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작당 김민정 사장 “내 직업은 사람들의 경험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

2016.02.19
고동색 나무 책장들에 꽂힌 3만여 권의 책, 카페 같은 분위기, 그리고 누울 수 있는 방과 PC를 이용한 검색 시스템. 2년 전, 홍대에 생긴 만화책방 즐거운 작당은 만화를 읽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즐거운 작당 이후 좌식으로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만화책방이 유행했을 정도. 그리고 즐거운 작당의 주인, 김민정 당주는 얼마 전 연남동 공원 주변에 그림책방을 냈다. 만화를 좋아하던 직장인이 만화책방을 내고, 다시 그림책방을 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가게마다 붙어 있는 ‘Make Your Story’에 ‘happen’이 붙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과거보다 길어진 인생에서 계속 꿈을 이어가는 방법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갑자기 그림책방을 냈다.
김민정
: 아주 간단하게, 좋아해서 가게를 차렸다. (웃음) 10년 전 직장인이던 시절,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어디서 받은 그림책 3권을 선물로 줬다. 오나리 유코의 [손바닥 동화]였는데, 그냥 ‘받았으니 한번 볼까?’ 해서 봤다가 짧은 이야기랑 손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회사일이다 뭐다 해서 굉장히 힘들었을 때인데 혼자 느끼는 외로움을 귀여운 표현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울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입 밖에 내기 어렵고, 또 말할 때는 시원하지만 뒤돌아서면 후회되고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 작은 그림을 보면서 걔는 그걸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랬다. 그때 애들만 보는 줄 알았던 그림책이 짧은 시간 안에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즐거운 작당의 공간을 활용하면 됐을 텐데.
김민정
: 즐거운 작당에도 그림책을 놓았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봐. 나만 봐. (웃음) 이 아이들이 이렇게 구박받고 있을 아이들이 아닌데, 이걸 다른 공간에서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즐거운 작당은 책이 3만 권 넘게 있으니까, 책장이 부족해서 책등이 보이게 꽂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림책은 표지가 예뻐서 보는 부분이 큰데 이걸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될까 생각하다가 따로 가게를 내게 됐다. 그리고 즐거운 작당이 공사를 하게 되면서 누워서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기도 했다. 이걸 못하게 되니 뭔가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왜 없어진 건가.
김민정
: 신고가 들어왔다. 그래서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방을 포기했다. 만화책방이 많아지고,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면서 견제를 심하게 당했다. 프랜차이즈 제의가 들어왔는데 거절하기도 했고. 그때 마침 동교동 단골 술집에 갔다 지금 이 자리에 있던 미용실이 나간다고 해서 보고 바로 계약했다. 즐거운 작당도 부동산에서 처음 보여준 가게가 자리도 좋고 주인도 좋아 보여서 바로 계약을 했는데 또 사고를 쳤다. 이 정도로 큰 공간을 찾기도 어렵고, 내벽도 옛날 벽들이라 보는 순간 눈에 하트가 씌워져서 어쩔 수 없었다. 퇴직금으로 즐거운 작당을 차렸는데, 거기서 회수한 투자금이 다시 여기에 들어갔다.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이다.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장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김민정
: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바보 같았나 싶기도 하다. 당시 내 입장에서는 아직 가게를 1년도 돌려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와서 약간 의아해했었다. 그리고 동네마다 똑같이 생긴, 같은 이름의 책방이 생기면 내가 싫으니까. 내가 안 좋게 생각하는 걸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후에 비슷한 인테리어를 가진 가게들이 생기고 나니까, ‘내가 날 베낄걸’이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오래돼서 날 바꾸기는 너무 늦으니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낫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방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만화와는 또 다를 텐데, 출판사의 반발은 없었나.
김민정
: 나도 출판하는 분들에게 이 책방이 어떤 의미가 될지 궁금했다. 아동출판물도 다루는 한림출판사 블로그에서 소개도 하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달달한 작당은 동화책이나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들도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거고, 시장을 넓게 만들어줄 수 있는 지점이 있으니 싫어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출판사 관계자분들도 말씀하신다. 팬이 많아지면 작가님들이 더 좋은 작품을 내고, 그런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확률이 늘어날 것 같다.

