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태민, 판타스틱 보이

2016.02.29
태민의 ‘Drip Drop’ 퍼포먼스 비디오는 거의 원 테이크로 촬영됐다. 파란 하늘 아래 황량한 대지, 그의 그림자이자 배경처럼 움직이는 댄서들과 함께, 부피가 느껴지지 않게 보일 만큼 가느다란 몸은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가볍게 움직인다. 후반부의 30초가량, 카메라는 오직 태민의 독무만을 비춘다. 뮤직비디오 외에도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된 타이틀곡 ‘Press Your Number’ 퍼포먼스 비디오 역시 원 테이크로 촬영됐다. 궁전의 무도실처럼 화려한 공간에서보다 훨씬 인상적인 것은 이국 어느 도시 야트막한 수로 위에서의 춤이다. 물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은 물결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정교한 안무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점점 젖어드는 셔츠와 머리칼은 곡이 진행됨에 따라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Press It] 앨범의 티저 이미지는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 마주한 태민의 사진 두 장으로 이루어졌다.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콘셉트라는 태민의 말대로, 폭발 직전처럼 강렬한 성적 긴장감이 감도는 이 세계는 온전히 그 자신만의 것이다. ‘Press Your Number’와 ‘Drip Drop’의 무대에서 그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상대를 욕망하는 몸짓 대신 자신을 전시함으로써 관객을 유혹한다. 복잡한 장치나 설정은 오히려 불필요하다. 화려하면서도 정확하게 떨어지는 선을 그리는 몸의 움직임과 퇴폐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괴도’ 때에도 그랬듯, 태민은 자신을 오브제로 삼아 4분여의 완벽한 판타지를 무대 위에서 구현한다. 현실이 아닌 어느 공간의, 인간이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처럼.


그러나 황무지를 배경으로 의식처럼 춤추던 ‘Drip Drop’의 마지막 순간 그는 허리 굽혀 정중히 인사하며 공연의 종료를 알린다. 마법은 끝났다. 괴도, 요정, 악마, 무대 위에서라면 어떤 비일상적 캐릭터도 연기할 수 있지만 음악이 멎는 순간 태민은 여전히 그를 소개하는 문구인 ‘샤이니의 막내’로서 보여 온 태도로 돌아가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진지하게 듣고 말한다. 데뷔 9년 차, 변하지 않은 것은 그런 것이다. 오디션에서 “가수가 된다면 죽을힘을 다 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던 초등학생은 열여섯에 데뷔해 정말로 그렇게 했다. 노래하다 목이 아프면 춤을 추고, 춤을 추다 지치면 다시 노래하면서, 어린 시절 ‘음치’라 불렸던 소년은 점점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솔로 가수이자 퍼포머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됐다. 지극히 모범적인, 하지만 누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해내지 못했던 아이돌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

물론 노력은 그 자체로 매력을 담보하지 못한다. ‘모범적인’ 스타는 금세 지루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아이돌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캐릭터를 구축하거나 SNS를 통해 일상적이고 친근한 소통을 이어가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인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중요해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태민은 고집스러울 만큼 음악과 춤에 몰두하되 그 밖의 형태로는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비롯해 몇몇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음에도 고정된 이미지를 남기지 않았고, 심지어 이제는 팀의 막내라는 사실조차 캐릭터가 아닌 포지션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말수가 적고, 굳이 말을 해야 할 때는 교과서처럼 바르고 예쁜 말만 하며, 인 이어의 기능과 구조에 대한 설명이 남들에게도 흥미로울 거라 진심으로 믿는 스물넷의 남자는 오직 무대 위에서만 파격을 행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나 ‘어른’으로의 변신을 강조하거나 ‘노는 오빠’가 되는 대신 극도로 정련한 기예 그 자체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그래서 지금, 2D 세계에만 존재할 것 같은 캐릭터가 인간계에서 노래하고 춤춘다. 눈을 뗄 수 없는 판타지의 마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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