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어떤 사랑의 역사

2016.02.18
* 영화 [캐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신이었군요. (So it was you.)” 영화 [캐롤]에서 자신이 잊고 온 장갑을 돌려보내준 테레즈(루니 마라)에게 감사 전화를 건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반가운 듯 말한다. 1952년 뉴욕,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번화한 백화점에서 점원과 고객으로 잠시 마주쳤던 두 여자는 이렇게 운명처럼 다시 만나고,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테레즈에게는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고 이혼 수속 중인 캐롤에게는 재결합을 원하는 남편이 있지만 그들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처음 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끌렸던 연인들은 망설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손을 잡는다.

훗날 [리플리] 시리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캐롤]의 원작 소설을 쓴 것은 1948년이었다. 스물일곱 살이던 그해 하이스미스는 영국인 소설가 마크 브란델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 전까지 여러 여성들과 교제해왔던 그는 결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정신분석의의 상담이 필요한 지경이었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이스미스가 캐롤의 모델이 된 ‘모피 코트를 걸친 우아한 금발 여성’과 마주친 것은 그 장난감 코너에서였다. [벌쳐]의 기사에 따르면, 주문을 받으며 알게 된 주소지에 기차를 타고 찾아가 몰래 그녀를 지켜보기까지 했던 하이스미스는 당시 자신의 기분을 살해 욕망에 비유할 만큼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는 살인을 저지르는 대신 범죄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자신의 유일한 소설을 완성했고 1952년,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캐롤](출간 당시 제목은 [소금의 값])을 발표했다.

1950년대는 미국 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사회병리학적 인격 장애’로 분류하고 레즈비언 소설은 ‘외설 출판물’에 속하는 시대였다. [캐롤]과 같은 해 메리제인 미커가 빈 패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레즈비언 소설 [스프링 파이어]는 편집자의 우려 때문에 주인공 중 한 명이 상대를 사랑한 적 없었음을 ‘깨닫고’, 다른 한 명은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결말을 맞았다. 당시 공산주의자를 향한 ‘적색 공포(Red Scare)’로 뒤덮여 있던 미국 사회에는 ‘라벤더 공포(Lavender scare)’라 불리는 동성애자 탄압과 박해의 흐름 역시 뚜렷하게 존재했다. 195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연방정부 공무원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질 경우 해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이 해고당했다. 캐롤의 남편 하지(카일 챈들러)가 딸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며 ‘윤리 조항’을 문제 삼고, 테레즈와 캐롤의 여행에 탐정을 붙여 도청한 것도 동성 간의 사랑을 범죄로 취급하던 시대에 벌어진 야만이었다. [캐롤]의 한 구절대로, “이 세상은 온통 두 사람의 적이 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스미스는 시대에 지지 않았고, 테레즈와 캐롤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속 캐롤은 양육권을 얻기 위해 테레즈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대신 “나를 부정하며 산다면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외친다. [캐롤]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고,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며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 작가와 얘기 나누고 싶다는 팬레터가 쏟아졌다. 특히 남성 동성애자들에 비해서도 더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 극도의 결핍과 외로움을 느끼던 레즈비언들에게 [캐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그런 독자들에게 ‘대도시로 가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보라’는 답장을 쓰기도 했던 하이스미스는 결국 마크 브란델과 결혼하지 않았고 메리제인 미커를 비롯해 다수의 여성들과 연애를 즐겼다. 그리고 1955년, 미국 최초의 레즈비언 인권 단체이자 정치사회단체 ‘빌리티스의 딸들’이 결성되었다. 

[캐롤]의 각본가 필리스 나지가 하이스미스를 만난 것은 그가 [뉴욕 타임즈]에서 일하던 1987년의 일이었다. 나지는 곧 이 괴팍하면서도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와 친해졌고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하이스미스의 집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글에 대한 조언을 받는 등 우정을 쌓았다. 그는 하이스미스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뒤인 2000년부터 [캐롤]의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투자 및 캐스팅 문제로 몇 차례 제작 무산 위기를 넘긴 끝에 마침내 토드 헤인즈를 만나 작품을 완성했다. 나지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캐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5년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이 레즈비언이라서만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제작비를 투자받는 일은 정말 힘들다. [델마와 루이스]도 한 세대 전의 작품이고 1930~40년대에도 여성이 이끄는 영화가 꽃피었는데, 우리는 그걸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한 그는 “이 영화([캐롤])가 잘되면, 아마 비슷한 다른 영화 세 편이 더 만들어질 수 있을 거다. 또 그 영화들이 잘되면......”이라는 희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이스미스는 1989년에 쓴 작가 후기에서 “[캐롤]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두 사람이 적어도 미래를 같이하기로 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캐롤이 언급한 [고독의 우물](1928년 래드클리프 홀이 발표한 레즈비언 소설)의 주인공 스티븐 고든은 연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고 여겨 그를 다른 남자에게 떠나보낸 뒤 신을 향해 “세상 모두 앞에서 우리를 인정해 주소서. 우리에게 존재할 권리를 부여해 주소서!”라고 외쳤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하이스미스에게 도착한 수많은 팬레터들은 “우리라고 전부 자살하지 않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대부분 잘 살고 있다고요”라고 말했다. [캐롤]이 발표된 해에 연인이 되어 ‘빌리티스의 딸들’을 설립했던 델 마틴과 필리스 라이언은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한 번의 무효 처분을 받은 끝에 지난 2008년,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의 동성혼 법제화 판결 이후 샌프란시스코 시장 앞에서 공식적인 부부임을 인정받았다. 캐롤과 테레즈의 시선이 마주하는 [캐롤]의 마지막 대목에서, 하이스미스는 “두 사람은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집, 천 개의 외국 땅에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같이 갈 것이다”라고 이미 선언했었다. 사랑의 영원성을 믿지 않는다 해도, 영원을 꿈꾸는 사랑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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