로, 원작과 가장 먼 방향으로 끌고 갔다.  마지막 2회동안 여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원작에서 에피소드를 가져올 수 없었던 드라마의 엔딩은 헤어진 연인이 몇 년이 지나 재회의 가능성을 남긴다는, 진부한 전개로 마무리됐다. 이윤정 감독은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기 보다 [치인트]를 가장 성의없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시청률은 초반 상승세와 달리 중반부터 정체상태고, 시청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으며, 방영권을 구입한 중국 측에서는 한류스타인 박해진의 분량이 충분히 나왔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잘 만들지도 못했고, 상업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원작의 팬들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다만 연출자 입장에서만 만들기 편한 드라마였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역설이다. 11년 전, 이윤정 감독은 MBC [태릉선수촌]을 통해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로맨스를 통해 섬세하게 풀어냈다. 캐릭터는 누가 주연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각자의 서사를 가졌고, 그 서사가 하나씩 쌓이고 섞이며 그 세대의 청춘을 그려냈다. 그러나 [치인트]는 마치 모든 것을 놔버린 것처럼, 자신이 과거에도 하지 않았던 진부한 방식으로 연출했다. 청춘의 고민에 직면하던 연출자가 11년이 지난 뒤 청춘의 이야기에서 로맨스만을 뽑아냈고, 그것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그가 [태릉 선수촌]과는 다른 연출자라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치인트]의 세대는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한 번의 기회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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