홍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김민정
: 즐거운 작당도, 달달한 작당도 페이스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하려고만 하면 블로그 마케팅도 있고, 홍대 만화카페로 검색하면 맨 위에 보이는 키워드 검색 광고 등도 있지만 하지 않으려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 프로모션으로 싸게 해드릴게요”라고 말하면 반짝 손님은 늘겠지만, 일단 그 사람들을 받아낼 자신이 없다. 즐거운 작당도 누군가 우연히 우리 책방을 왔다가, 그분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면서 느리고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저기 싸니까 가보자 하며 손님들이 오셨을 때 가게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될지 예측이 안 돼서 두렵다. 가게를 유지하면서 좋은 경험을 오랫동안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손님들과 어떤 경험을 나누고 싶은가.
김민정
: 즐거운 작당 때는 그동안 남성 중심의 만화방 분위기를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는 짧은 시간에도 깊은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어른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많이 보고 있으니 짧은 이야기가 주는 순하고 귀여운 위안을 경험하면 좋겠다. 나도 이제 슬슬 노안도 생길 나이고, 이제 ‘글밥’이 많은 책들은 집중하기 부담스럽다. 그림책방은 부담 없이 작고 편안한 미술관을 가듯 일상적인 위로를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바람이 있다면 달달한 작당에 오셨던 한 출판사 대표분이 “한 40대 남성분이 동화책을 보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되지 않니?”라고 하셨다. 그런 분이 우리 가게에 오셔서 그림을 보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

가게들의 콘셉트도 특이하고, 검색 기능을 만들기도 했다. 남이 안 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나.
김민정
: 검색 기능은 원래 즐거운 작당을 만들 당시 처음부터 있었다. 그런데 그냥 엑셀 파일로 정리된 거라서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웠던 거지. 그런데 공간 자체가 다채롭다 보니 헤매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는 분에게 프로그램을 부탁해서 만들게 됐다. 그리고 전반적인 큰 콘셉트를 만드는 것은 전에 다닌 회사의 영향인 것 같다. 지금의 사업들을 회사에서 연습하고 나왔다고 보면 된다. 원래는 인사팀으로 들어가서 이직을 하고 기업문화팀 팀장으로 일했다. 당시에 내가 들어간 회사가 벤처라서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세팅된 게 없어서 정말 내 맘껏 일할 수 있었다. 사무실의 문화부터 배치, 사옥의 인테리어, 의자, 집기의 디자인, 컬러까지. 회사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게 내 직무였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까, 책을 보더라도 어떻게 해야 더 즐겁게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질까, 그런 환경에 대해서 매일 고민했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경험했을 때 어떤 표정이나 어떤 기분을 갖고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걸 항상 상상하고, 그게 적중했을 때 즐거웠다.

직장에서 천직을 찾다니, 운이 좋다.
김민정
: 직장을 오래 다녀보면 다들 찾는 것 같다. 나도 직장 10년 차가 됐을 때 알았다. 내가 직장 4년 차 정도 됐을 때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자격증 시험도 치고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야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더 규모가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내 라이프 잡을 점점 찾아갔다. 마흔 전에는 오래 일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퇴직할 때가 되니까 내가 이 좋은 걸 계속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기업문화를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고 가치를 인정하는 열려 있는 조직에서만 가능한데, 그런 기업은 많이 없으니까.

그때 고민이 많았겠다.
김민정
: 처음에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일이 라이프 잡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확히는 사람들의 경험 자체를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인 거다. 책방을 만들 때도 여기서 내가 어떤 경험을 주고 싶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보고 앞을 보면 0~3세, 4~6세 이렇게 나와 있다. 그런 곳에 놓인 책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한 공간에서 책을 만나면 어떻게 다를까 생각한다. 앉아서 보면 어떨까, 누워서 보며 어떨까. 서 있을 때는 어떤 식으로 책을 만나야 할까. 책과 공간이 만났을 때를 상상하게 된다. 즐거운 작당과 달달한 작당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다.

만화책방 문화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한때 다들 만화방 주인이 꿈이었을 것 같다. 다른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김민정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 낫지만 아니라면 힘들 거다. 책이 장식품인 곳도 있지만, 책방은 아니다. 책이 계속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상태 보존도 돼야 하고, 계속 좋은 책들이 들어와야 한다. 대여점이나 책방 산업이 커가는 산업이 아니라서 추천할 만한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책들에 둘러싸여서, 나와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하라고 말하고 싶다. 즐거운 작당은 생각보다 잘돼서 가게를 차린 지 3개월 만에 수익이 났지만, 달달한 작당은 아직 모르겠다. 사실 돈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직장인에서 사장님이 된다는 것은 어떤 건가.
김민정
: 회사 밖에서는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여기서 막상 닥치니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당연히 굴러갔던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 해줬던 일이구나 알게 됐다. 하다못해 쓰레기통이 없으면 내가 사 와야 하고, 놓는 위치까지 정해야 하니까. 뭘 하나 하더라도 예전에는 설득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돈을 찍어 와야 한다. 그런 걸 하나하나 마주치며 나름의 판단 기준과 가치관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그렇고, 하나하나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힘들다. 이게 “외롭다”는 거구나 알게 됐다. 밖에 나와서 정말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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