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스타’와 ‘복면가왕’은 왜 이렇게 ‘역대급’이 많아?

2016.01.18
요즘 TV는 매주가 ‘역대급’이다. 적어도 기사만 보면 그렇다. ‘역대 최고’라는 수식을 대신하고 있는 ‘역대급’이란 신조어가 그 자체로 우리말 조어법과 어긋난다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역대급’으로 검색했을 때 10만 건 넘게 검색되는 기사는 ‘역대 최고’라는 나름의 의미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특히 경연 프로그램인 SBS [일요일이 좋다] ‘K팝스타 5’와 MBC [일밤] ‘복면가왕’, JTBC [히든싱어 4]에 대해서는 매주 ‘역대급’ 무대 혹은 방송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왜 이렇게 ‘역대급’ 무대가 많은 걸까. 정말 그 모든 순간들은 역대 최고라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렇게 매주 벌어진다면 이미 ‘역대급’이 아닌 게 아닐까. 이러한 의문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위의 세 프로그램에 더해 또 다른 주요 경연 프로그램인 Mnet [슈퍼스타 K] 시리즈를 중심으로 얼마나 많은,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역대급’ 상황이 벌어졌는지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도움을 받아 선 검색 후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모아보았다.

지난 1월 10일까지 나온 해당 프로그램 기사 중 제목에까지 ‘역대급’이란 수식을 단 기사들을 확인해보면, 방송과 상관없는 어뷰징 기사를 빼더라도 지난 시즌들까지 포함해 ‘K팝스타’가 188건, [슈퍼스타 K]가 240건, [히든싱어]가 171건이며, 흥미롭게도 후발주자인 ‘복면가왕’이 486건으로 가장 많은 ‘역대급’ 관련 기사를 양산했다.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2013년부터나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그 이전 시즌들에 ‘역대급’ 수식이 붙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유독 높은 수치다. 이는 프로그램의 성격과 연결되어 있다. 앞의 세 프로그램에서 ‘역대급’이 수식하는 단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무대’로, 각각 ‘K팝스타’ 38건, [슈퍼스타 K] 55건, [히든싱어] 45건이다. 하지만 ‘복면가왕’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등장하는 건 ‘반전’으로 무려 135건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무대’(67건)의 약 두 배 수준이다. 개별 출연자 중 가장 많은 ‘역대급’ 관련 기사를 뽑아낸 것도 가장 압도적인 가왕이었던 김연우(9건), 거미(5건)가 아닌 성별까지 속이며 ‘역대급’ 반전으로 꼽힌 백청강(60건)이다. 즉 기본적으로 이들 프로그램 모두 거의 매주 ‘역대급’ 무대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지만, ‘복면가왕’은 여기에 더해 출연자가 가면을 벗을 때마다 ‘역대급’ 반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된다.

이러한 면에서 ‘역대급’이란 수식은 각각의 프로그램에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똑같이 ‘역대급’ 무대가 가장 많이 언급된 ‘K팝스타’와 [슈퍼스타 K], [히든싱어]지만, 두 번째로 많이 언급된 ‘역대급’은 ‘K팝스타’에선 심사위원 평가(심사평 11건, 극찬 14건, 호평 2건, 칭찬 7건), [슈퍼스타 K]에선 합동 무대(콜라보 35건, 라이벌 미션 3건)이며, [히든싱어]에선 싱크로율(15건)이다. 모창 경연인 [히든싱어]에서 싱크로율이 중요한 건 당연해 보이며, 대중음악 산업 최대의 큰손들인 양현석, 박진영 등이 심사 및 발탁을 맡는 ‘K팝스타’의 무게 중심이 심사위원 쪽에 실리고 있고, [슈퍼스타 K]는 개별 무대 중 가장 많은 ‘역대급’ 관련 기사를 배출해낸 벗님들의 ‘당신만이’(32건)가 보여주듯 콜라보레이션 미션에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도 이들 기사로 짐작할 수 있다.

‘역대급’이란 표현이 어떤 특정 에피소드에 집중되기보다는 해당 프로그램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을 반복적으로 수식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연예 매체들이 생산하는 수많은 ‘역대급’ 기사가 개념의 철저한 남용이란 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MBC [무한도전]에 대해 매주 ‘역대급’ 멤버 조화, ‘역대급’ 유재석 진행 같은 수식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 중 ‘역대급’이란 표현을 거의 처음으로 사용한 농구 매거진 [점프볼]의 경우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주희정으로 이어지는 국내 농구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나 NBA 역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업적을 이룬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력을 수식하며 ‘역대급’이란 표현을 썼다. 3, 4시즌 정도가 누적된 프로그램에서 ‘역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온당할까. 심지어 ‘복면가왕’에 대해선 파일럿 이후 1달 정도 지난 5월 17일 방영분부터 ‘역대급’ 탈락, 반전, 섭외, 경쟁 등의 표현을 쏟아냈다. 물론 ‘K팝스타’ 전 시즌 통틀어 가장 많은 ‘역대급’ 기사를 양산한 유제이의 ‘New York State Of Mind’ 무대(36건)가 해당 프로그램 역대 최고의 무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시즌 이진아의 ‘마음대로’(6건)나 케이티 김의 ‘니가 있어야 할 곳’(15건)에 내려진 ‘역대급’이라는 수식이 언론의 설레발이라는 걸 드러낼 뿐이다. 여기에 [마이데일리]의 ‘역대급’ 엇갈린 평가(‘K팝스타’), [동아일보]의 ‘역대급’ 아리송한 정체(‘복면가왕’) 같은 표현에 이르면 ‘역대급’이 원래 어떤 뜻이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한국경제TV MAXIM]은 [슈퍼스타 K] 7시즌에 대해 ‘역대급’ 노잼이라 혹평하며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는 참가자들의 실력과 무대 그리고 심사위원의 평가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지적과는 별개로 해당 기사는 문제를 프로그램에 돌릴 뿐, 자사 방송에 ‘역대급’이라 홍보하는 방송사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내보내거나 습관적으로 ‘역대급’이라는 수식을 붙이며 ‘역대급’이란 표현을 확대 및 재생산하는 매체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재밌게도 정작 해당 매체는 최근 영화 [좋아해줘]의 제작보고회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의 두 주인공에 대해 ‘역대급’ 사랑꾼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과거, 아니 지금도 ‘충격’, ‘헉’, ‘숨 막히는’ 따위의 단어로 낚시질을 하던 연예 매체들의 못된 습관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이를 통해 ‘역대’ 혹은 ‘역대 최고’라는 말의 의미는 철저히 퇴색되거나 왜곡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말을 다루는 직업이 말에 끼칠 수 있는 ‘역대급’ 폐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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