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년│① “[마리텔]을 해보면서 예능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2016.02.15
드디어 인생의 화려한 이모작을 시작하는 건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만화가 이말년이 출연하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말년 씨리즈]라는 괴작과 함께 홀연히 나타나 ‘병맛’ 개그만화의 시대를 열었던 이 악동 같은 작가는, 하지만 종종 만화를 그만두고 과일장수가 되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겠다는 소망을 피력하는 등 인생 이모작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왔다. 인터넷 게임방송 채널인 트위치에서 ‘침착맨’이란 닉네임으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네이버에 [이말년 서유기]를 연재하면서도 연재 종료에 대한 바람을 강한 진심에 담아 그려내던 그가 지상파 예능에 출연해 심지어 좋은 반응을 얻은 건 그래서 그저 일탈로만 볼 수 없었다. 묻고 싶었다. 이제 삼십 대 중반에 아내와 딸을 둔 왕년의 악동은 지금 자신의 미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외로 보편적인, 길고 재밌게 살아남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얼마 전 피키캐스트에 연재 중인 [이말년 수필]을 완결하며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말년
: [이말년 서유기]와 [이말년 수필] 두 작품을 동시에 연재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해 초 피키캐스트에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땐 2개월 정도 여유를 두고 세이브 원고를 마련하려다가 유야무야 아무것도 못 해서 미안하지만 연재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담당자가 그래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고민하다가 조금은 쉽게 소재를 찾을 수 있는 [이말년 수필]을 시작하게 된 거다. 실제로도 비교적 품이 덜 드는 작업이긴 했는데 [이말년 서유기]를 마감한 뒤 바로 또 마감을 하니 일주일 중 쉴 수 있는 날이 없더라. 당장 [이말년 서유기]도 안 풀려서 힘든데. 그 생활이 6개월간 지속되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말년 수필]을 완결한 거다. 난 천성적으로 조석이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웃음)

그 와중에 게임 BJ도 하고 [마리텔] 출연도 했다.
이말년
: 게임 방송은 순전히 취미 생활이자 노는 거라 생각하며 한 거고, [마리텔]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안 뺏긴다. 인터넷 생방송이라 3~4시간 정도만 찍으면 되고, 준비라고 해봐야 방송 하루 전에 뭘 그릴지 생각하는 정도다. 너무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면 오히려 채팅 참가자들의 요청에 즉각 반응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지상파 예능인데 걱정은 없었나.
이말년
: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땐 재밌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걱정은 있었다. 내가 방송에서 작업하는 걸 보면서 진짜 이렇게 다 대충 그리는 거라고 생각할까 봐. 만화라는 작업에 대해 되게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도 많은데, 방송에서 “쉽죠? 쉽죠?” 이러면 그분들이 기분 나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방송 중간중간 나만 이렇게 하는 거고, 다른 분들은 일주일 내내 열심히 그려서 결과물이 나오는 거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눈치는 보이더라. 사실 인터뷰마다 나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말씀하시는 만화계 선생님도 계시는데, 한 명이 어떤 생각을 입 밖으로 낸다는 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열 명은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덕분에 좋은 팁을 얻었다고 말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이말년
: 팁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이마에 이름을 쓰는 방법이 약간 회자되긴 했는데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배경이 비었을 때 먼지로 채우는 방법이 나름의 비법이었다. 컷이 비어 보일 때 쓰면 상당히 유용하다. 그것 외에 더는 가르쳐줄 게 없다. 나도 재밌고 반응도 나쁘지 않아서 3번이나 출연하게 됐지만 이걸로 끝이다.

실제로 반응이 좋았는데 예능에 대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이말년
: 그건 절대 아니다. 흔히 [마리텔]에 대해 소통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내가 준비해둔 걸 보여주면서 피드백 받는 정도지 뭔가 채팅 참가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건 아니다. 재밌게 봐준 분들이 있겠지만 더는 보여줄 게 없다. 더 날릴 ‘드립’도 없고. (웃음) 오히려 이번에 [마리텔]을 해보면서 나는 예능에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개인 방송 시작하기 전에 거실에서 참가자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나는 거길 끼지 못한다. 워낙 서로 잘 알고 말도 잘하는 선수들이 대화하는 상황이니, 나는 가만히 병풍처럼 있다가 개인 방송 하러 들어가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마리텔] 출연 이후 몇 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안이 왔었다. 하지만 분명히 하게 된다면 뭔가 재밌게 대화를 하기는커녕 묵묵히 시키는 거 하다가 대본 읽는 정도일 거다. (김)풍 형처럼 끼가 있어서 연예인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언젠가 만화를 그려 남에게 보여주는 건 관심을 받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방송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좋은 매체 아닌가.
이말년
: 관심은 엄청나게 받았지. 예를 들자면 내가 처음 디시인사이드에서 아마추어로 만화를 올리다가 야후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하게 됐을 때만큼, 아니면 야후에서 연재하다가 네이버로 옮기면서 엄청나게 인지도가 늘어났던 것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과 비교해 확 늘어났다. 실제로 밖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생겼고. 하지만 방송으로 얻는 관심과 재미는 만화로 얻는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나는 개그만화가로서 내가 했던 웃긴 생각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그 누군가가 웃어주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데, 방송은 그냥 나 자신을 보여주고 그걸로 관심을 얻는 거다. 내 능력으로 만든 뭔가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나는 만화가로서 얻는 관심이 더 재밌고 좋다.

▶ 인터뷰 2. “항상 좀 위험해도 웃긴 것과 안전하지만 재미는 덜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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