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인 더 트랩]│① [커피 프린스 1호점]에 대학교를 끼얹으면

2016.01.19
‘어색하고 불편한 기운이 흐른다… 뭔가 미묘한 계급적인 기운이….’(홍설) 순끼 작가가 그린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이하 [치인트])은 이제껏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대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취직이 어려운 탓에 대학 내에서도 경쟁은 점점 심화되고, 평등해 보이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성별과 학번, 형편과 성적에 따라 계급은 미묘하게 나뉜다. 홍설처럼 어려운 형편에 심지어 여성이라면 밑바닥에 가깝다. 파릇파릇한 캠퍼스의 낭만 같은 것은 여기에 없다. 이윤정 감독이 연출하는 tvN [치인트] 또한 학점 때문에 들으려 했던 수업을 자신도 모르는 새 바꿔치기당하고, 공들여 쓴 리포트가 사라져 발을 동동 구르는 홍설(김고은)을 통해 지금의 대학이기에 가능한 긴장감을 스릴러처럼 활용한다. 거대한 악은 없지만, 자잘하고 일상적인 악의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곳이 [치인트] 속 대학이다.

술자리에서 진상 부리는 선배를 만나거나 협조적이지 않은 조원들 때문에 조모임에서 손해를 보는 것 등 홍설의 대학생활은 현실에서도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본 일들이다. 단, 홍설 주위에는 유정(박해진), 백인호(서강준), 권은택(남주혁)처럼 정말 잘생긴 남자들이 있다. 은택은 뽀뽀해준다는 보라(박민지)의 약속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홍설이 올 때까지 조교의 출석부를 빼앗아 달아날 정도로 깜찍한 연하남이고, 상처 입은 반항아 백인호는 홍설에게 틱틱대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남들에게는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유정의 매력도 웹툰에서보다 극대화되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 남자 캐릭터들은 판타지에 가깝다. 이것은 드라마가 원작에서 빌려온 가장 먹음직스러운 치즈 조각이다. 

그래서 [치인트]는 이윤정 감독의 전작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대학교 버전처럼 보인다. 먹고사는 일에 찌든 은찬(윤은혜) 주변에 다양한 타입의 남자들을 포진시켜놓았던 이 작품처럼, [치인트] 역시 적당한 판타지에 적당한 현실을 끼얹는다. 홍설의 입장에서 유정을 견딜 수 없었던 시간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빠르게 요약되고, 유정과 홍설은 벌써 연인이 되었다.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3회에서 시청률이 올랐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략이 제법 유효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치인트]는 로맨스를 향해 급하게 달려 나갈 뿐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한테 다른 사람들과 다른 뭔가를 기대했다는 건가? 도대체 왜 나한테? 뭘?” 홍설의 혼잣말처럼 왜 유정이 홍설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가오게 된 것인지는 원작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잘 알 수 없다. 설득되지 않은 감정선으로 인해 유정의 행동은 때때로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신과 아영(윤예주)을 맺어주려 했다는 이유로 밤늦게 다짜고짜 홍설의 집 앞에 찾아가 “너도 나한테 다가온 이유가 있었구나? 너도 결국 남들과 똑같아”라며 화를 내는 유정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너 옷을 좀 샤방하게 입어봐. 넌 얼굴이 흐리멍텅하게 생겨서 그렇게라도 입어야 튀어”라고 반말로 쓸데없는 훈수를 두는 백인호의 몰상식하며 위협적이기까지 한 태도는 홍설에 대한 배려나 애정으로 포장된다. 심지어 유정은 선배 민도현(신주환)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홍설을 택시에 태워 보내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고 엉뚱한 일갈을 하기도 한다. 주인공 셋의 삼각관계와 남자들의 ‘멋짐’을 부각시키려는 과정에서, 정작 홍설은 끊임없이 위험한 상황에 놓일 뿐이다.

원작의 홍설은 유정과 가까워지기 전, 유정의 의뭉스러운 부분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그가 학교 내 계급도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챈 인물이었다. 반면 드라마 속 홍설은 혼란스러워하다가도 갑작스러운 유정의 고백에 얼떨결에 사귀겠다고 대답한다. 가난하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개성이나 주관이 주어지지 않은 채 남자 주인공들의 보호와 구조만을 기다리는 듯한 여주인공. [치인트]의 홍설은 그동안 수없이 반복됐던 기존 드라마 속 캔디형 여주인공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새롭지 않은 로맨틱코미디다. 너무도 다른 두 집안의 만남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의 존재가 없고, 불치병이 없고, 재벌에 가까운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구원하는 규모가 축소됐을 뿐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의 진짜 현실을 작품에 살짝 씌워놓았지만, 이 또한 단순한 외피일 뿐 로맨스를 만들어가는 방법과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얄팍하며 고리타분하다. 빤한 로맨틱코미디에서 진보했다기보다는 훨씬 더 교묘해진 재생산. 알면서도 쉽게 눈 돌릴 수 없는, [치인트]가 얹어놓은 ‘치즈’이자 ‘트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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