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한예리, 반할 수밖에

2016.01.25
“저란 사람이 누구인지, 사실 많은 분들이 모르시잖아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인터넷 생방송을 시작하며 한예리는 말했다. 그렇긴 하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환상 속의 그대]를 비롯한 그의 독립영화 출연작을 접한 적 없다면 대개 [코리아]의 하얀 차돌 같은 북한 선수 유순복이나 [해무]의 처연한 조선족 밀항자 홍매로 한예리를 기억할 테고, 최근 SBS [육룡이 나르샤]에 등장한 검술고수 척사광으로 처음 얼굴을 익힌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예리의 세 시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는 물론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도 충분했으니까. 

보기 드문 형태의 자연스러움, ‘예리가 나르샤’에서 한예리가 보여준 모습은 이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텔]은 한예리의 첫 예능 프로그램 출연인 데다 위험부담이 있는 인터넷 생방송이었지만 주눅 들지도, 과하게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태도로 등장한 그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채팅창에 당황하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질문과 짓궂은 농담에도 태연스레 반응하며 대화를 즐겼을 뿐이다. 양조위를 좋아해 “그분이 80살이 돼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고”, 탕수육은 원래 소스에 찍어 먹는 ‘찍먹’ 파지만 만약 양조위가 소스를 부어 먹는 ‘부먹’ 파라면 “사랑이 최고니까” 자신도 ‘부먹’으로 옮길 것이며, “에반게리온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라는 말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등 자잘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담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 앞에서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고 ‘겸손하게’ 부인하는 대신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저도 점점 예뻐지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훌륭한 재능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거기에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안정감. 생후 28개월부터 무용을 했고, 배우가 된 지금도 1년에 한 번은 무용 공연을 하고 싶다는 한예리는 [마리텔]에서도 승무, 검무, 소고춤, 살풀이춤 등을 선보였다. 한국 무용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이어지자 “계절학기 교양 수업 듣는 것 같다”는 비유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주일학교 선생님 ‘만렙’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수백 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마치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카메라 앞에서 의상을 갈아입을 때 터져 나온 “19금”이라는 ‘드립’에 “걱정하지 마세요. 탈의를 아무리 해도 안에 잘 있어요”라며 싹싹하게 웃어넘기는 한예리는 친근해 보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고단수였다. ‘모르모트 PD’와 ‘장군 작가’를 적절히 독려하고 상냥하게 다그쳐가며 무용 레슨의 난도를 높여가던 그가 카메라 밖에 있던 스태프들을 차례로 끌어와 무대에 동참시키는 과정에서는 지금 이 순간이 재밌을 거라는 데 일말의 의심도 없이 몰입한 이의 에너지가 더해졌다.

한예리는 [마리텔]에서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과거의 작품들을 새삼 알리려 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연기관이나 테크닉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연기의 상관관계다. [푸른 강은 흘러라], [바다 쪽으로, 한 뼘 더]를 비롯한 영화와 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 등에서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아 오히려 신선했던 이 배우는 현실과 부딪히고 견디며 살아가면서도 세파에 찌들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보여줘 왔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자연스러운 표정과 말투와 움직임은 배우에겐 귀한 재능이자 한 인간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동안 한예리를 몰랐던, 이제는 알게 된 이들은 특별히 운이 좋은 셈이다. 지나간 한예리와, 앞으로 보게 될 한예리의 모습이 아직 한참 더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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